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mpreintes du beau rêve
가을 본문
바람이 부는 가을날이었다. 나는 보도블럭을 천천히 밟으며 길 위에 떨어져 있는 낙엽을 세었다. 저건 노란 단풍, 저건 빨간 단풍, 그리고 저건… 새빨갛게 물든 잎이 떨어져 내려 보도블럭을 흠뻑 적셨지만, 아직까지도 나뭇가지에는 셀 수 없을 정도의 단풍이 덧그려져 있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천천히 걸어 보았다. 그러자 내 마음 한구석에서 조금씩, 조금씩 노래가 흘러 나오기 시작했다. 노래는 이렇게 시작했다.
「지금부터 어딘가, 먼 곳으로 갈 수 있을 것만 같아—」
단풍의 마력이라고나 할까, 매력은 바로 빨강과 노랑의 적절한 조화가 일구어 내는 풍경이다. 멀리서 보이는 숲의 모습처럼, 가로수길에 늘어선 단풍나무는 그 색과 질감만으로 작은 숲을 보여준다. 가만히 서 있자면 불타오르는 숲으로 빨려들 것만 같은,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감… 풍경화로 그리기엔 딱 좋은 모습이다. 그래서 사람의 눈에는 단풍이 그리도 멋져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봄에는 벚꽃, 가을에는 단풍. 한 계절에 하나의 매력이 담겨 있어서 공평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렇다면 여름에는? 짙은 녹음일 테다. 겨울에는 눈이 소복히 쌓인 검은 나뭇가지와 추워 보이는 몸통이 다른 색을 대신한다. 누군가 이 중에서 어떤 색을 가장 좋아하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조금 주저하면서 "빨강"이라고 답하리라. 이유는 묻지 않는 게 좋겠다, 어차피 인상일 뿐이니까.
단풍 하면 10년 전에 온천마을에서 보았던 한 꼬마아이가 생각난다. 그 아이는 부모를 데리고 온천에 여행을 온 모양이었다. 나는 그 당시 요양을 위해 한 료칸에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너무나 편하고 아늑해 한 달이나 묵었더랬다. 그래서 낮에는 마을 주위를 어슬렁거리고 밤에는 온천에 몸을 담갔다 저녁을 먹고 잠드는, 규칙적이기 그지없는 생활을 해 왔다. 꼬마는 주로 낮에 활동했기 때문에, 나는 어렵지 않게 꼬마가 오솔길을 걷거나 가게에서 간식을 사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 차마 말을 걸진 못했지만. 그러나 꼬마 쪽에서 말을 건다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었으므로, 우리 둘은 서로를 가볍게 스쳐 지나가며 평범한 두 여행객을 연기했다. 나보단 꼬마 쪽이 더 능숙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던 어느 날, 꼬마는 부모를 데리고 유황 연기가 자욱히 피어 오르는 계곡으로 향했다. 마침 나도 할 일이 없었으므로 꼬마를 따라 계곡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계곡에선 밑에서부터 지독하고도 매캐한 연기가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어른이라도 곁에서 바라보고 있기가 힘들텐데 어찌 꼬마는 엄마 손을 꼭 잡고 잘도 밑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주위에는 우리 넷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뒷짐을 지고 연기가 피어올라 하늘로 오르는 모습을 약간은 멍하게 바라보았다.
"왜 저 밑에서 연기가 나는 거야?"
꼬마가 그의 부모에게 묻는 소리였다. 아빠가 "저기서 물이 나오는데, 연기도 같이 나오는 거야" 하고 답해주었다. 꼬마는 그대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계속 바라보고 있는 게 질렸는지 내 오른편에 있는 나뭇가지에 매달린 종이쪽지를 건드리려 애써보았다. 까치발을 하고 애를 쓰는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귀여워서 나는 풀린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 순간 꼬마의 유일한 목표는 나뭇가지에 질끈 묶여 있는 쪽지인 것 같았다. 그러나 소원을 담아 걸린 물건에 손을 대면 안 되는 법. 부모로부터 가자는 소리를 들은 꼬마는 순순히 쪽지를 단념하고 타박타박 걸어 부모 쪽으로 돌아갔다. 걸어가며 경쾌하게 울리는 발소리가 나를 즐겁게 했다. 그대로 꼬마와 부모는 묵고 있는 숙소로 돌아갔다. 나는 부모의 손을 꼭 잡은 채로 상기된 볼과 함께 꼬마가 지었던 웃음을 생생히 기억한다. 그 모습에서 단풍을 떠올린 건, 아마 우연만은 아닐테다.
단풍 하면 단풍 모양으로 빚은 고운 떡도 생각난다. 떡은 특히 내가 좋아하는 간식인데, 좋아하는 떡은 인절미와 수수떡이다. 하지만 떡을 자주 먹는 건 아니다. 떡을 먹을 기회도 얼마 없거니와, 스스로 분위기를 차리고 간식을 사 먹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여하튼 떡을 좋아하는 나에게 단풍 모양으로 빚은 색을 입힌 떡이 재미있게 다가왔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이걸 어디서 발견했냐 하면, 가을을 맞아 가벼운 짬에 다녀온 여행 도중에 한 가게에 들르게 되었는데, 그 가게가 마침 떡과 차를 같이 파는 집이었다. 떡과 차는 궁합이 좋으니까 차의 명소에 이런 가게 하나쯤 있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그래서 나는 같이 간 친구와 함께 가게에 들어가 녹차 두 잔과 당고를 주문해 놓고 가만히 앉아 창 밖을 바라보았다. 마침 단풍이 물드는 계절이라 밖은 울긋불긋한 일렁임으로 가득했다. 친구는 내게 "단풍이 참 예쁘지 않나? 단풍을 보기 위해 여기로 여행을 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하고 말을 걸어왔다. 나는 거기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녹차가 나올 때까지 빨갛게 물든 잎사귀만을, 수없이 피어난 꽃잎만을 눈으로 좇았다.
눈을 단풍에서 떼고 사람과 마주보고 앉아 있는 현실로 돌리자 녹차는 이미 나와 있었다. 그리고 친구는 당고를 집어들고서는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었다. "뭐 하는 거야?" 라고 내가 물었지만, 친구는 내 말을 듣고 당고를 제자리에 놓는 것이 아니라 입에 가져가더니 덥석 베어물었다. 나는 친구의 행동에 어이가 없어서 그저 쳐다보기만 했다. 친구는 당고를 제자리에 가져다 놓고 녹차를 한 모금 마신 다음, 나를 향해 말했다.
"당고는 맛있잖아? 왜 맛있을까 궁금해서 살펴본 것뿐이야. 절대 머리가 이상해졌다거나 그런 건 아니라고."
"당고가 맛있는 데 이유가 있나? 잘 구웠으니까 맛있는 거 아냐. 거기다 네가 떡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인간이니. 맛이 없는 게 이상하지."
"그건 그래. 떡으로 만든 음식이 맛이 없을 리가 없어. 당고만 해도 그래. 그냥 불에 '구웠을' 뿐인데 신비로운 맛을 내잖아. 불에 무언가 있는 걸까."
"밥을 하면 밥이 맛있어지는 것처럼, 같은 쌀로 만든 떡도 마찬가지 아닐까. 호화라고 있잖아, 중학교 가정 시간에 배운."
"음, 그렇지. 좀 더 먹기 편하게 도와주는 그 녀석. 생쌀은 어떻게 해도 먹을 수 없으니까. 하지만 떡은 원래 '쪄 내는' 음식 아닌가?"
"맞아. 쪄 내는 음식이야. 하지만 쪄 낸 채로 두면 굳어버리니까, 구워서라도 쫀득함을 되살리는 거지. 마치 스펀지에서 물을 짜 내는 것처럼."
"비유가 이상하잖아. 스펀지라니. 떡과는 전혀 종류가 다르다고. 그런데 스펀지 하니 말인데, 예전에는 봐, 해먹을 스펀지 대신 썼잖아. 그런데 그건 죽은 해먹을 쓴 걸까? 혹시 사람이 쓸 때도 살아 있거나 하지는 않았을까?"
"그런 걸 나에게 묻지 말아줘. 네 할아버지한테나 물어봐. 아니, 할머니."
"할머니는 3년 전에 죽었는데. (라고 말하며 친구는 가볍게 웃었다.) 할머니는 그리고 해먹을 안 썼어. 그 당시에는 스펀지가 널리 쓰이고 있었거든."
"알 게 뭐람. 얼른 차나 마시자고. 네 넙적한 얼굴을 마주보느니 차라리 바깥의 불타는 풍경을 내다보며 차를 마시겠어. 풍류라고 있잖아, 풍류."
"하하, 이거 신기한데? 철저히 '도시인'으로 살아온 네가 풍류를 말하다니. 동료에게 말하면 놀라겠어. "그 녀석이 풍류를 말한다고? '풍로'를 잘못 들은 거겠지." 하고. 이야기거리가 하나 늘었네".
"별로 재밌지는 않지만. 풍류란 건 언제든지 써 먹을 수 있는 거야. 부채와도 같은 거라고. 선풍기 대신 쥘부채를 쓰는 데 풍류의 맛이 있는 거지."
"됐어. 풍류라면 이거로 족해. 여기서 더 '풍류'했다간 바람에 날아가 버리겠어. 자, 당고나 먹자고."
친구는 나의 뜻없는 진지함을 피하고 싶어했는지도 모른다. 그는 당고를 집어들더니 알 하나만 남기고 다 집어삼켰다. 친구의 입이 크다는 것은 예전부터 알았지만, 그 정도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입에 들어간 새알심을 우물우물 씹으며, 친구는 바깥을 내다보다가 안을 둘러보다가 했다. 나는 배가 별로 안 고파서, 녹차를 한 모금 마시고 턱을 괴고 마지막으로 산을 열렬한 기세로 불태우는 단풍을 바라보았다. 바람이 살짝살짝 부는 것 같았지만, 멀어서 그런지 잎에 흔들림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단풍이 하나둘 떨어지는 것은 자세히 보면 볼 수 있었다. 단풍은 느리게, 공기의 흐름을 타며 떨어져 내렸다. 눈이 내리는 것과는 다르게, 지그재그로 허공에 선을 그으며. 다시 안으로 돌아와 보니 친구는 이제 두 개째의 당고를 섭취하고 있었다. 아까 소바를 먹은 게 부족했나 보다. 결코 대식가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친구는 보통 사람들보다는 많이 먹는다. 야식을 먹는다고 하면, 다른 사람들은 오뎅이나 우동을 먹지만, 친구는 기어코 차슈가 들어간 라멘을 먹고야 만다. 체질을 타고난 것 같다. 나는 친구가 나머지 당고를 다 먹어버리기 전에 하나 남은 당고를 집어서 입에 가져다 넣었다. 소스가 연하게 발라져 있어서 먹기에 좋았다. 우물우물 씹다 보니 시간이 흐르는 게 느껴졌다.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고, 다시 다른 사람들이 자리에 들어오고, 종업원들은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 움직임을 시간이라고 한다면 여기에는 시간이 넘쳐 흘렀다. 공간은 시간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시간의 한가운데서, 어딘지 모를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기에는 단풍이 산을 전부 뒤덮을 정도로 만개해 있고, 파르르 떨리는 나뭇가지는 겨우내 명상을 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도 나뭇가지를 따라서 명상을 할 준비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온 세계에 펼쳐진 가을만큼은 즐겨야 하지 않을까 하고, 가을산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종업원의 발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려왔다. 차를 앞에 둔 나는 '평화'에 휩싸여 세계의 고요함을 즐겼다. 거기에는 어떤 방해도 없었다. 문득 졸음이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이대로 자 버려도 좋지 않을까, 멍해져 가는 의식의 가운데서 더듬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