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mpreintes du beau rêve
<별을 쫓는 아이>, 애도를 끝마치는 여정 본문
아쉽게도 나는, 2년 전에 <별을 쫓는 아이>가 개봉했을 때 영화를 극장에서 보지 못했다. 극장에서 볼 기회가 적었던 탓도 있지만,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볼 기회를 놓쳤다는 게 더 정확한 설명일 테다. 극장에서 보지 않고 집에서 모니터로 봤다고 해서 특별히 감상이 달라지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앞의 말은 작은 아쉬움을 드러낸다. 마찬가지로, <별을 쫓는 아이>에서도 어떤 ‘아쉬움’이라 할 것이 나타난다. 이러한 아쉬움을 어떤 자세로 대할 것이냐가, 영화의 주제라고도 할 수 있다.
영화의 초반은 전형적인 “boy meets girl”의 문법을 따라간다. 어릴적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와 함께 산골 어귀에 사는 중학생 소녀 아스나에게는 비밀스런 취미가 하나 있다. 그 취미란 바로 산 높은 곳에 자리잡은 바위 위로 올라가 직접 만든 라디오로 전파를 잡아 소리를 듣는 일이다. 아스나는 저 멀리 알 수 없는 곳에서 들려오는 기이한 소리에 신비로워한다. 다음 날, 아스나는 같은 자리로 올라가기 위해 철교를 건너다 정체불명의 괴물을 만난다. 아스나가 괴물 앞에서 어쩔 줄 몰라할 때, 갑자기 어딘가로부터 소년이 나타난다. 소년은 괴물과 싸우는 도중 팔을 다치지만, 목걸이에 달린 보석의 힘으로 괴물을 쓰러트리고 아스나를 구해준다. 그 뒤에 자신의 은신처 앞에 팔을 다친 예의 소년, 슌이 앉아 있음을 본 아스나는, 붕대로 소년의 팔을 감아준다. 둘은 바위 위로 올라가 같이 라디오로 소리를 듣는다. 그것이 마지막 만남이었다. 슌은 그날 밤, 시간이 다 됐다는 말을 남기고는 바위에서 땅으로 추락한다.
그리고 또 다른 만남. 아스나는 새로 부임해 온 선생에게서 알 수 없는 친근감을 느낀다. 선생님의 집으로 향하게 된 아스나. 거기서 아스나가 발견한 것은 서고를 가득 채우고 있는 각종 고서와 ‘지구 안 지구’가 그려져 있는 지도였다. 아스나는 선생으로부터 이전에 본 괴물의 그림을 본다. 선생은 지구 안에 ‘아가르타’란 세계가 있다고 말하며, 아스나를 이전까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이야기로 인도한다. 선생과 헤어지고, 아스나는 슌의 동생 신을 만난다. 신은 형의 목걸이를 들고 아가르타로 돌아가기 위해 땅으로 올라왔다. 그러다 둘은 급작스럽게 무장한 대원들로부터 쫓기게 된다. 둘은 아가르타로 들어가는 입구로 향하게 되고, 선생으로 정체를 숨겨왔던 중령 또한 그들을 쫓아 동굴 안으로 들어온다. 긴장이 팽팽한 와중에, 아스나는 보석을 이용해 마법의 문을 열고 신이 그 안으로 들어간다. 마지막 순간 중령 또한 아스나와 함께 아가르타로 들어간다. 셋은 속에서 숨을 쉴 수 있는 비타아쿠아 속으로 한 걸음 한 걸음씩 들어간다.
아가르타에 도달한 중령과 아스나는 ‘세상의 끝’으로 향하기 위한 모험에 나선다. 중간에 이런저런 시련이 있기도 했지만, 결국 둘은 저승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도착한다. 아스나는 끝없는 절벽 앞에서 감히 밑으로 내려가기를 망설인다. 중령은 그녀에게 권총 하나를 건네주고, 바닥이 보이지 않는 절벽 밑으로 내려간다. 다시 출발한 곳으로 돌아가기 위해 걷기 시작하는 아스나. 그러나 밤이 되자 그림자 속에 숨어 사는 ‘이족’들에 둘러싸여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이게 된다. 키가 큰 이족은 아스나의 목을 조른다. 숨이 끊어질려 하는 찰나, 전사들의 위협을 물리치고 달려온 신이 아스나를 괴물로부터 구한다. 재회한 둘은 다시 세상의 끝으로 향한다.
세상의 끝에서, <천공의 성 라퓨타>에 등장하는 거신병과 비슷한 케찰코틀이 둘을 삼키고 절벽의 밑으로 단번에 뛰어내린다. 케찰코틀의 몸에서 나온 둘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되는 검은 문과 마주한다. 마침 그때 중령은 영혼을 싣고 저승으로 향하는 배를 불러내서 한쪽 눈을 바치고 아내의 영혼을 막 불러낸 참이었다. 그는 아스나를 발견하고 “네가 오지 말았어야 하는데” 하는 말을 남기고 영혼을 아스나의 육체로 이식한다. 그러나 그대로 아스나가 영혼을 잃어버리게 냅둘 신이 아니었다. 그는 중령이 아스나에게 정신이 팔려 있는 동안 클라비스를 부수기 위해 계속 나이프로 찍는다. 중령이 그걸 눈치채고 신을 말려 보지만, 결국 보석은 깨지고 아내의 영혼은 다시 저승으로 돌아간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난다.
우리는 여기서 사라진 ‘사람’을 대하는 두 가지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중령은 애도에 실패했고—그리고 그 대가로 한쪽 눈을 잃었다—, 아스나는 애도에 성공했다. (아스나는 아버지의 죽음에 집착을 보이지 않고 마음 속으로 겸허히 그 사실을 인정한다.) 그는 덧없는 몸짓으로 아스나의 육체에 아내의 영혼을 이식하려 했지만 결국 클라비스를 깨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저승에 머무는 영혼을 현세로 데려올 수는 없다. 중령은 인간의 오만으로 영혼을 저승으로부터 끌어올 수 있다고 생각했고, 당연하게도 실패하고 말았다. 하마터면 육체를 잃어버릴 뻔한 아스나는 신의 안내를 받아 다시 ‘자신이 원래 있던 곳,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간다. 한쪽 눈을 잃어 지구와 아가르타 모두에 발을 딛지 못하게 된 중령은 마찬가지로 공동체로부터 추방당한 소년과 함께 아가르타에 남는다.
애도에 실패한 인간에게, 근원적인 의미에서 치유는 불가능하다. 그는 죽을 때까지 자신이 ‘잃어버리고 만 것’을 곱씹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인간과 자연을, 아가르타는 그저 묵묵히 순리에 따라 품어 나른다. 영혼을 품어 나르는 배는 여전히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죽어버린 사람이 없는 세계에서 사람들은 계속 살아 나간다. 아가르타는, 저승의 입구이면서도 자신의 공동체를 지키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며, 애도에 실패한 인간이 머무는, 너무나 넓고도 아름다운 세계다. 하나의 ‘세계’란, 이 이상 이 이하도 아닌, 딱 그만큼의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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