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mpreintes du beau rêve
마녀사냥과 마녀 프레임 본문
얼마 전 트위터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사용자가 “군대에서 살인기술을 배워온 남자들에게 범사회적으로 가산점을 준다는 게 말이 되냐” 란 트윗을 남겼다. 트윗은 순식간에 200RT을 넘으며 빠른 속도로 퍼졌고, 군필 남성들에게 공분을 불러 일으켰다. 그의 멘션창은 버튼이 눌린 군필자들의 조롱과 비난과 “너 사이코패스지?” 라는, 견디기 힘든 모욕으로 가득찼다. 그를 비난한 자들은 ‘신성한 병역의 의무’를 지고 온 자신들을 ‘살인자’로 여겼다며, 자신의 비난을 정당화했다. 나는 곁에서 논쟁을 바라볼 뿐이었지만, 이상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저 말에서 도대체 어떻게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은 살인자”라는 말을 읽어낼 수 있는가.
인터넷 상에서의 마녀사냥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단지 예전에는 가끔씩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사람들—예컨대 ‘개똥녀’, 병역비리를 저지른 연예인—이 몰매를 맞을 뿐이었지만, 이제는 커뮤니티와 SNS를 가리지 않고 시도때도 없이 마녀사냥이 일어난다. 네티즌들은 건수만 잡으면 바로 심판자들로 돌변할 자세를 갖추고 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예전에는 어떤 말들을 했는지 등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저 딱 한 마디, 그 사람을 ‘마녀’로 만들 딱 한 마디가 중요하다. 한번 ‘마녀’로 지목당하면 거기서 그의 목숨은 끝난다. 그 뒤에 따라오는 변명은 누구도 곧이곧대로 들어주지 않는다. 결국 ‘마녀’는 스스로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다.
왜 사람들은 평상시에는 조용하다가도 ‘마녀’만 발견하면 바로 마녀사냥에 뛰어들까? 사람들의 삶이 팍팍하다는 한 징후로 볼 수도 있다. 마땅히 분노를 표출할 공간이 없는 사람들이, 마음껏 익명으로 활개칠 수 있는 공간인 인터넷에서 그동안 쌓여왔던 분노를 쏟아낸다. 이왕 쏟아낼 거면 여러 사람보다는 한 사람이 적당하다. 그래서 호전적인 네티즌들은 오늘도 ‘한 마디’를 잡아내기 위해 열심히 넷상을 헤엄쳐 다니고 있다. 하지만 단지 그것뿐일까? 삶이 팍팍해서, 살기가 힘들어서 마녀를 만들어 내는 걸까? 더 근본적인 문제가 도사리고 있지 않을까? 분노를 쏟아내는 건 현상이다. 마녀사냥의 진짜 ‘이유’를 알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현상 밑의 원인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문화평론가 이택광의 저서 <마녀 프레임>에서, 그는 마녀사냥을 가능하게 하는 근본 원리로 ‘프레임 이론’을 제시한다. “프레임 이론은 특정 대상을 제시하는 방식이 우리가 취하는 선택을 어떻게 좌지우지하는지 설명해준다. 우리 선택이나 판단은 프레임에 따를 뿐 이성에 준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즉 마녀사냥을 하게 만드는 ‘판단’은 이미 만들어진 프레임에 따를 뿐 이성과는 관계가 없다. 사람들은 이성적으로 ‘마녀’를 판별해 내지 않는다. 자신의 머릿속에 이미 갖추어진 프레임—고정관념이라고도 할 수 있을—에 따라 저 사람이 마녀인지 마녀가 아닌지 판단한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마녀사냥이라는 ‘현상’이 아니라 마녀사냥을 발생시키는 원인, 즉 프레임이다.
마녀사냥은 지금도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커뮤니티와 SNS가 존재하는 이상, 누군가는 불온한 한 마디로 인해 ‘마녀’로 지목받으며 억울하게 비난을 받으며 쫓겨난다. 누구도 거기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 우리 모두는 잠재적으로 ‘마녀’가 될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우리는 모두 마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