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mpreintes du beau rêve
<호문쿨루스>, 끝내 자신을 치유하지 못한 남자 본문
<고로시야 이치> 등으로 유명한 만화가 야마모토 히데오의 최신작 <호문쿨루스>는, 인간의 ‘마음’을 소재로 삼고 있다. 작가에 대해 설명하자면 2004년 대마취득법 위반으로 집행유예를 받은 적이 있을 정도로, 범상치 않은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 만화가, 야마모토 히데오가 그린 <호문쿨루스>는, 전작들에 비하면 그다지 폭력적이지도, 그로테스크하지도 않고 의외로 담담하다. 마치 인간보다는 인간의 ‘내면’을 그려내는 것이 더 징그럽다고 말하기라도 하듯, 작품 속 인물들은 반듯하지 않은 인물이 없지만, 나코시의 눈으로 보이는 ‘호문쿨루스’는 작가의 상상력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것처럼 제각기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다. 예를 들면, 온몸을 물고기가 휘감고 있는 호문쿨루스, 눈만 툭 튀어나와 있는 호문쿨루스, 그리고 몸이 여섯 동강이 난 호문쿨루스 등등. 나코시의 왼쪽 눈으로 보이는 세상은 두 눈을 뜨고 본 세상과는 완벽히 다르다. 어떻게 이 남자는 그런 ‘다른 세계’를 볼 수 있는 눈을 얻게 되었을까. 바로 ‘트리퍼네이션’ 때문이다.
노숙자 생활을 하고 있지만, 어중간하게 차 안에서 생활하고 있는 나코시에게 어느 날, 범상치 않은 복장을 한 남자가 찾아온다. 그의 이름은 이토 마나부. 자신을 봉봉(부잣집 도련님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의대생이라고 소개한 마나부는, 한 가지 섬뜩한 제안을 한다. 트리퍼네이션(두개골에 구멍을 뚫는 시술)에 동의해 주면 70만 엔을 주겠다는 것. 나코시는 처음엔 단칼에 거절하지만, 나중에 돈이 부족해지자 제안에 동의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수술을 받는 나코시. 처음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왼쪽 눈을 가렸을 때, 갑자기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나무가 되어버린 사람, 몸이 종잇장처럼 얇아져 하늘거리는 사람. 나코시는 자신이 환각을 보게 된 사실을 마나부에게 알린다. 마나부는 그것을 ‘호문쿨루스’라고 말하며, 인간의 뇌에 분포된 신체지도를 인간의 모습으로 형상화한 것을 ‘호문쿨루스’라고 설명한다. 눈과 입술과 손가락이 툭 튀어나와 있는 모습. 나코시는 마나부와 함께 다니면서, 자신의 능력을 시험해 보기 시작한다.
<호문쿨루스>에서 벌어지는 나코시와 인물 사이의 해프닝은, 상담자와 내담자 사이의 ‘심리치료’를 꼭 닮아있다. 나코시는 상대의 진짜 ‘마음’, 즉 무의식에 잠재된 마음을 본다. 그리고 그것을 날것 그대로 말함으로써, 상대에게 무의식 저 아래에 숨겨왔던 과거를 일깨우고 마침내 그를 감싸고 있던 호문쿨루스를 부숴버린다/버리게 도와준다. 여기서 상대는 나코시를 나코시로 보지 않고 예전의 기억에서 불러온 인물로 상대하는데, 이는 ‘전이’라는 개념과 일맥상통한다. 즉 내담자가 상담자를 자신의 내면에 있는 중요한 타인의 표상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코시 또한 상대를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무언가와 융합시켜 상대하는데, 이는 전이를 다시 되돌리는 ‘역전이’를 말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자신을 투사하여 내면 깊은 곳(무의식)에 잠들어 있던 기억을 불러올림으로써, 나코시는 상대의 트라우마를 치유한다. 야쿠자 두목, 1775, 이토 마나부, 이태리 맨에 이르기까지, 나코시는 자신이 직접 상대에게 다가가 자신이 보는 모습을 그대로 ‘말하면서’ 궁극적으로 치유를 이끌어 낸다.
하지만, 나코시에게는 ‘자신의 문제’가 있다. 바로 진정한 자신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나코시 자신은 다른 사람의 무의식, ‘호문쿨루스’를 보는 눈을 가지고 있기에 분석가가 되어 환자를 치유에 이르도록 할 수 있지만, 나코시 ‘자신’만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나코시는 계속 고민에 휩싸인다. 강박적으로 돌아오는 사고, “나는 누구인가.” 물론 중반에 “나는 너다”라고 하는, 투사의 본질을 보여주는 말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코시는 ‘너’에게서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없다. 그러던 와중, 나코시에게 한 여성이 다가온다. 그 당시 나코시는 인간이 호문쿨루스로 보이지 않는 일종의 ‘슬럼프’를 겪고 있었는데, 오직 그 여성만 계속 얼굴이 바뀌는 호문쿨루스로 보인다. 나코시는 혹시 그녀가 자신의 옛 여인, 나나세 나나코가 아닐까 의심한다. 꿈에서 달걀귀신으로 보이는 그녀의 얼굴. 나코시는 강박적으로 돌아오는 여인의 모습에 공포감을 느끼지만, 도저히 여인의 정체를 알아낼 수 없다.
시간은 지나고 겨울이 다가온다. 나코시는 집에 데려다 달라는 그녀를 자신이 항상 시간을 보냈던 바닷가로 이끈다. 그리고 차 안에서, 끊임없이 얼굴이 변하는 여인의 얼굴을 바라보며 나코시는 드디어 자신의 과거를, 거짓말을 하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며 털어낸다. 이윽고 추한 얼굴의 거푸집으로 변하는 여성의 얼굴. 나코시는 거기서, 기억에 없는 얼굴을 발견한다. 그 남자, 사토시는 과연 누구일까.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나코시는 나나미의 부탁에 따라 짐을 싣고 먼 곳으로 향한다. 달리던 와중에 차가 멈추게 되지만, 돈이 들어 있는 짐이 굴러떨어져 나오므로 인해 나코시가 그녀의 정체를 폭로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밝혀지는 진실들. 나코시는 성형하기 이전의 사토시였고, 나나미 또한 성형하기 이전의 나나코였다. 얼굴과 이름을 바꾸고 살아왔던 둘은 드디어 서로를 바라봐 주는 하나가 되기로 다짐한다. 호텔에서 나코시는 나나미에게 트리퍼네이션 시술을 직접 해 주고, 머리에 붕대를 한 상태로 둘은 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잠든 나나미의 이마에선 피가 배어 나온다.
나코시는 거리에 나와 사람들을 바라본다. 그러나 거기에는 나코시의 얼굴을 한 수많은 ‘나’들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호문쿨루스’다”라는 대사가 의미하는 것처럼, 나코시 자신이 종국에 이르게 된 곳은 ‘나’밖에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었다. 나코시는 나코시에게 인사하고, 그리고 나코시들은 나코시에게 화답한다. 나코시 ‘자신’밖에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나코시는 자신에게 묻는다. “여기는 천국인가…? 지옥인가?” 1년 후, 나코시는 자신의 애마를 타고 일본 열도를 누비면서 진정 해탈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런 그에게 성전환한 이토 마나부가 찾아온다. 나코시는 ‘그녀’에게 머리 여러 군데에 구멍을 뚫은 모습을 보여주며, “이제 보기만 하는 건 피곤해…” 라고 말한다. 그에게 마나부는 그저 미안하다고 말하며, 해탈한 표정을 짓는 나코시를 껴안는다. 나코시는 그녀의 두개골에 구멍을 뚫으려고 하지만, 다가오는 경찰을 보고 밖으로 나간다. 모두 자신의 얼굴을 한 경찰들. 나코시의 마지막 대사. “여어! 너희들이구나.” 슬퍼하는 마나부를 내버려 두고, 나코시는 ‘나’들에게로 향한다.
나코시의 ‘삶’은, 한마디로 정리할 수 없을 정도로 다사다난한 삶이었다. 잠을 잘 때마다 엄지손가락을 빨면서 ‘태아’와도 같은 자세를 취하는 그에게, 트리퍼네이션은 과연 축복이었을까? 결말만 보면 그렇지 않은 것처럼 생각된다. 나코시는 다른 호문쿨루스들은 치유할 수 있었지만, 오직 자신, 호문쿨루스를 ‘보는’ 자신만은 치유할 수 없었다. 자신을 봐줄 사람을 갈구하지만, 자신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찾을 수 없는 사람의 비극. 인간은 아마, 다른 사람을 제대로 알 수 없기 때문에 미치지 않고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코시의 비극적 최후는, 이토의 제안에 동의할 때부터 예견되어 있었던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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