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novel (23)
l'Empreintes du beau rêve
나의 마지막 애가.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라고 기형도는 말했지만, 나는 오히려 사랑을 깨닫고 나서야 글을 쓰기 시작하는 것 같다, 고 문득 생각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기독교적인 의미에서의 아가페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남녀간의, 혹은 동성간의 사랑도 아니며, 하물며 부모가 아이를 사랑하는 그런 의미에서의 '사랑'도 아니다. 내가 여기서 말하고 싶었던 건, 그러니까, 이를테면 홀든의 "이런, 젠장!damn it!" 속에 담겨 있는 사랑, 인간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되려 인간에 대한 모종의 혐오와 복수심을 품을 수밖에 없는,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공공연하게 드러내지는 않고, 수줍게, 자신의 이야기를 빌리는 식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그렇게밖에 표현될 수 없는 사랑을 말한다. 내가 홀든에..
라미레지를 받았다. 꿈에서, 아니 바로 어제. 그녀는 프랑스로 유학을 간다고 했다. ENS인가 어딘가, 굉장히 엘리트가 되고 싶은, 아니면 이미 엘리트인 애들이 가는 곳이라는데, 고등학교 입시 이후부터 계속 서연고… 만 외워온 나는 잘 모르는 대학이다. 엄밀히 따지면 ‘대학’이 아니라고 했나. 국내에선 보통 “고등사범학교”라는 이름으로 통용된다고 하지만, 우선 이 “고등사범학교”라는 이름부터가, 너무 낡았다. 요새는 이런 촌스러운 이름을 쓰지 않고, “교원대학”이라는 세련된 이름을 사용한다. 아니면 “교육대학”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거나. 그래서 이 “고등사범학교”라는 이름은 일본에서 온 것인데… 쉽게 말하면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칠 교원을 전문적으로 양성하는 대학이다. 대학이 아니라고 앞에서 말했지만, 우선..
소행성 B3. 자리를 잃어버린 목소리와 기억들이 모이는 곳. 어쩌면 그것들의 유일한 안식처라고도 할 수 있는 곳. 나는 지금 소행성에 발을 딛고 서 있다. 기억을 발굴해 내기 위해, 그리고 목소리를 찾아 돌아가기 위해. * 은하인의 대부분은 신을 믿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당신이 뭔가 눈치채는 게 있다면, 그것은 바로 그들이 우주를 강하게 의식하고, 우주 ‘아래서’ 살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물론 신을 믿는 행성도 많이 있지만, 그러나 연방과 접촉하고 있는 모든 행성 가운데서는 비교적 적은 편이다. 말 그대로 은하인들은 우주와 함께 태어나 우주와 함께 사라지는데, 그러한 감각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은 바로 우주선 안이다. 우주선 안에서 칠흑같은 암흑을 바라보고 있으면… 하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우..
나는 교실에 혼자 앉아 있었다. 창문은 한쪽이 열린 채로 커튼이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었으며, 끝자락이 손을 뻗으면 닿을 위치까지 넘실대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손을 뻗거나, 아니면 창문을 다시 닫지는 않았다. 우선 그럴 이유가 없었고, 부드러운 늦봄의 바람을 맞으며 가만히 앉아 있는 일이, 꽤 기분 좋았기 때문이다. 나는 한쪽 팔로 턱을 괴고 앉아서 앞으로 해야 될 일들과, 봐야 할 만화책들, 그리고 어제 내가 앉았던 자리에 앉아 있었던 그녀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우연히 그 장면을 목격했는데, 깜빡하고 잊고 간 만화책이 한 권 있어, 그걸 가지고 돌아가기 위해 다시 교실로 돌아온 참이었다. 그리고 오늘과 같이 잠깐동안 자리에 앉아, 창문을 열어두고 멀어져 가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바람을 즐..
変な夢を見た。とってもとっても変な夢だった。僕は電車に乗って、いや、電車よりモノレールと呼んだ方がいいかな、とにかくその「何か」に乗って上と下を一夜往復した。上には給食台があって、下しも同じものがあった。次の場所では教室に座って、友達と一緒にプリントを配った。先生たちの顔も見た。僕はその夢をなんと定義すればいいのかわからない。多分夢だって、勝手に定義されるを望んでいるのではないだろう。僕はそう思う。夢はその「何か」を僕に伝えるために、そんなわけのわからない幻(イメージ)を僕に見せた。僕が夢を見て感じ、考える過去の思い出は、全部僕にできなかったものだった。僕にはそれが「できない」。けれど、もし過去をもう一度繰り返すことができるなら、僕は夢に映った光景を、同じではないけれどもう一度「繰り返す」ことはできると信じているのだ。友達と一緒にプリントを配り、そこに書いた意味不明な図を見て話したり、..
다들 잘 할 거라고 생각하는 게 우습다. 다들 잘 하지 못한다.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모른다. 허세를 부린다. 자신이 믿고 있는 것만을 의지하려 한다. 편한 길을 노리고 있다. 전혀 편하지 않은 길인데도. 며칠 전에는, 불가의 계율을 어겼다. 안정적인 길 바로 밑에는, 갈라지는 소리를 내는 절벽이 있다. 돌이 몇 개씩 우수수… 떨어진다. 그 소리를 애써 무시하며 건너고자 한다. 돌이 계속해서 떨어진다. 대조적으로, 길은 전혀 미동도 없이 저 앞까지 펼쳐져 있다. 나는 걸음을 재촉한다. 계속 걸으면, 빛이 나올까? 절벽은 이제 굉음을 내며 무너지기 시작한다. 길은 조금 흔들리기는 하지만, 무너질 기색은 없다. 절벽이 무너지는 소리는 내 가슴을 아프게 한다. 하지만, 이미 나는 '길' 위에 있는걸. 내가 ..
이로리 주변을 뱅그르르 돌며 뛰어노는 아이들이 셋 있었다. 녀석들은 서로의 꽁무니를 잡으려고 열심히 마룻바닥을 소리 없이 뛰어다녔다. 나는 편의상 이들을 “봄의 전령”이라 이름붙였다.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봄의 전령이 나의 집에 가져다 준 작은 기적에 관한 이야기다. 재미없더라도 부디. 나는 심하진 않지만 만성적으로 앓아야 하는 폐병에 걸려 다니던 학교를 휴학하고 집에서 쉬는 생활을 계속해 오고 있었다. 집에서 쉬는 것은 어머니의 잔소리와 눈치를 항시 받아야 하기에 그다지 건강에 좋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일단 내가 병에 걸린 이상 잔소리와 눈치를 큰 걱정으로 마주할 필요는 없었다. 여자—물론 모든 여자가 그렇다는 뜻은 아니다—란 병에 걸린 사람을 보면 갑자기 모성애가 솟아나 곁에서 돌봐주거나 평소라면 절..
'말'이 하늘을 나는 힘을 잃고 낙하하는 속도는 매우 빠르다, 정신을 잃어버릴 정도로. 떨어지는 말에 잘못 맞으면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보통 말에 맞는 일은 없지만. '말'을 다시 하늘로 되돌리는 방법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중력은 여전히 강하다. 남에게 사과하는 사람은 자신의 잘못이 없기를 속으로 바란다는데, 그래서 내가 '사과'하지 않은 건지도 모른다. 대신 나는 '포기'했다. 내가 언제나 발견하는 것은 '차이'와 '어쩔 수 없음'과 '낯선 얼굴'과 '아, 그래'와 제대로 살아가는 건강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내가 낄 자리가 없다. 제대로 살아가는, 때때로 자신의 상궤를 벗어나지 않은 삶에 대해 고민하는 건강한 사람들. 나는 건강한 사람들을 가만히 지켜보는 일이 좋다. 그들은 이미 '잃어버렸..
나선으로 떨어지는 밝게 빛나는 물방울이 시야를 가로질러 지나가고 있었다. 물방울이라고 해도 단순히 물이 공중에 흩뿌려진 것이 아니라, 주먹만한 물덩이가 질량을 품고 그 검은 속에서 빛을 내뿜는 찬란한 모양새였다. 작은 학교만한 돔은 열린 채로 별이 주근깨처럼 빼곡히 박혀 있는 검은 하늘을 그대로 자신의 품 안에 내려담고 있었다. 그 가운데 서서, 나는 물방울을 향해 손을 뻗는 모습을 상상하며 언젠가 아름답다는 말을 들었던 속눈썹을 치켜올렸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수한 빛무리가 거기에 부딪쳐 산개하는 듯했다. 어떤 소리도 내지 않고 내리돌던 빛나는 물방울은 이제 농구대 높이까지 와 있었다. 가까이 와서 그런지 내뿜는 빛이 더욱 밝아진 느낌이었다. 충분히 기다렸다고 생각되어진 순간, 나는 오른팔을 죽 뻗어올..
하늘로부터 떨어지는 눈송이들은 작고 하얗고 반짝거려서 손에 닿으면 곧 부서질 것만 같다. 잘 닫힌 창문을 통해 천천히 떨어지는 새하얀 눈을 바라보면서, 나는 3년 전의 일을 떠올렸다. 돌이켜 보면 그건 단어 그대로 기묘한 만남이었다.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도 알 수 없는 우연을 하나하나 밟아 나가다 보면, 나는 그 당시 혼자서 집을 지키고 있었고 이제 막 겨울로 진입한 계절은 아직 가로수에 남은 낙엽을 차가운 바람으로 하나씩 떨구었다. 해가 아직 산의 그림자에 숨어 있는 6시에 맞춰 어김없이 빗자루로 땅을 쓰는 소리가 들리면 나는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났다. 내가 일어나서 가장 처음으로 하는 일은 창문을 활짝 열고 신선한 새벽 공기를 폐에 가득 채우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날만은 여유롭게 심호흡할 정신이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