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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mpreintes du beau rêve

<언어의 정원>: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 그 후로 14년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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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정원>: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 그 후로 14년

barde 2013. 8. 18. 01:35




<초속 5cm>로 유명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신작 <언어의 정원>은 5월 31일에 개봉한 영화다. 영화가 개봉한 날짜가 무엇이 중요하냐고 하면, 바로 영화의 배경이 장마가 시작하는 6월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줄거리는 조금만 검색해 보면 바로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생략하기로 하고, 영화를 보면서 생긴 ‘한 가지 질문’에 대해 차분히 이야기해 보겠다. 이 ‘한 가지 질문’이란, 별 것 아니다. 그 질문은 이렇다. “왜 영화가 짧은가?” 바꿔 말하면, “왜 영화를 짧게 만들 수밖에 없었나?”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조금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기로 한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타임라인에서 가장 앞에 위치하는, 1999년에 제작된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로.


지금 새삼스레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를 꺼내든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신작 <언어의 정원>은, 분위기로만 놓고 보면 14년 전에 만들어진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와 가장 흡사하다.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에서 이야기의 화자가 되는 것은 작은 고양이다. 이름은 쵸비로, ‘비 내리던’ 봄의 어느 날 ‘그녀’에게 주워져서 같이 살게 된다. <언어의 정원>에서 유키노와 타카오가 처음 만난 것도 비 내리던 어느 여름날이었다. 비슷한 건 이것뿐만이 아니다. 유키노도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혼자 살고 있었고, ‘그녀’도 고양이를 줍기 전까지 계속 혼자 살고 있었다.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가 봄부터 겨울의 이야기라는 것과 <언어의 정원>이 여름의 이야기라는 점을 제외하면, 둘은 닮아도 너무나 닮았다.


알다시피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는 모든 작업(음악은 텐몬이 담당했다)을 신카이 마코토 감독 혼자서 한 작품으로, 상영 시간은 5분이 채 안 된다. (4분 46초) 5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고양이’가 하고자 한 이야기는 너무나 많다. 그는 나레이션을 읊는 식으로 그녀와 살았던 1년을 말해 보려고 하지만, 그녀 같은 여성이 좋다든지, 눈은 모든 소리를 흡수한다든지, 이 세계가 좋다고 생각한다든지 하는 말을 할 수 있을 뿐이다. 반면에 ‘그녀’는 딱 두 마디만을 할 뿐이다. “제발 도와줘.” “이 세계가 좋다고 생각한다.” 나머지 모든 ‘말’은 영상이 대신 하고 있다. 여기서 ‘고양이’는 화자로 등장하지만, 화자의 역할은 최대한 ‘그 당시’의 풍경, 냄새, 온도 그리고 분위기를 손에 잡힐 듯 이끌어 내는 것이다.


1999년의 작은 고양이가 자신의 세계에서 어떻게든 자신이 겪었던 시간을 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 2013년의 타카오와 유키노는 바쁘게 흘러가는 세상에서 제대로 걷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유키노는 시코쿠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하여, 타카오는 훌륭한 구두를 만들기 위하여. 둘의 미래는 앞으로 활짝 열려 있기에(작중 시간은 현재 시간을 내포하고 있다. 유키노가 편지를 보낸 때는 2014년 2월, 그러니까 아직 오지 않은 미래다.), 관객은 약간의 허탈함을 느끼면서도 둘의 미래를 조용히 응원해 줄 수밖에 없다. 자, 여기서 앞의 질문에 대한 답을 한다면 어떨까? 아마 “다가올 미래는 알지 못하는 채로 활짝 열려 있기 때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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