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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mpreintes du beau rêve

『내가 비평가가 된 이유(僕が批評家になったわけ)』 본문

etc.

『내가 비평가가 된 이유(僕が批評家になったわけ)』

barde 2013. 6. 6. 17:09

「お前は批評というものをしたいのか。批評というものがどういうものか、お前は知らない。しかし、もし、批評というものが、本を百冊読んでいる人間と勝負するのに、自分も本を百冊読んで、そこに書かれたものの良し悪しを云々するだけのものなら、それは学問とどこが違うだろうか。所詮は学問の中途半端なものというにすぎないではないか。お前は批評をそういうものだと思って、やろうと考えたわけではないだろう。批評というものが、学問とはとことん違い、本を百冊読んでいる人間と本を一冊も読んでいない人間とが、ある問題を前にして、自分の思考の力というものだけを頼りに五分五分の勝負をできる、そういうものなら、これはなかなか面白い。そう思ってお前は、この批評という世界に関心を抱いて、これに手を染めてみようと思ったのではないのか。だからこそ、この本を数百冊(?)読んで書かれているかに見える「カリスマ」的な批評家の著作を前に、ちょっくら何の本も読まずに、書かれたものから読み取れる意味だけを相手にして、それが自分の価値観からいって、可か、不可か、判断してみようという気持を起したのではないのか。だからこう考えればよい。批評が何か、そんなことは知らない。しかしお前にとっては、批評とは、本を一冊も読んでなくても、百冊読んだ相手とサシの勝負ができる、そういうゲームだ。たとえばある新作の小説が現れる。これがよいか、悪いか。その判断に、百冊の読書は無関係だ。ある小説が読まれる。ある美しい絵が出現する。そういうできごとは、それ以前の百冊の読書、勉強なんていうものを無化するものだからだ。だからすばらしい。だから、批評はそういう相手に ―美というものに― ひかれるのではないか。また、あるできごとが価値あることか、価値ないことか。何が善で何が悪か。その判断にも、究極的には、本百冊を読んでいるかいないかは、関係してこないのではないか。そうでなければ、考える、ということの意味が、なくなるのではないか。もし誰かがそんなものは批評ではない、と証明してくれたらそれでも構わない。でも、もし、批評がこういうゲームではないのだとしたら、そんなゲームは、面白くない、そんなものが批評なら、批評なんてゴメンとばかり、とっととこの世界から撤退することだ。だから、こうなる。初歩的な間違いをおそれたら、批評はできない。ということは、このようなものとして批評をやろうと思う限り、この不安はつきものだということだ。これはおまえのゲームにとっては、掛け金なのだ―。」13~14頁

"너는 비평이란 것을 하고 싶어하는 건가. 비평이란 게 어떤 것인지, 너는 모른다. 하지만, 만약, 비평이라는 것이, 책을 수백 권 읽는 인간과 승부하는 데, 자신도 책을 백 권 읽고, 거기에 적힌 내용의 좋고 나쁨을 운운하는 것뿐이라면, 학문과 어디가 다른 건가. 결국은 학문 어중간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닐까. 너는 비평을 그런 거라고 생각하고는, 하자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비평이라는 게, 학문과는 철저히 달라, 책을 백 권 읽은 인간과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은 인간이, 문제를 앞에 두고, 자신의 사고의 힘이라는 것만에 의지해 반반의 승부를 볼 수 있는, 그런 것이라면, 이건 꽤나 재밌다. 그렇게 생각하고 너는, 이 비평이란 세계에 관심을 가지고, 여기에 손을 담가보겠다고 생각한 건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책을 수백 권(?) 읽고 적혀 있는 것처럼 보이는 '카리스마' 있는 비평가의 저작을 앞에 두고, 어떤 책도 읽지 않고, 적혀 있는 것으로부터 읽을 수 있는 의미만을 상대로 해서, 그것이 자신의 가치관으로 보자면 가능한가 불가능한가, 비판해 보자는 마음을 불러 일으킨 것은 아닌가. 그러니까 이렇게 생각하면 좋다. 비평이 무엇인가, 그런 건 모른다. 그러나 너에게 있어선, 비평이란 책을 한 권도 읽지 않고서도, 백 권 읽은 상대와 막상막하의 승부가 가능하다, 그런 게임이다. 예를 들면 어떤 신작 소설을 보자. 이것이 좋은가, 나쁜가. 판단에, 백 권의 독서는 관계 없다. 어떤 소설이 읽힌다. 어떤 아름다운 그림이 그려진다. 그렇게 되는 것은, 그 이전의 백 권의 독서, 공부 따위를 무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단하다. 그래서, 비평은 그런 상대에게―아름다움이란 것에―끌리는 것은 아닐까. 또한, 그려진 것이 가치 있는 것인가, 가치 없는 것인가.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가. 그 판단에도, 궁극적으로는, 책을 백 권 읽었냐 아니냐는 관계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생각한다, 라는 것의 의미가 없어지는 것은 아닐까. 혹시 누군가가 그런 것은 비평이 아니다라고 증명해 준다면 그래도 상관 없다. 다만, 혹시 비평이 이런 게임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런 게임은 재미없다, 그런 게 비평이라면, 비평 따위는 '미안' 뿐이라, 냉큼 이 세계에서 철수하는 거다. 그러니까, 이렇다. 초보적인 실수를 두려워한다면, 비평은 성립하지 않는다. 그렇다는 것은, 이와 같은 것으로써 비평을 하자고 생각하는 이상, 이 불안은 따라붙는 것이다. 너의 게임에 있어서는, 판돈이다." 13~1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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