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와 켄지小沢健二
오자와 켄지는 일본의 싱어송 라이터. 본명 小澤 健二(읽는 법은 같다). 애칭은 오자켄(オザケン).
내력, 인물
1968년, 카나가와현 사가미하라 시에서 독문학자 오자와 토시오와, 심리학자 오자와 마키코의 차남으로 태어나, 곧 독일로 이주한다.
어렸을 때부터 음악이나 문학에 열중해, 특히 당시에 방영되던 가요 채널 『The Best 10』은 하위 20위까지 체크하는 열정이 있었다. 형이 다녔다는 이유로 사립 와코중학교에 진학해서, 오야마다 케이고와 만난다. 계열의 와코고등학교에 가지 않고, 카나가와현립 타마고등학교에 수험해서 진학. 부활동은 밴드를 했다. 당시 가정의 규율이 엄격해 용돈을 받지 못했지만, 다니고 있던 예비교에서는 좋은 성적을 받으면 용돈 비슷한 게 나와서, 공부는 열심히 했다. 현역으로 합격한 와세다대학에 입학하지 않고, 재수해서 도쿄대학 문과3류(문학부)에 입학. 1989년, 대학 재학중부터 아마츄어 밴드 「롤리팝 소닉」으로 활동. 프로로 데뷔하자마자 바로 「플리퍼즈 기타」로 개명했다. 아마츄어 시절부터 5인구성이었지만, 데뷔하고 곧바로 오자와와 오야마다의 2인구성이 된다. 오리지널 앨범 3장과 몇 개의 재편집반을 남기고 1991년 해산.
플리퍼즈 기타 해산 후, 솔로로 음악활동을 시작한다. 1993년, 싱글 「날씨 읽기」로 데뷔, 1st 앨범 「개는 짖지만 캐러반은 간다」를 발표. 1994년, 힙합 그룹인 스챠다라바와 공연한 싱글 「오늘밤은 부기백」을 발표하고, 50만 장을 넘어 히트한다. 이로 인해 오자와의 이름이 한층 널리 알려지게 됨과 동시에, 일본에서 랩뮤직이나 힙합의 인지도가 급상승하게 된다. 일본의 힙합도 참조.
1994년, 소울 뮤직의 어랜지, 많은 인용이 되는 2nd 앨범 『LIFE』가 대히트를 기록하게 된다. 이를 전후해서, 미디어에서의 경쾌한 한편으로 지적으로 여유가 있는 안무나 패션이 지지를 얻어, 「시부야계의 왕자님」이라 불리는 정도까지 인기를 얻게 된다. 1995년과 96년에는 연속해서 『NHK 홍백가합전』에도 출장. 1996년, 재즈 풍의 3rd 앨범 『구체가 연주하는 음악』을 발표. 시부야 타케시가 피아노, 카와바타 타미오가 우드 베이스를 맡았다.
1998년, 싱글 『봄이 되어 그대를 생각한다』를 발표한 후 오랫동안 활동을 중지.
가족, 친족
친가인 오자와 가는 문화인을, 외가인 시모코베 가는 경제인을 배출했다. 가족과 친족에는 친가, 외가 동시에 유명인이 많다.
아버지는 독문학자인 오자와 토시오. 친가의 친족은, 조부는 전전의 민족주의자 오자와 카이사쿠, 백부는 조각가인 오자와 카츠미, 숙부는 지휘자인 오자와 세이지 및 배우인 오자와 미키오, 사촌동생은 배우인 오자와 유키요시, 사촌여동생은 작가의 오자와 세이라(어느 쪽도 세이지의 자녀)가 있다.
어머니는 심리학자인 오자와 마키코. 외가의 친족은, 증조부는 일본광업(현 JX일광일석 에너지) 사장이었던 시모코베 켄지, 조부는 시모코베목장의 창업자 시모코베 마고이치, 숙부는 시모코베목장 대표인 시모코베 토시유키, 큰 숙부는 시모코베 산시, 시모코베 산시의 삼남에 음악프로듀사의 시모코베 세이조가 있다. 또한, 시모코베 산시의 아내는 아시다 히토시(일본의 외교관, 정치가)의 장녀라서, 오자와 가는 시모코베 가를 통해서 아시다 가와 인척관계에 있다.
2010년 6월 18일 발매의 사진주간지 『프라이데이』는, 미국인 사진가인 엘리자베스 콜과 오자와 켄지가 작년 말에 결혼한 사실을 보도했다. 2012년 12월 25일, 공식 사이트에서 엘리자베스의 임신을 발표. 2013년 6월, 자식의 탄생을 발표. 이름은 凜音(리온)으로, 미국에서의 이름 표기는 「Rion Ozawa Coll」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