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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mpreintes du beau rêve
그녀는 마법사였다, 이 세계가 아닌 내가 알지 못하는 다른 세계로부터 온 마법사였다. 마법사임에 분명했다, 그녀는. 그리고 나는 평범한 소년이자 학생이었다. 나는 그녀를 위해 말한다. 그녀는 나를 위해 말한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말한다. “마법사여, 세상에 빛을!” 17살의 여름, 이라고 적으면 어딘가 아쉽고 그리운 느낌을 주지만, 그 당시 나는 하루라도 빨리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싶어서 혈안이 되어 있었다. 지정석인 창가 바로 옆자리에 앉아서 턱을 괴고 바깥을 멍하니 내다보고 있자면, 달리는 또래의 학생이라든가 열심히 호루라기를 불고 있는 체육선생이 보이는 운동장이 바로 앞에 드넓게 펼쳐져 있고, 그 뒤로 얇은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둔 채 주택가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렇지만 내가 다니는 학교는 저 집..
산 중턱에서 조금 올라간 곳에 자리잡은 정신병원에 딸려 있는, 환자들을 위한 요양소의 한 2인용 병실(침실)에 두 사람이 앉아 있다. 둘을 감싸고 있는 벽면은 티 하나 없이 새하얗다. 심지어 서랍과 창틀조차도. 둘은 자신의 침대에 걸터앉은 채 서로를 마주보고 있다. 한쪽은 무기력한 눈을 하고 있지만, 다른 한쪽은 그렇지 않다. 무기력한 눈을 한 쪽은 헝클어진 머리를 제멋대로 빗어내린 여자로, 나이는 대략 20대 중반 정도로 되어 보인다. 그리고 다른 한쪽은 남자로 보이는데, 피곤한 눈을 하고 있지만 눈동자만은 반짝반짝 빛난다. 나이는 아마 30대 초중반 정도일 것이다. 나는 둘 사이에 앉아서 그들의 대화를 옮겨적었다. 아, 오해하지 말기를. 나는 '여기에' 들어온 환자가 아니다. 그리고 나는 한 마디도 ..
바람이 부는 가을날이었다. 나는 보도블럭을 천천히 밟으며 길 위에 떨어져 있는 낙엽을 세었다. 저건 노란 단풍, 저건 빨간 단풍, 그리고 저건… 새빨갛게 물든 잎이 떨어져 내려 보도블럭을 흠뻑 적셨지만, 아직까지도 나뭇가지에는 셀 수 없을 정도의 단풍이 덧그려져 있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천천히 걸어 보았다. 그러자 내 마음 한구석에서 조금씩, 조금씩 노래가 흘러 나오기 시작했다. 노래는 이렇게 시작했다. 「지금부터 어딘가, 먼 곳으로 갈 수 있을 것만 같아—」 단풍의 마력이라고나 할까, 매력은 바로 빨강과 노랑의 적절한 조화가 일구어 내는 풍경이다. 멀리서 보이는 숲의 모습처럼, 가로수길에 늘어선 단풍나무는 그 색과 질감만으로 작은 숲을 보여준다. 가만히 서 있자면 불타오르는 숲으로 빨려들 것만..
옛날 옛날, 아직 한반도에 호랑이를 신으로 믿는 부족과 곰을 신으로 믿는 부족이 나타나지 않았을 때, 저 멀리 갈리아(지금의 프랑스, 벨기에, 룩셈부르크 그리고 스위스 대부분) 지방에 갓 구워진 빵과 잘 마른 건포도가 살았습니다. 건포도는 몸집이 작은데도 잘도 자기보다 큰 상대를 놀리곤 했는데, 빵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헤이, 빵. 오늘은 네 곰보가 더 두드러져 보이는걸?”“건포도야, 이제 나를 그만 놀리면 어떨까? 사실 네 농담은 재밌지도 않거든.” “뭐라고! 이 곰보덩어리가! 물에나 빠져서 흐느적거리기나 하라구!” 하지만 빵은 오븐에서 나올 때부터 마음씨가 아주 착했기 때문에, 건포도가 무슨 말을 해도 헤헤 웃으면서 흘려 넘겨 주었습니다. 그래서 건포도가 짓궂어진 건지도 모르겠지만, 하여튼 건포도는..
오래전 어느 작은 마을에 있었던 일이다. 마을에는 사람이 건너지 못할 정도로 넓지는 않지만 실개천보다는 훨씬 넓은 강이 하나 흐르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 강을 “아르카디아”라고 불렀는데,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강의 이름의 유래가 된 한 소년에 관한 이야기다. 마을에 사람이 지금보다 적게 살았을 때, 사람들은 밭을 일궈 농사를 짓거나 마을 주위를 둘러친 숲에서 나무를 캐고 살았다. 대부분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았으므로 글을 아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러나 어린아이들 중에는 유달리 머리가 좋은 아이가 있어,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곧잘 글을 읽거나 낡은 종이에 목탄으로 글을 쓰거나 했다. 소년이 바로 그런 유에 속했다. 소년은 걸음마를 뗄 때부터 글자가 적혀 있는 물건에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그래서 소..
내가 그녀를 만나게 된 것은, 그러니까, 순전히 우연이었다. 사실 그녀와 만난 적도 단 한 번밖에 없으므로, 이렇게 자리를 잡고 앉아 이야기를 시작한다고 해도 막상 할 게 별로 없지만, 그래도 일단 부탁을 받은 이상 계속 밀고 나갈 수밖에 없다. 자, 그럼 내가 어떻게 그녀를 만나게 됐는지, 그 이야기부터 하도록 하자. 그 당시 나는 막 레비아탄 17-b 행성에서 돌아온 참이었다. 그래서 굉장히 피곤한 몸으로 지구에 있는 나의 아늑한 집에서 쉬고 있었다. 아늑하다고 해도 나 혼자 사는 집이 아니었으므로, 그다지 ‘편하게’ 쉬진 못했다. 그래도 길바닥에 범우주용 간이 텐트를 쳐 놓고 들어가서 사는 것보단 나았기에, 불평하지 않고 먹고 자는 생활만을 계속하는 지루한 날을 보냈다. 레비아탄의 시끌벅적함과 다종..
초등학교의 한 학급에서 있었던 일이다. 당시에 학교에는 '붉은 실'이라는 놀이가 유행하고 있어, 남자 혹은 여자가 "붉은 실을 발견했다"고 말하면 그 둘은 짝이 되어 일 년을 보내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어디까지나 놀이에 지나지 않았지만, 가끔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한 남자아이가 있었다. 벚나무가 만개한 벚꽃을 흩날리던 어느 날, 남자아이는 새끼손가락을 보더니 "붉은 실이다!" 하고 외쳤다. 모두가 하던 일을 멈추고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이는 새끼손가락만을 편 채로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가더니, 가만히 앉아서 실뜨기를 하고 있던 여자아이의 손목을 탁 하고 잡았다. 여자아이는 놀라서 "어?" 하고 놀람이 담긴 물음을 내뱉었지만, 남자아이는 갑자기 여자아이의 손가락을 펴더니 다시금 큰 소리로 외쳤다. "붉..
두둥실 떠 가는 풍선을 보고 있는 한 소년이 있었다. 소년은 으레 노인을 끌고 다녔는데, 노인은 하는 일도 없이 그저 하루에 한 번 공원에 건들거리며 무료배급 차에 줄을 서서 점심을 먹었다. 노인이 아직까지 살아 있는 이유는 필시 하루에 한 끼밖에 먹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소년은 노인이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쓰지도 않고 풍선을 쫓는 강아지를 쫓거나 토끼 모양 구름을 하루 종일 바라보거나 할 뿐이었다. 노인은 그런 소년의 옆에서 짚신을 짜는 흉내를 내며 무료한 시간을 실타래를 풀듯 보냈다. 노인은 가끔 소년에게 말을 걸었다. 대화는 보통 이렇게 시작된다."그런데 소년, 뭐 재밌는 이야기 없어?"그러면 소년은 이렇게 답한다."재밌는 이야기? 재밌는 이야기가 뭔데?"소년의 대답을 들은 노인은 한숨을 길게 내쉰..
다다미 넉장 반 방이 너무나 춥다. 추워서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조용히 울지는 않았다. 사실은 너무 추워서 울음이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슬픔은 얼어버린 발가락을 비집고 나올 정도로 강렬했다. 그래서 나는 코타츠 없는 추운 방을 원망했다. 방에 코타츠가 없으면 무엇하냐고 나를 타박하는 것은 나의 다른 인격, 점잖고 따뜻한 곳을 좋아하는 인격이었지만, 거기에 해 줄 말을 몰라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어느새 밤이 지나버리고 날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조선은 너무 추운 것 같아" 하고 그는 말했고, 말하면서도 지치는지 한숨을 폭 하고 쉬었다. 나는 그의 차가운 발을 데워줄 코타츠 하나 못 구하는 것에 미안함을 느꼈다. 그렇다고 해도, 한 달 생활비에 맞먹는 것을 들여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코..
“기차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 갑자기 앞으로 달려드는 꼬마를 능숙하게 피하며, 한발뛰기로 멀치감치 물러난 뒤에 고개를 홱 하고 돌려 뒤돌아보는, 역시나 어린 꼬마가 피식 웃음을 흘린다. 그러나 이 모습을 꼬마들이 노는 모습이라고 착각하면 심히 곤란하다. 한 쪽은 꼬마지만, 다른 한쪽은 인간 나이로 따지면 20대가 꺾이는 나이이기 때문이다. 겉모습만 보면 전혀 그런 사실을 알 수 없지만, 단 한 사람, 문 앞에서 팔짱을 끼고 지켜보는 키가 멀대같이 큰 한 사람만은 꼬마가 사실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임을 알고 있었다. 다른 ‘존재’는 폴짝폴짝 뛰어와 키 큰 사람이 입은 망토를 잡고 꾀어내는 듯한 목소리로 말한다. “언니는 같이 놀 생각 없어? 나 너무 심심한데.” “하핫. 전혀 그럴 마음 없는데. 오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