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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mpreintes du beau rêve

<시간을 달리는 소녀> 짧은 감상 본문

etc.

<시간을 달리는 소녀> 짧은 감상

barde 2013. 7. 31. 05:29


솔직히 이 정도로 명작이면 그야말로 머릿속이 드넓은 하늘을 본 것마냥 팟 하고 개운해진다. 문구를 붙일 여지를 주지 않는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란 그런 영화다.



 어제 일본문화원에서 <시간을 달리는 소녀時をかける少女>를 보고 왔다. 사람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꽤 모여 있어서 살짝 놀랐다. 알고 온 것일까, 아니면 '시간 죽이기'를 위해 온 것일까는 알 수 없었지만, 다들 영화에 집중해서 몰입하는 모습이었다.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DVD라 화질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는 점이다. 블루레이로 틀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어차피 공짜로 보는 거라 그런 것까지 바라는 건 사치고. 그리고 음량이 작아서 작은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아무래도 영화관이 아니라 홀이라서 어쩔 수 없었던 것 같다. 해서 영화는 아주 좋았다.


  여기서 '좋다'는 말은 감동적이다, 라기보다는 깔끔해서 흠 잡을 데가 없다는 소리다. 모든 플롯이 완벽하고, 행동에는 개연성이 있으며, 주인공은 성장의 과정을 거치고, 친구는 미래에서 왔는데 다시 미래로 돌아가고, 약속을 하고, Time waits for no one이고... 남녀노소가 볼 만한 데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명작은 단어 그대로의 의미에서 보편적이다. 누구에게나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리고 같지는 않겠지만 비슷한 메시지를 던져준다. 나는 오히려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역량보다는 원작자인 츠츠이 야스타카를 주목했다. 조사해 보니 내년이면 여든이 되는 노인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작년에 라이트 노벨을 썼다고 하니, 다른 의미에서 대단한 사람이다.


  그래서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작가 자신의 작품 리스트에서 보면 이질적인 작품이라고 한다. 원래는 자기가 속한 업계부터 시작해서 문단과 세상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디스하는, 쿠메타 코지를 생각나게 하는 작품을 쓴다고 한다. 나는 이 작가의 소설을 아직 한 권도 읽어보지 않았지만, 흥미가 생겨서 한번 읽어볼 작정이다.


  다시 <시간을 달리는 소녀>로 돌아가서, 여담을 하나 해 보기로 한다. 작중에는 마코토가 타임 리프를 할 때 글렌 굴드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흐른다. 이 블로그를 방문하는 사람 중에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래도 잠시 설명해 보자면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바흐가 작곡한 쳄발로(하프시코드)를 위한 소품이다. 여기에는 공작의 의뢰를 받은 어린 소년을 위해 바흐가 대신 작곡을 해 준다는 훈훈한? 뒷이야기가 있지만, 사실인지는 불분명하다. 작중에서 자주 반복되는 부분은 그 중에서 제1변주다. 듣다 보면 아주 흥겹다. 실제로 타임 리프를 할 때도 기상천외한 체험을 겪는 것 같으니 잘 맞는 음악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반복'이다.


  작품에 '반복'을 도입하는 이유가 뭘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바로 '다시 해 보면 어떨까' 하는 후회에 중심을 두는 게 가장 많아 보인다. 다시 해 봐도 안 될 수도 있고, 오히려 더 일을 그르칠 수도 있지만, 후회하고 반복하고자 하는 욕망은 인간에게 있어서 영원한 주제다. 그런데 <시달소>에서 나타나는 반복은 다른 '반복'과는 뭔가 다르다. 타임 리프를 하면 과거로 돌아가서 새로운 기억으로 덧쓸 수 있다. 여기서 원래 있었던 일은 사라져버리고 만다. 마치 컴퓨터에서 기존의 기억을 지우고 새로쓰기를 하는 것처럼, 시간이 사라진 자리에는 기억도 사라진다. 상당히 흥미로운 설정이다.


  마지막에 마코토는 자신의 남은 타임 리프 횟수가 하나로 바뀐 것을 깨닫고 다시, 마지막으로 과거로 돌아간다. "기억을 지우고 덧쓴다"는 설정이 없으면, 불가능한 신이다. 여기서 타임 리프는 어디까지나 마코토의 사용에 국한되고, 사용도 철저히 개인적인 영역에서만 이루어지며(복권을 산다거나 경마장에 간다는 식의 발상도 없다. 나라면 했을 텐데.), 마지막에는 훈훈한 결말로 끝을 맺는다. 츠츠이 야스타카가 이런 '배려'를 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호소다 마모루가 감독한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점에 대해 나는 작가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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