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로보라이트> 리뷰
<스트로보라이트>는 한눈에 보기에는 단순한 플롯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직접적으로 텍스트의 ‘중층성’을 드러내는 방법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스트로보라이트>의 플롯은 크게 두 가지의 층으로 분할된다. 하나는 소설을 작성하는 주인공의 층위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이야기를 ‘작성당하는’ 주인공과 그 주변 인물들의 층위이다. 우선 처음에, 주인공인 타다시는 대학 3학년 봄에 유명 문예지(‘군청’이라고 말해진다)에 소설을 내 보지만, 보기 좋게 낙선하고 만다. 여기서 술에 취한 그는 떨어졌다고 말하는 대신, “붙었다”고 거짓말을 해 버리고 만다. 이 자리에서 그는 <Q9>라는 미스테리 영화에 출연했던 키리시마 스미레=마키를 만나고, 자신이 <Q9>를 얼마나 열심히 보았고 또 좋아했는지를 마키에게 자신이 아는 말을 총동원해서 설명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서, 그 둘은 사귀게 된다.
그러나 연애에는 장애물이 있는 법. 타다시가 거주하는 집의 집주인의 딸인 미와코가 타다시와 미카의 연애에 개입하기 시작한다. 미와코는 그 당시(작품은 현재로부터 ‘7년 전’을 조명한다. 그러나, 이것이 정말로 ‘7년’이라는 시간을 그 사이에 두고 있는가?) 고등학생으로, 타다시에게 관심이 있어 스페어 키를 이용해 타다시의 방에 잠입하기도 하고, 타다시에게 공부를 가르쳐 달라고 말하기도 하면서 그에 대한 접근을 늘린다. 타다시가 미카의 방에서 ‘첫 섹스’를 감행하던 바로 그 날, 비가 쏴아아아아- 하며 세차게 퍼붓던 바로 그 날, 미카는 타다시의 방에서 스크랩한 기사와 <Q9>를 발견하고, <Q9>를 처음으로 재생한다. 그녀는 그리고 ‘스미레’가 바로 마키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녀는 타다시가 소설을 써야 한다고 생각해 오던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마키가 곁에 있다면, 그는 소설을 쓰지 않을 것이다.
이때 키리시마=마키와 같이 <Q9>에 출연하기도 했던 마츠나가 신지가 타다시의 플롯에 ‘침입’하기 시작한다. 그는 <Q9>에서는 형사들을 살해해 나갔던 범죄자 역을 연기했지만, 현실에서는 그저 길거리를 돌아다니기나 하는 한량에 불과하다. 그런 마츠나가 신지를 미와코는 개인적으로 조사하러 다니고, 잠시 카페에 들어가서 쉬게 된다. 바로 거기서 그녀는 마츠나가와 미카가 만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그 둘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는 밝혀지지 않는다. 하지만, “미카가 마츠나가와 함께 영화계로 돌아간다”는 소문이 미와코로부터 들려오고, 미카로부터 “만약 타다시가 소설을 쓰지 않는다고 해도, 내 마음은 변하지 않으니까…” 라는 말을 듣고 타다시의 마음은 식어버린다. 그에게 있어 그것은 “네게 있어-타다시라는 인간을 판단하는 데 있어-소설을 쓰는 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비참한 마음으로 타다시는 집으로 돌아가 노트북에 손을 얹는다. 그러나 그는, 한 자도 쓸 수 없다.
자, 여기서 다시 ‘현재’의 타다시에게로 돌아가 보자. 그는 야간열차 안에서 계속,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소설을 쓴다. 그러나, 진실로 시간은 ‘흐르고 있는가?’ 시간이 ‘흐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면, 타다시는 아침에 목적지에 도착할 것이다. 하지만, 그가 소설을 쓰고 있는 이상, 그는 결코 아침에,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다. 그가 소설을 완성해야 그는 비로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그가 소설을 쓰는 동안 몇 가지 변화가 관찰된다. 그의 오른손에 풀에 베인 흉터가 생기고, 미와코의 목에 작은 흉터가 생긴다. 미와코는 그러한 사실-소설을 써 나감에 따라, 현재의 자신들이 변화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중간에, 타다시의 지도교수가 이런 말을 한다. ‘상호텍스트성’ 그러나, 타다시가 말하는 것은 ‘상호텍스트성’과는 다르다. 이를테면 타카하시 겐이치로가 미야자와 겐지에 영향을 준다는 식의, 미래를 ‘쓰는’ 행위가 과거에 영향을 준다는 말이다. 타다시는 직접 그것을 행동으로 보인다. 그는 야간열차 안에서 소설을 계속 쓴다. 목적지에 도달할 때까지, ‘마치다 미카’에 마주할 때까지.
과거의 타다시는 미카의 방에서 <Q9>의 스미레와 마주한다. 스미레는 휠체어에 앉아서 타다시를 노려보고 있다. 그녀는 말한다. “만나기 전부터 죽여버린 거야, 당신이”라고. 그는 그것을 강하게 부정하며, ‘스미레’를 강간하기 위해 바지를 벗긴다. 그러나 ‘미카’가 그의 뺨을 후려치고, 쓰던 안경은 멀리 날아가 침대 위에 떨어진다. 타다시는 처음으로 스미레의 얼굴이 아닌 ‘미카’의 얼굴에 마주하게 된다. 미카는 그를 향해 말한다. “돌아가”라고. 그 이후 타다시는 두 번 다시 그녀와 만나지 않았다. 어쩌다 보니 그는 ‘포스트-모던’한 문학을 하는 소설가가 되었고, 미와코와 함께 도쿄에서 살게 된다. 7년의 세월이 흐르고, 그는 우편물 속에서 연하장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바로 미카가 보낸 연하장이었다. 타다시는 야간열차에 오르기로 결정한다. 여기서 미와코는 타다시와 함께 가지 않았지만, 그렇다면 도대체 어째서 그녀가 야간열차에 올랐는가? 아니, 야간열차에 오른 ‘그녀’는 미와코가 맞는가? 마침내 타다시는 소설을 완성하고, 미와코는 자신의 ‘역할’을 완수하고 사라져버린다. 타다시는 혼자서 열차에서 내린다.
'책임'의 문제로 생각하면, 이 만화는 명백하다. '쓰는 사람'은, 자신이 창조해 낸 인물들에게 책임을 져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동시에, 리얼-현실을 살아가는 인물에게 책임을 가지고 충실하라는 ‘명령'이다. 타다시는 야마나시에서 미카를 발견한다. 드디어 그는 현실을 살아가는 ‘미카’와 처음으로 만날 수 있었다. 이제야 타다시는 미카가 7년 전에 말했던, “재능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어… 그런 건 사람의 가치와는 관계 없는걸…” 이라는 말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이제 그가 써 내려갔던 ‘텍스트로 구조화된’ 과거는 현실을 따라잡았다. 그의 이야기는 끝났지만, 앞으로 그는 계속 자신의 ‘이야기’를 써 나가야 한다. 왜냐면 그렇게 해야만이, 현실을 살아가는 ‘타자’에게 충실할 수 있기 때문에. 마지막 장면이 인상깊다. 그대로 옮겨 본다.
「돌아가는 열차의 흔들림 속에서 난 문득 7년 전에 둘이서 전철을 탔던 때를 떠올렸다.
“있지, 전철은 달리고 있을 때 이렇게 눈을 감으면, 어디로 가는 건지 알 수 없게 되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