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 #1
세상 위의 모든 것이 자신을 지탱하던 힘을 잃고 땅으로 떨어지는 시간이 오면, 땅 위로 가라앉아 스며드는 조각별 하나하나는 눈물로 마른 대지를 적신다...
영겁의 시간이 지나고, 인간의 시간이 다가와 점차 밝아져 오는 땅 위로 모습을 드러내는 게 보이면 드문드문 내려앉아 있던 조각별들은 어디에도 사라지고 없더라. 다만 한때 밝게 빛났을 유성의 타고 남은 찌꺼기가 나무 밑둥이나 돌 사이에 박혀 있는데, 그을음이 그것의 험난했던 여정을 증명하기라도 하는 것마냥 주위에 감돌아 있고, 나뭇가지나 마른 잎과 같은 것들은 숨죽여 새로운 방문객, '다른' 세상에서 온 방문객을 맞는다.
산 위로 터벅터벅 올라오는 것은 인간의 발걸음 소리. 아직 덜 여문 팔다리를 한 소년이 그 곁으로 조심조심 발을 내딛으며 따라오고 있다. 소년에겐 아직 이 동산이 너무나도 높아 차마 고개를 들어 바라볼 수조차 없는 고산으로 여겨지나보다. "땅 위로 보석이 떨어졌다"고, 혹은 "땅 위로 여신의 눈물방울이 떨어졌다"고 하는 목소리들을 지나쳐 기어이 동산 허리에 다다랐건만, 눈에 보이는 것은 자신의 몸을 정화하고 남은 재와 흔히 볼 수 있는 돌멩이들 뿐이다. 소년은 묻는다.
어째서 사람들은 이것을 보석이라고, 눈물이라고 했죠? 전혀 알지도 못하면서.
뾰루퉁해 있는 소년의 모습을 본 거대한 사내는 잠시 입을 다물고 생각이라도 하듯 서 있다가, 눈을 살짝 크게 뜨고 소년에게 말한다.
그건 말이지, 칠흑같은 밤하늘에서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궤적을 그리며 내려오는 빛엔 마법이 깃들어 있단다. 이 마법은 우리가 병을 치유할 때나 농사가 잘 되게 해 달라고 빌 때 외는 마법과는 다른 마법이지. 샤먼이 외는 마법이 땅의 마법, 대지의 마법 그리고 '인간'의 마법이라면, 빛에 깃들어 있는 마법은 하늘의 마법, 별의 마법 그리고 '심연'의 마법이란다. 그래서 샤먼의 영을 타고나지 않았다면 하늘에서 떨어진 돌에 깃들어 있는 마법을 눈치채기가 쉽지 않지. 우리는 마법의 흔적이 어려 있는 돌을 주우러 이 동산에 오른 거고. 어때, 짐작이 가니?
글쎄요... 짐작이 갈 듯 말 듯한게... 여하간 마법이 깃들어 있는 돌은 신비한 물건이라는 거지요? 그런데 이게 무슨 소용이 있죠? 샤먼은 돌 없이도 마법을 욀 수 있잖아요?
그래, 물론 그렇지. 하지만 저 돌은 마법을 외기 위해 사용되는 물건이 아니란다. 풀어서 설명하자면 돌은 어떤 사람, 존재를 '예지'하기 위해 사용되는 거지. 그 이후엔 인간이 다가올 사건을 '예비'하는 거란다. 이걸 오직 샤먼만이 할 수 있는 거지. 왜냐면 '예지'란 아무나 할 수 있지만 오직 샤먼만이, 술사--하늘에 자신의 영을 이은 자--만이 거기에 효력을 부여할 수 있기에...
거대한 사내는 무언가 떠 오르기라도 한 듯 눈에 초점이 멀어지며 다시금 생각에 잠긴다. 소년은 자신이 샤먼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제야 알아챘다는 듯, 재차 돌멩이를 바라보며 골똘히 생각하는 자세를 취하며 발을 종종 끈다. 주위에 정적이, 마법이 거기에 풍미를 더한 정적이 감돌고 저 멀리 아이 몸집만한 독수리들이 서로 꾸욱 꾸욱 푸드득 하며 대화를 나누는 소리만이 들려온다. 풀들은 미세한 바람결에 흔들릴 듯 말 듯 간을 보고 있고, 풍뎅이나 무당벌레 같은 곤충들만이 부지런히 생존을 위해 이리저리 쏘다니며 먹이를 구한다. 어쩌면 짝짓기를 위해 움직이는 건지도 모른다. 결국 중요한 것은 생존하고 번식하는 것이기에, 그게 자연에 몸을 얹는 생명들이 따르는 섭리다. 인간도 예외는 아니지만, 마법을 부릴 수 있게 된 인간은 잠시 그걸 잊고 자신이 초월자라도 된 마냥 활동하기도 한다. 그리고 여기에 마법을 부리지 못하는, 평범한 인간이 두 명 있다.
이제 그만 가요. 돌도 찾았고, 우리가 여기에 있어야 할 이유가 뭐죠? 당신은 서 있는 게 지루하지 않나요?
그래... 이제 떠나는 게 좋겠지. 너도 여기까지 올라오느라 많이 힘들었을 거야, 이제 집에 가서 푹 쉬자.
하핫, 저는 아직 걸을 기운이 남아 있거든요? 샤먼의 자손들은 체력이 부족해 조금만 걸어도 헉헉대지만, 멘슈의 자손은 이깟 동산 따위는 식은 죽 먹기라구요. 자, 갑시다 가요!
허허 웃는 사내의 얼굴이 노을 지는 때가 아님에도 불구 빛 바랜 모습이다. 그걸 눈치채지 못한 소년은 벌써부터 땅을 지치며 달려간다. 어디까지고 달려갈 수 있을 것처럼, 무수한 장애물이라도 보란 듯이 부수고 넘어갈 수 있을 것처럼. 새로운 계절이 다가옴에도 동산 위의 바람은 춥다. 추위를 모르는 아이는 외투를 여미는 것을 모른 채 바람을 맞는다. 돌멩이를 주워 뒤따라가는 사내의 뒤에서 잎사귀들이 속삭이는 소리가 바람을 타고 감돈다. 그 사이로 햇빛이 나뭇잎 모양으로 빛살을 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