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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mpreintes du beau rêve
아름답다, 너무나 아름답다. 영화를 다 보고 난 내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한편, 생각이 나서 구글에서 라고 검색해 보았다. 구글은 내게 다음 영화를 추천해 주었다. 나는 거기로 들어가, 사람들이 남긴 별점평을 하나하나 읽어보았다. 사람들의 별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는데, 하나는 "이와이 슌지의 섬세함, 영상미"라는 높은 평가였고(숫자로 따지자면 8에서 10점), 다른 하나는 "지루하다. 순백의 변태. 스토리가 없다"는 짜디짠 평가였다. (숫자로 따지자면 2에서 0점. 0점과 2점이 비등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총점은 6.7점, '열심회원'의 평점은 7.5점이었다. 열심회원의 평점이 조금 높은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열심회원 중에서는 이와이 슌지 감독의 팬이나, 일본영화의 문법에 익숙한 사람들..
언젠가, 언젠가의 겨울밤에, 나는 내가 바로 앞에 총구를 마주하고 있다는 상상을 했고, 공포에 떨었던 적이 있다. 그러나 내가 만약 현실에서 그런 일을 당했을 경우, 나는 침착하게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내가 밤이 되면 이불 속에 들어가, 겁쟁이가 된다는 사실을 의미하는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분명히 나는 총구를 마주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것은 사람을 죽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본다면, 그것이 '총구'만을 두려워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내가 두려워했던 것은 '총구'가 아니었다. 내가 두려워했던 것은, 그러니까 길게 풀어서 설명해 보자면, 사람이 사람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잔인함, 천진난만함 그 자체였다. 이성적으로 생각해..
친구의 부탁으로 지난번에 적은 글, 우산의 저주를 이어서 써 볼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금 시각은 오전 4시 46분이지만, 그것이 내가 글을 쓰는 데 크게 문제가 되거나, 혹은 글을 쓰다 잠들어버린다거나 하는 일을 발생시킬 만한 커다란 변수가 되지는 않는다. 여하간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했으니, 바로 뒤의 일부터 적어내려 볼까 한다. 그래서 나는 할아버지에게서 받은 우산을 쓰고 숙소에 도착했다. 이 숙소는 게스트하우스인데, 아는 사람은 잘 알겠지만 게스트하우스라는 곳은 여러 사람이 묵었다 떠나는 곳이다. 그래서 이제까지 묵었던 사람들이 사용했던 우산들이 하나가득 꽂혀 있다. (다행히도, 칫솔이나 쓰던 티슈, 성냥 같은 물건은 남아 있지 않다.) 그래서 나도 거기에 내가 쓰던 우산을 하나 꽂았다. 이때까지..
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단순하고 명백하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는 가까운 미래의 인류에 대해 말하고 있으며, 그렇다는 말은 곧, 영화관에 앉아서 편하게 팝콘을 먹고 있는 우리들 또한 그러한 미래를 겪으리라는 것을 암시한다. 물론 병충해로 식량을 구할 수 없는 사정은 하나의 가능한 미래에 지나지 않는다. 인류는 언젠가는 자신들이 터전을 일구고 살아왔던 요람, 어머니 대지를 떠나야 하며, 그를 위해서는 (영화의 시나리오대로라면) 중력 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그리고 중력 방정식을 풀기 위해서, 누군가는 블랙홀에 들어가야 한다. 또한 이 모든 일들이 시작하기 이전에, 한 가족의 이야기가 있다. 영화를 본 우리는, '머피의 법칙' 머피가 본 유령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다. 머피는 ..
인간이 다른 인간을 불신하게 되는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그런 이유들을 가지고 '인간불신'이라는 포지션을 가지고, 그것을--이를테면 죽을 때까지--유지하는 경우는 보기 드물다. 문득 생각해 보면 이것이 당연하거나 자명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왜 그들은, 그러니까 인간을 불신할 만한 충분한 동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인간을 불신하지 않을까? 인간이 단순히 사회적 동물이라 그런 걸까? 만약 스티븐 핑커의 말대로 인간 본성이 '선한 천사'를 가지고 있다면, 사람들은 점차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보다는 협동하고 협조하는 이타적인 길을 택할 것이다. 그러나 가설을 뒷받침할 방대한 양의 역사적인 자료가 주어진다고 해서, 과연 인간이 '불신'이라는 포지션을 쉽게 포기할까? 바꿔 말하자면, '인간불신'이라..
"자살하면 편해진다"는 말은 이제 하나의 클리셰로 성립할 정도로 흔하디 흔한 말이 되었지만, 실제로 자살해면 편해지는 건지, 아니면 그것보다 더 괴로운 삶이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지는, 적어도 살아남은 자들 중에서는 알고 있는 사람이 없다. (일부 '귀신과 접촉했다'고 증언하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그러나 실제로 자살에 대해 생각해 본다면, 그 뒤에는 편하고 평화로운 삶이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다. 이것도 만들어진 이미지에 불과할지도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괴로운 삶을 보다 '생생한' 것으로 여기는 한편, 자살 뒤의 삶에 대해서는 생생함을 결여한 초월적인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즉, 사람들이 생각하는 '죽음 뒤의 삶'이란, 실은 현실적이지 않다면 무엇이라도 그 자리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최근, 어쩌다 보니 논논비요리를 보게 되었다. 만화는 꽤 잘 만든 일상물이었고, 딱히 흠 잡을 만한 곳도 없었지만, 한 가지 드는 생각이 있었다. 뭐냐고 하면 바로, "시골은 정말로 무서운 곳이 아닐까?" 라는 것. 알다시피 논논비요리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배경은 시골 중에서도 시골, 도쿄에서 '6시간'이나 걸리는 깡촌이다. 원작의 배경이 오카야마 현의 츠야마 시라고 한다면, 실제로 도쿄에서 도카이도 신칸센을 이용해 오카야마역까지 간 다음에, 거기서 츠야마선을 타고 츠야마역까지 간 다음, 거기서 키신선이나 인비선으로 갈아탄다고 한다면(갈아타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6시간이 걸리는 것도 납득할 만하다. 여하간, 각설하고 원래 질문으로 돌아와 본다면, 논논비요리에서 그려지는 시골은 너무나 평화롭고, 또한 풍..
는 평범한 애니메이션 영화다. 적어도, 처음 봤을 때는 그렇다. 하지만, TVA를 정주행하고 두 번째로 영화를 본다면, 그것이 약간의 '아쉬움'과,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연민 어린 시선을 품고 있음을 알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사라져가는 것'이란 바로, 일생에 두 번 다시 찾아올 일 없는, 극히 짧은 기간의 '청춘'이다. 흔히 미화되지만, 사람들이 그것이 존재하는 것마냥, 혹은 그런 것은 없다며 쓰디쓴 웃음을 품게 되는 바로 그런 방식으로 미화되는 '청춘'이다. 는 밝게 빛나는 '청춘'을 다루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영화의 장면장면들 사이에서, '청춘'이 아름답게 펼쳐지는 모습을 보게 된다. (모치조에게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타마코가 정신없이 달리는 모습은 너무나 아름답다.) 그와 동시에, 우..
아래는 내가 라인에 남긴 글을 정리한 것이다.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문장의 순서를 바꾸는 등의 편집을 가했다. 글이라는 건 굉장히 효율이 낮은 노동입니다. 들이는 시간에 비해 나오는 게 얼마 없어요. 오직 글을 안 써본 자들만이 글에 대한 환상을 가집니다. 그리고 그 환상을 부수는 것은, 현실이라는 거대한 침묵의 벽이죠. 책이 안 팔린다, 이건 표면적인 현상에 불과합니다. 진짜 문제는 그런 게 아니에요. 책을 안 읽어도 국민들은 멀쩡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조금 멍청하기는 하지만, 그런 게 큰 대수는 아니에요. 멍청함에 세상은 관대하니까요. 오히려 문제는, 누군가가 '책을 읽어' 너무 똑똑해져서, 입 바른 소리를 하게 되는 일이죠. 그래서 이를테면 글을 쓰는 사람들은, 물론 책을 많이 읽은 자들에 한하지만..
간식 사 오기 전에 쓰는 글. 따라서 난삽할 수도 있으나,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잘. 9월 3일, 이 날은 아침부터 거센 비가 내렸다. '거센 비'라고 말하면 무슨 비인지 잘 모를 수도 있으니 설명하자면, 대략 '우산--어떤 우산이라도 좋다--을 쓰지 않으면 10분 내에 어깨를 적셔 브래지어 끈이 보이는 정도'의 비가 내렸다. 나는 브래지어를 하지 않았지만, 뭐, 그런 것이 대수랴. 여하간 나는 7시에 잠들지 못하는 몸을 일으켜--이 날의 알람은 빌 에반스의 children's play song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곡이다--클렌징 폼으로 세수를 꼼꼼하게 한 뒤에, 미리 챙겨둔 캐리어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비가 내렸기 때문에 우산을 가지러 방으로 들어갔다 다시 나왔다. 우산은 초록색의, 하얀색 물방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