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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마코 마켓> 잡감

barde 2014. 5. 19. 02:16

<타마코 마켓>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마지막 화에, 타마코가 자신이 우사기야마 상점가에서 살아온 시간을 말하며, 여기서 태어나고 사람들과 마주하며 자란 게 정말로 기쁜 일이라고 말했을 때, 나도 만약에 타마코처럼 교토의 한 상점가에서 태어났다면, 그녀와 같은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그랬을지도 모르고, 아니면 다른 생각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자일 확률이 훨씬 더 높았을 것이다.


한국에서, 어느 한 곳에 정착해 유년기의 전부를 보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부산에서 태어나, 어머니의 말에 따르면 6개월 정도를 이문동에서 살았고, 그리고 부평으로 건너가 거기서 어린이집 시절을 보냈다. 어린이집의 기억은 현재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아버지가 밤에 혼자서 놀고 있는 나를 데리고 온 것만은 어렴풋이 기억난다. 그리고 진주로 내려가 거기서 유치원을 다녔고, 나의 의향으로 다시 인천으로 올라와서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인천에서 다녔다. 그 이후로는 수원에 잠시 있다가, 재작년 봄의 어느 사건을 계기로 서울에서 계속 살고 있지만(잠시 인천에서 지냈던 적이 있다. 그 때는 인천항 바로 옆에서 거주했다), 나는 한 번도 어느 특정한 곳을, 진정한 의미에서 나의 ‘고향’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그것은 당연한 일인데, 왜냐면 나는 좁은 한국땅 위에서 계속 움직여 왔을 뿐이고, 자신의 마을이라는 느낌을 가지고 살았던 곳은, 아쉽게도 없기 때문이다. 어느 곳이나 나에게 있어서는 낯선 땅에 지나지 않았다.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나는 삶에서 공간의 기억을 애써 부정하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게 있어 한국은, 너무나 단순하거나 혹은 복잡해서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사는 곳일 따름이었다. ‘중간’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 곳, 거기가 바로 한국이었다.

다시 <타마코 마켓>의 이야기로 돌아오면, 나는 실제 교토가 애니메이션에 그려진 바과 같이 따뜻하고, 정이 넘치는 곳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직접 둘러본 적도 있고, 사람들을 겪기도 했지만, 교토는 (특히 건물이) 아름답기는 해도 무엇보다 기능적인 도시였다. 많은 차들과 버스는 느리게, 그러나 정확히 목적지를 향해 움직였다. 사람들은 실리에 밝았고, 전통을 중요시했으며, 자신의 마을을 스스로의 손으로 지켜 나간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관광객에게는 친절했지만, 그것은 교토가 관광도시였기 때문이지, 실제로 이방인에게 그리 관대한 도시는 아니었다. 나는 관광객과 이방인의 사이에 있었지만, 교토에서는 오히려 전자에 가까웠다는 느낌이다. 반대로 말하면, 나는 교토에서 ‘외국인’이었다는 것이다.

'우사기야마 상점가'에서 살고 싶다. 하지만 외국인들은 그럴 수 없다. <타마코 마켓>에서, 남국에서 올라온 ‘방문객’들을 제외하고 외국인은 드러나지 않는다. 외국인을 굳이 드러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 아마도 그 편이 더욱 ‘자연스러웠기’ 때문에 그랬을 거다. 하지만 알다시피 교토에 사는 외국인은 꽤 많다. 유학생도 있고, 워킹 홀리데이로 온 노동자도 있으며, 그곳에 뿌리를 박고 사는 재일한국인이나 재일중국인들도 많다. 그들은 전부 <타마코 마켓>에서 사라져 있다. 없는 게 아니다, ‘사라져’ 있는 것이다. 현실의 타마코는 상점가에서, 일본어를 잘 모르는 관광객이나 일본어를 능숙하게 하지만 모어는 아닌 유학생, 일본어를 모어로 하지만 이름은 다른 ‘외국인’들을 종종 보았을 것이다. 타마코는 그들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같이 즐겁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다른 생각을 가졌을까. 나는 그녀에게 묻고 싶다. “그곳에서 평생을 사는 일이, 정말로 즐겁고 행복하신가요?”

미래의 나는 오늘도 그녀의 대답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