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29.
오늘은, 잔액이 50원밖에 안 남아 버스에서 내린 남자를 보았다. 남자는, 가방을 메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다 탈 때까지 버스 앞좌석 옆에서 기다리고는, 사람들이 다 타고 나자 홀로 버스에서 내려 인도를 걸었다. 그리고 남자는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나는 그 남자의 심정을 알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저 남자가 아닌데, 그의 심정을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혹시 그는 그냥 재수가 없다고, 교통카드를 충전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게 아니었을까? 알 수 없지만, 그러나 나는 그 남자에 대해 계속 생각했다. 버스에는 사람들이 몇 명 있었다. 다들 어둠에 맞서 달리는 버스에서, 아무 말도 없이 앉아 있었다. 나는 버스를 타고 가며 계속 이렇게 생각했다. 죽기 위해 사는 것이다, 죽기 위해 사는 것이다. 버스에서 내려 타이어에 발이 끼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걸어가, 홈플러스에서 아쿠아리우스를 구매했다. 사람들이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며 고민하다, 그래,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하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알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 이런 말은 좋지 못하다. 지난 12월 28일에 쓴 일기를 기억한다. 거기서 나는 이렇게 적었다. "이대로 가면 안 된다, 이건 말도 안 된다 하는 절박한 인식이 사람들을 한 곳으로 모이게 했다. 역사를 '진보하는 방향'으로 다시 돌려놓을 수 있기를 바란다." 지금에 와서 보면, 역사의 진보란 때론 후퇴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아니, 후퇴하는 것 자체가 '역사의 진보'라고 불리는 것이 아닐까. 이것은 정신승리나 아포리즘이 아니다. 진실로 후퇴하는 자는, 앞날에 대한 전망을 가지고 있지 않은 법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한보 한보 위태로운 발걸음을 디뎌 나가는 것'이다. 진보는 바로 그곳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