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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mpreintes du beau rêve

옮겨적다 본문

novel

옮겨적다

barde 2013. 10. 15. 14:45

산 중턱에서 조금 올라간 곳에 자리잡은 정신병원에 딸려 있는, 환자들을 위한 요양소의 한 2인용 병실(침실)에 두 사람이 앉아 있다. 둘을 감싸고 있는 벽면은 티 하나 없이 새하얗다. 심지어 서랍과 창틀조차도. 둘은 자신의 침대에 걸터앉은 채 서로를 마주보고 있다. 한쪽은 무기력한 눈을 하고 있지만, 다른 한쪽은 그렇지 않다. 무기력한 눈을 한 쪽은 헝클어진 머리를 제멋대로 빗어내린 여자로, 나이는 대략 20대 중반 정도로 되어 보인다. 그리고 다른 한쪽은 남자로 보이는데, 피곤한 눈을 하고 있지만 눈동자만은 반짝반짝 빛난다. 나이는 아마 30대 초중반 정도일 것이다. 나는 둘 사이에 앉아서 그들의 대화를 옮겨적었다. 아, 오해하지 말기를. 나는 '여기에' 들어온 환자가 아니다. 그리고 나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여자는 '여'로, 남자는 '남'으로 표기했다. 그러나 환자에게 있어서 성별은 중요하지 않다.


여 "(갑자기 말을 시작한다) "글로 말한다"고 잘 말하는데, 어차피 들을 마음도 없잖아. 흘러넘기잖아. 길면 안 읽잖아. 누군가는 말할 수 있고, 누군가는 한 마디도 말할 수 없는 거야? 정말 그런 거야? 그럼 그건 '누가' 정하는 건데? 누가 그렇게 정하면 말할 수 있는 자와 없는 자가 분명하게 구별되는 거야? 그러면 모두가 "응응, 그래." 하고 만족할 수 있는 거야? 말하는 사람이 혹시 정해져 있다면, 그 사람만 말하면 되는 거 아냐? 왜 자꾸 '소음'들을 끌어당기는 척해? 어차피 듣지도 않으면서. 어라, 실은 듣는 게 즐거운 거야? 정말 그런 거야? 그런데 왜 안 '들어?' 듣고 또 들어서 지쳐버린 거야? 밥은 맛있어? 밥은 잘 넘어가? 신기하네. 나도 비위가 좋으면 '너'처럼 맛있게 밥을 먹을 수 있을 텐데, 짜고 시고 쓰고 달고 매운 맛을 가리지 않고 말야. 너는 참 대단해. 혹시 위장이 강철로 되어 있는 거니? 위장을 강철로 만들면, '너'처럼 될 수 있는 거야? 아하하, 재미없는 농담이네."

여기서 잠시 그녀는 말을 멈춘다. 남자는 그녀의 말을 듣는지 듣지 않는지 잘 알 수 없다. 남자는 넓은 두 손으로 얼굴을 전부 가려지도록 감싸고 고개를 숙인 채 이따금 발을 움직인다. 그녀는 일어나서 창문 쪽으로 다가간다. 바깥을 한번 보고, 다시 침대로 돌아온다.

여 "너는 죽었잖아. '죽었는데' 왜 살아서 걸어다니는 걸까. 혹시 태엽을 잘못 감았니?"

남 "미친 거 아냐? 네가 있을 곳으로 돌아가. 여긴 '네'가 있을 곳이 아냐."

여 "아하하, 그래? 그럼 내가 있을 곳을 말해줘. 데려다 주면 더 좋고."

남 "몰라. 그런 걸 내가 어떻게. 여하튼 얼른 가 버려, 지독한 유령 같으니."

여 "아하하하!"

갑자기 그녀가 크게 웃어서, 남자도 놀라고 나도 놀랐다. 나는 손에 쥐고 있던 펜을 떨어뜨릴 뻔했지만, 재빨리 손가락을 놀려 펜을 원위치로 돌린 뒤 다시 옮겨적기 시작한다. 그녀는 쉴 새 없이 말하고 있었다.

여 "아하하, 너는 여전히 무책임하구나!"

남 "으으, 젠장... 저런 유령에게 휩싸여 정신을 잃어버릴 바에야, 차라리 여기를 1초라도 빨리 벗어나는 편이 좋겠어. 어디 출구가 없을까?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여 "무책임해, 무책임해, 무책임해. 너는 처음 봤을 때부터 꼴불견이었어. 더러워. 언제나 자기가 최고의 '인간'이라고 생각하고는, 남을 쉽게 무시해버리는 게 습관이었어. 자, 이리 와 봐. 내가 네 고장난 '태엽'을 다시 감아줄게. 영원히 춤추든가, 아니면 그만 멈춰버리든가."

남 "이제 됐어! 그만 꺼져버려! 나는 밖으로 나가겠어, 다시는 네 얼굴을 보지 않을 거니까!"

남자는 말을 마치고 침대에 비스듬히 눕혀져 있던 베개를 그녀의 얼굴 정면에 던진 뒤, 발을 박치고 밖으로 나가려고 한다. 나는 재빨리 몸을 옆으로 피해서 그녀를 막음과 동시에, 남자가 열려진 문으로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돕는다. 그녀는 베개를 바닥에 던지고 나의 멱살을 잡는다. 시퍼렇게 뜬 두 눈은 충혈되어 있고, 발산하는 머리카락은 마치 뱀 같다.

여 "당신은 뭐야? 응? 당신도 유령이야? 왜 여기에 있는 건데? 너도 저 녀석이랑 한패인 거야? 그래? 그런 거야? 말을 해, 말을 하라고! 짜증나, 전부 멈춰버릴거야. 죽은 것들이 살아서 태양의 빛을 보다니,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그러고는 갑자기 내가 앉았던 의자를 발로 차며 밖으로 나간다. 나는 그녀의 어깨와 허리를 잡아보려 하지만, 그녀의 몸놀림이 워낙 재빨랐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쓰러진 의자를 다시 세우는 것밖에 없었다. 나는 그녀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을 옮겨적은 뒤에, 구겨진 와이셔츠를 털고 수첩을 포켓에 넣은 뒤 병실을 나온다.


그 뒤로 둘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나도 잘 모른다. 들려오는 소식으로는 여자가 남자를 잡아서 목을 졸랐다고 하지만, 그건 당시의 분위기를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라 믿지 않았다. 정신병자의 생활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감정은 더더욱 그렇지만, 나는 그녀가 했던 말을 하나하나 곱씹어 보며 그녀가 대체 '무엇을' 보았는지, 그리고 '누구에게' 말했는지를 되짚어 본다. 거기에는 남자가 있었을까? 혹시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은 나와 그녀 둘만이 아닐까? 혹은 그녀도 없고, 거기에는 남자와 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닐까? 후자의 가능성을 생각해 보았지만, 그녀가 했던 모든 말들이 단지 환청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으므로, 나는 조심스레 전자의 가능성을 제시해 본다. 그녀는 분명히 그 자리에 있었다. 하지만 남자는 그렇지 않았다. 이것이 나의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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