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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구야히메 이야기> 감상

barde 2014. 2. 5. 13:29





  <카구야히메 이야기>는 아름다운 영화다. 영화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 된 이야기라고 전해지는 "타케토리모노가타리竹取物語"(타케토리오키나모노가타리竹取翁物語라고 불리기도 한다.)를 소재로 한다. 이야기는 어느 날, 대나무를 캐서 파는 노인이 베어낸 대나무 속에서 어린 여자아이를 발견하면서 시작된다. 오키나(노인)는 여자아이를 "오히메사마お姫様"라고 부르면서 극진히 아낀다. 그의 아내도 여자아이를 소중하게 생각하며 기른다. 이 '히메사마'는 남들보다 몇 배는 더 빨리 자라는데, 그래서 1년 정도 시간이 지났을 때는 이미 한 사람의 역할을 하는 소녀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오키나는 대나무에서 다시금 금조각과 기모노를 발견하고(기모노가 하늘로 솟아오르는 모습이 매우 아름답게 묘사된다), 그는 히메를 데리고 미야코(수도 교토)에 올라갈 생각을 한다. 히메는 '스테마루 형님'이라 부르는 남자와 아이들과 함께 꿩 나베를 만들어 먹으려는 계획을 세우지만, 마침내 오키나의 뜻에 따라 미야코로 상경하게 된다.


  히메는 그곳에서 "고귀한 공주님"로 자라기 위해 갖은 교육을 받는다. 오키나는 '사가미 도노'라는 가정교사를 데리고 오는데, 그녀는 오직 히메의 교육을 위해 고용된 여성이다. 히메는 사가미 아래에서 "고귀한 공주님"으로 자라기 위한 교육을 받지만, 그녀는 배우는 일보다는 노는 일을 더 좋아한다. 그러나 남들의 눈 앞에서는 기예를 자신이 배운 것보다 더 잘, 더 우아하게 해 낸다. 이 즈음 히메에게 "카구야히메"라는 이름이 붙는다. 그런 히메의 모습을 보러 수많은 남자들이 찾아오지만, 히메는 그들에게 결코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소문은 미야코 전체로 널리 퍼지게 되고, 결국 '높으신 분들'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된다. 그들 중 다섯 명이 히메와 결혼하기 위해 그녀의 집을 찾아오는데, 순서대로 이시즈쿠리, 쿠라모치, 아베노 미우시, 오오토모노 미유키, 이소노카미노 마로다. 히메는 그들에게 자신을 묘사한 것과 같은 보물을 찾아오라고 요구한다. 다섯 명은 열심히 보물을 찾지만 가짜를 들고 온 것이 발각되거나, 폭풍우로 인해 보물 찾기를 포기하거나 하여 실패하고, 히메는 자신이 원하던 대로 혼자 있을 수 있게 된다.


  그러다 히메에 대한 소문이 미카도(현재의 덴노)에게까지 흘러 들어오게 된다. 미카도는 히메에게 먼저 초대장을 보내지만 거절당하고, 직접 그녀의 집으로 찾아간다. 그러나 히메는 미카도가 자신을 찾아오는 것을 반기지 않았다. (여기서 원작과 갈라지기 시작한다.) 미카도는 히메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일을 단념하지 않지만, 히메 역시 결코 그의 '소유물'이 되고자 하지 않는다. 히메는 점차 생기를 잃고 고토를 연주하는 일에 매진하게 된다. 그러다 3년이 지나고, 히메는 달로 돌아와야 한다는 명을 받는다. 그녀는 계속 '이 땅'에 머물고 싶어하지만, 하늘이, 달이 그것을 내버려 두지 않는다. 그녀를 소중히 기른 오키나는 군사를 고용해서 달에서부터 내려오는 '침입자'를 막고자 한다. 하지만 어찌된 일일까, 화살을 쏘아 보지만 화살들은 전부 노란 꽃으로 변하고, 하늘에서 부처와 천녀들이 내려오자마자 무사들은 전부 잠에 빠져버린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잠에 빠져버리고, 히메는 구름을 타고 올라가서 이걸 쓰면 '세상에 대한 모든 기억을 잃어버리는' 면사포를 쓰게 된다. 그리고 히메는 부처와 천녀들과 함께 달로 올라가게 되고, 마지막에 눈물을 흘리는 히메가-그녀는 자신이 왜 눈물을 흘리는지 모른다-지구를 돌아보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앞에서 <카구야히메 이야기>를 '아름답다'고 평했다. 그건 단순히 아름답게 그려진 히메의 모습을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붓으로 그린 듯한 영화의 한 장면 한 장면이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타카하타 감독이 <이웃집 야마다군>부터 선보였던 '수채화 기법'이 이번 영화에서 절정에 달한 느낌이다. 특히 카구야히메가 문을 박차고 달려나가는 모습은, 그 자체가 한 편의 작품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이렇게밖에 말하지 못하는 게 못내 아쉽기는 하나.) 하지만 연출의 기법보다 더더욱 인상깊었던 것은 다름이 아니라, 수수께끼로 가득한-혹은 모든 게 분명해지는-마지막 장면이었다.


  하늘에서 부처가 내려온다. 여기까지는 이상한 점이 없다. 하지만 천녀들이 함께 내려오는데, 그들은 '천계의 음악'을 연주한다. '연주한다'는 말보다 '자비를 베푼다'는 말이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그들은 음악과 함께 지상에 내려온다. 처음에 나는 여기서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 (누군가는 "내파"라고 표현했을 정도로.) 그리고 두 번째에서, 나는 내가 왜 충격을 받았는지를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그건 바로, 이미 음악과 함께 하늘에서 내려온 존재들은 '지상의 존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달에서 내려왔다고 했으니 달에서 내려온 게 맞겠지만, 어쩐지 이 '달'이란 것은 지금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38만 4000km 떨어진 '달'과는 전혀 다른, '이상향'에 가까운 달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이에 맞서 '지상의 존재'들이 카구야히메를 지키기 위해 '인간의 노래'를 연주한다. 이는 천계의 음악을 멎게 만듦과 동시에, 히메가 '자신이 있었던 곳'을 다시 되짚어보게 만든다. 비록 그녀가 달로 떠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을지라도, 그녀는 지상에서 그녀가 살아왔던 삶과 즐거움과 슬픔을 그녀의 '몸'에 간직할 수 있었다. 마지막에 그녀가 흘리는 '눈물'은, 바로 '몸의 기억'이 흘리는 눈물이다. 그녀는 자신이 있었던 땅을 기억할 수 없지만, 오직 몸만은, 그녀가 살아내었던 '지상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이야기가 가장 빛나는 시점이자, 감독의 고유성이 빛을 발하는 지점이다.


  몸의 기억, 머리에 지니고 있는 기억, 그리고 노래의 힘. 노래는 인간이 입에서 입으로 전하던 이야기에 가사와 선율을 붙여서 만들어 낸 예술이다. 노래는 머리에 남는 것이 아니라 몸에 남는다. <카구야히메 이야기>는 그와 같은 오래된 믿음을 말하고 있다. 그건 현대의 지식에 비춰보았을 때 확실히 '거짓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와는 '다른 세계'를 상상할 수 있다는 것에, '거짓말'의 보석같은 핵심이 자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살아낸다는 것의 아름다움"이란, 바로 거기에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