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c.

8. 28 - 8.30

barde 2013. 9. 13. 04:00



  "지금 내가 글을 적고 있는 곳은 삿포로로 향하는 비행기 안이다. 옆자리에 사람이 없어서 한결 편한 기분으로 적고 있다. 상공 10000m에서 하늘을 보니 구름이 바닥(대류권과 성층권의 사이)에 빼곡히 깔린 것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하늘의 푸르름은 나의 눈을 찌르고, 쏟아지는 햇살은 청명하기 그지없다. 날개에서 반사되는 강한 햇빛이 나의 눈을 쏘기는 하지만, 그것마저도 감내할 수 있을 정도로 하늘의 풍경은 아름답다. 멋지다, 대단하다, 놀랍다, 장관이다 같은 말을 쓸 수는 있겠지만, 지상 위의 풍경은 그보다는 다른 어떤 '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지금 그게 뭔지 알 수 없다. 그저 빛이 나의 망막에 쏟아지는 것으로 느낄 뿐이다. 아, 서두가 너무 길었다. 이제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한다. 11시 도착. (그리고 잠들었다) 현재 상공 11300m를 날고 있다고 기장이 말한다. 대류권과 성층권 사이다. 보수주의자들은 단호하게 대류권까지가 지구시스템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역시 나는 급진주의자들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그것도 그런 게, 밴 앨런대가 없었더라면 현재 지구는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환경이겠는가? 그러므로 열권도 지구 시스템의 일부-그것도 아주 중요한 역할-를 담당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뭐 이런 얘기를 적었지만, 피곤해서 적은 것이라 별 의미는 없는 말들이다. 이 날은 삿포로 시내에서 라멘을 먹고 風立ちぬ를 보았다. 영화관이 넓은데다 화면도 한국 영화관의 네 배는 되어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자리는 당연히 들어간 순서대로 앉았다. 그래서 나는 가운데에 가까운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이 때만 해도 안경을 쓰지 않았다. (어차피 자막을 보지 않는 이상 안경을 굳이 쓸 필요는 없지만.)

 저녁에는 스스키노를 돌아다니다 스프카레 집을 결국 발견하지 못하고 모스버거에 들어가서 메론소다와 함께 데리야끼 버거를 먹었다. 종업원이 나의 주문을 알아듣지 못해서 약간 고생했다. 뭔가 착오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타이토 스테이션(게임센터)에 들러서 게임을 몇 판 했다. 그때까지 잠을 비행기에서 잠깐 잔 것을 제외하면 한숨도 자지 않았는데도 잘도 게임을 했다. 그리고 돌아올 때 サントリー金麦를 사와서 마셨다. <언어의 정원言の葉の庭>에서 유키노가 마시던 술이다. 술을 다 마시고는 10시 좀 넘어서 방전되어버렸다. 그대로 아침까지 잘 잤다.


  다음 날에는 오타루에 갔다. 여기서 본 것을 전부 말하기에는 종이가 열 장이라도 모자랄 것 같다. 우선 오타루 오르골당에 들러서 스탬프를 모으는 종이를 한 장 받은 다음에, 거리를 쭉 돌면서 스탬프를 근성 있게 다 모았다. (총 여덟 개였다. 시간은 한 세 시간 정도 걸렸을까?) 다 모으고 나서 오르골당에 들러 선물을 사고 악세서리를 받은 다음에 스시를 먹으러 오타루역 쪽으로 올라갔다. 거기서 미요후쿠라는 작은 스시집에 들러 맥주와 함께 먹었다. 맛있었다. 620ml 정도 되는 맥주(삿포로 블랙라벨)도 전부 다 마셨다. 그래서 나올 때는 약간 취한 상태로 오타루역으로 향하게 되었다. 그 스시집은 다음에도 또 갈 것 같다.

  오타루에서 돌아와서, JR타워 전망대 T38(타워가 38층이라 그렇다)에 들러 삿포로 시내의 전망을 조감했다. 아직 해가 있어서 야경은 볼 수 없었지만, 끝까지 기다려서 해가 막 지기 시작할 때까지 위쪽에 남아 있었다. 그제야 불빛이 몇 개 켜지는 것이 보였다. 700엔이라는 돈이 아깝지는 않지만, 다음에도 오지는 않을 것 같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와서 저녁을 먹고(뭘 먹었는지 영 기억나질 않는다. 돌이라도 씹어 먹었겠지.) 로손에서 롤케익을 사서(정식 명칭은 "스푼으로 먹는 프리미엄 롤케익"이다.) 숙소에 와서 먹었다. 자정까지 기다려서 애니메이션을 보고, 그리고 잤다.


  "風立ちぬ를 본 것은 이틀 전이지만, 생각이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어제 한 일본인이 쓴 감상을 보고 나서였다. 글은 주로 호리코시 지로라는 인물과 그가 유일하게 추구했던 아름다움美을 다루고 있지만, 오히려 나는 그런 '개인적인' 점보다는 지극히 타자의 입장에서(이건 내가 한국인인 탓이 크다고 생각한다. 여하튼 나도 마찬가지로 초중고 12년간 한국의 교육을 받아왔다.) 이상한 점을 발견해 내어, 그것의 실마리를 감상에서 찾았다. 나의 질문은 이것이다. "왜 미야자키 감독은 결말을 그런 식으로 맺을 수밖에 없었나?" 그리고 여기에 해답을 주는 게 바로 미야자키 하야오가 風立ちぬ를 통해 자신의 혼네를 드러내었다는 문장이었다. '정직'하게 만들었다고 하지만, 결말을 보면 의문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왜 거기서 호리코시 지로는 '멈출' 수밖에 없었을까? 거기서 멈춰야 했던 이유라도 있었던 것일까? 어제 나는 트윗에 이건 미야자키 하야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 사회 전체의 문제, 나아가 '자신이 행한 일을 모르는' 사회 전체의 문제라고 적었다. 그리고 그 근저에 있는 '뒤틀림-이건 가토 노리히로의 용어를 빌린 것인데'을 지탱하고 있는 것이 바로 전후 '평화헌법', 즉 헌법 제9조라고 생각한다. 지금부터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바로 둘 사이의 인과관계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지브리에서 발매하는 잡지 <열풍>에 아베 정권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헌법 제9조를 옹호하는 글을 실었다. 나는 風立ちぬ를 보기 전에 그 글을 읽었지만, 당시만 해도 나는 글에서 아무런 문제점도 느끼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글을 읽고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인물의 됨됨이를 신뢰하게 되었다.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함없지만) 그러나 지금 다시 글을 생각해 보면, 머리를 간지럽히는 몇몇 지점이 있다. 우선 일본 국민이 전쟁에 '휘말렸다'는 말이 그렇다. 당연히 일본인의 입장에서 보면 전쟁에 '휘말린' 것이 맞지만, 외국인(특히 식민지였던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당시 일본은 전쟁에 어쩔 수 없이 '휘말린' 것이 아니라 당당히 전쟁의 주체로 참가한 전범국이었다. 그리고 거기에 가담한 일본 국민의 책임은 아무리 잊어 보려고 해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여기까지 쓰면 내가 철저히 '한국인'의 입장에서 미야자키 하야오를 비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여기까지 적고 그 뒤는 즐겁게 맛보았던 苺ぜんざい의 감상을 적었다. 지금도 생각날 정도로 맛있었다. 꼭 한번 다시 먹고 싶다. 그리고 정식도 한번 먹어보고 싶다. 이 날은 점심으로 디저트를 먹고 오후에 아사히카와로 출발, 6시 정도? 에 도착했다. 체크인 시간이 아마 그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4시 40분에 출발했으니까 아마 맞을 거다. 그리고 아사히카와에서 사케(연어)로 국물을 낸 라멘으로 저녁을 먹고(이 라멘 이야기는 나중에 또 할 기회가 있을 거다) 게오파크(게임센터)에 들러 게임을 몇 판 했다. 여기는 9월 1일 아사히카와에 돌아왔을 때 문을 닫고 이사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8월 31일 자정까지 영업을 한다고 적혀 있었다. 그래서 그 뒤로 두 번 다시 게임센터에 들러 게임을 하지는 못했다. 조금 아쉬웠지만 뭐. 라멘의 고장 아사히카와답게 거리에 라멘집이 많았다. 山頭火 같은 데는 한번 가 보고 싶었지만(나중에 비에이에 들렀을 때 비에이센카美瑛選果 바로 옆에서 지점을 발견했다.) 아쉽게도 못 갔다. 나중에 또 갈 일이 있겠지. 게임을 하고 숙소에 돌아와서 글을 좀 쓰다가 잤다. 와이파이가 안 되어서 대신 글을 썼다. 일찍 잔 걸로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