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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mpreintes du beau rêve
"모든 고귀한 것은 힘들 뿐만 아니라 드물다." 바뤼흐 드 스피노자 눈물로 마른 바람을 적시는 가을이 오면 그녀가 가장 먼저 바라던 것은 만년필에 갈색 잉크를 먹이던 일이었다. 나는 옆에서 그 모습을 그저 가만히 지켜볼 뿐이었지만, 그녀는 그 일만이 지금 이 순간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듯 심혈을 기울여 피스톤을 조심스레 돌리고 있었다. 그녀는 이 펜은 피스톤이 아니라 플런져라고 몇 번이고 말했지만, 나는 그 말을 한 귀로 흘려듣고는 또 "아, 그렇게 피스톤을 천천히 돌릴 필요가 있어?" 하고 물어보게 되는 것이다. 이 모든 발화와 행동은 오해와 주의력 결핍으로 발생했고, 그녀의 뺨엔 홍조보다는 주름이 피어날 때가 많았다. 그러나 그 때까지만 해도 나는 둘 사이에 아무 문제가 없을 줄로 알았다. 왜냐면 내..
세상 위의 모든 것이 자신을 지탱하던 힘을 잃고 땅으로 떨어지는 시간이 오면, 땅 위로 가라앉아 스며드는 조각별 하나하나는 눈물로 마른 대지를 적신다... 영겁의 시간이 지나고, 인간의 시간이 다가와 점차 밝아져 오는 땅 위로 모습을 드러내는 게 보이면 드문드문 내려앉아 있던 조각별들은 어디에도 사라지고 없더라. 다만 한때 밝게 빛났을 유성의 타고 남은 찌꺼기가 나무 밑둥이나 돌 사이에 박혀 있는데, 그을음이 그것의 험난했던 여정을 증명하기라도 하는 것마냥 주위에 감돌아 있고, 나뭇가지나 마른 잎과 같은 것들은 숨죽여 새로운 방문객, '다른' 세상에서 온 방문객을 맞는다. 산 위로 터벅터벅 올라오는 것은 인간의 발걸음 소리. 아직 덜 여문 팔다리를 한 소년이 그 곁으로 조심조심 발을 내딛으며 따라오고 있..
붉은 기가 도는 흙으로 지어진 작은 집은, 누구도 그 기원을 묻지 않을 정도로 무덤덤했으며 쉽게 다가갈 수 없는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다. 발을 친 입구를 조심스럽게 걷어 집 안으로 들어서면, 손이 그 위를 인내심을 가지고 스쳐 지나간 흔적이 맨들맨들한 광택을 통해 드러나는 아담한 탁자가 보이고, 거기에 새끼처럼 들러붙어 있는 땅딸막한 의자가 두 개 있다. 그 밖에 보이는 거라곤 낡아빠진 이불을 덮고 있는, 그 위에 누우면 바로 삐걱대는 소리를 낼 법한 키 낮은 침대나 위태롭게 벽을 쥐고 버티고 서 있는 선반, 흐려서 간신히 다가오는, 혹은 멀어져 가는 사람을 분별할 수 있을 정도의 창문--그마저도 눈이나 비가 오면 아예 보이지 않겠지만--정도였다. 그곳에 사람이 없다면 집은 말 그대로 폐가, 좋게 말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