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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mpreintes du beau rêve

8.31 - 9.1 본문

etc.

8.31 - 9.1

barde 2013. 9. 16. 23:49



  31일은 바쁘게 보냈다. 이 날 일기를 적지 않은 것은 나카후라노에 들러서 일찍 잠들었기 때문이지만, 동시에 여러 가지 것들이 한꺼번에 나의 시야를 감싸서 약간 혼란스러웠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도 잠자리는 편하고 좋았다. 우선 이 날 아침에 무엇을 했는지부터 말하기로 하자. 아사히카와의 한 숙소에서 아침을 먹고(밥과 미소시루와 샐러드로만 구성된 아주 간단한 식사), 동물원 입장과 버스 승차를 한 번에 할 수 있는 펀펀 티켓을 구입했다. 아사히야마 동물원까지 가는 버스는 바로 앞에 있었기 때문에, 나는 어렵지 않게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한 40분 정도 걸려서 아사히야마 동물원에 도착해서, 펭귄을 시작으로 동물원에 있는 동물들을 죽 둘러보았다. 아사히야마의 동물 구성은 아주 다양했는데, 펭귄부터 해서 사자, 퓨마, 침팬지, 긴꼬리원숭이, 카피바라, 래쿤, 북극곰, 기린 등등 열대에서부터 한대에까지 동물들은 다양한 위도에서 왔다. 그래서 추운 지방인 아사히카와에 오게 된 것이 약간 불쌍하게 생각되기도 했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동물원'이라는 오직 인간의 편의만을 생각하는, 인간 위주의 시스템 자체가 불합리한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경사가 져 있는 동문으로 나와서 점심을 먹으러 레스토랑에 갔다.


  MOGMOG(모구모구) 레스토랑에서 먹은 점심은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메뉴를 몇 개 골라서 알아서 접시에 담는 식이었다. 나는 닭고기 스프카레, 연어로 싼 관자(정확한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미트 소스를 뿌린 롤캬베츠를 골랐다. 주식은 당연히 밥에, 샐러드와 스프는 따라오는 것이다. 아주 맛있었다. 여기에 맥주도 한잔 걸치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점심이라 그러지는 못했다. 메뉴가 비싸기 때문이기도 했다. (3개에 1300엔)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고 손에 찍은 도장을 확인한 뒤에 동물원에 다시 입장했다. 왜 이런 귀찮은 절차를 거쳐야 했냐면, 레스토랑이 속한 건물은 동물원 '밖'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물원에서 나와서 점심을 먹을 때는 손에 찍으면 투명한 도장을 받아야 한다. 이 도장은 특수한 빛을 쬐면 그 모습이 선명히 드러난다. 혹시나 지워지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하루 정도 지나면 흔적도 남아 있지 않다. 그래서 동물원에서 마저 동물을 감상하고, 빵집에 들러 메론빵이 다 팔린 것을 확인한 뒤에(나는 매우 아쉬워했다. 꼭 메론빵을 먹어보고 싶었는데.) 푸딩을 하나 사서 버스를 기다렸다. 올 때와는 다른 종류의 버스를 타서 아사히카와로 돌아갔다.


  일기를 적지 않아서 내가 무엇을 했는지 일일히 적어야 한다는 것이 상당히 귀찮은 일로 다가오기는 하지만, 사진의 도움으로 겨우겨우 적어 나가고 있다. 여하간 아사히카와에서 아주 간단하게 짐을 챙겨서 나카후라노로 향하는 기차에 올라탔다. 후라노와 나카후라노 역은 다른 역이다. 주의하기 바란다. (어차피 가면 다 알게 되는 것이지만.) 한 5시 반 정도에 도착했을 때는 역사에 사람은 나 말고 부부로 보이는 관광객 두 명밖에 없었다. 나머지는 다 제각기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 버려서, 나는 차를 기다리면서 세븐일레븐에서 사 온 오뎅을 먹었다. 아주 맛있었다. 세븐일레븐의 오뎅이 맛있다는 말을 듣고 산 것이지만, 과연 맛있었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맛이었다. 다시 전화를 걸어서 내가 왔다는 것을 확인시킨 다음에, 나카후라노 저 구석에 있는 숙소로 향했다. 아카네야도夕茜舎 라는 곳이다.


  아카네야도에서 실제로 한 일은 별로 없다. 밤이라-그것도 구름이 잔뜩 껴서 무지 흐렸다. 스산함을 느끼게 하는 날씨였다-바깥 경치를 구경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안에서 뭔가 활동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다들 바이크에 관심이 많아서 전혀 아는 바가 없는 나는 대화에 낄 수 없었다. 원래 아카네야도는 바이크를 타고 홋카이도를 일주하는 사람들이 묵는 게스트하우스 같은 곳이다.) 저녁을 먹고 샤워를 한 뒤에 방으로 들어가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그런 곳에 내가 묵게 된 이유는 싼 값에 숙소를 구하기 위해서였지만, 다른 목적도 하나 있었다. 바로 아주 맛있는 저녁이었다. 저녁 메뉴는 흔한 일본 가정식이었지만, 한 가지 특이한 점은 호일로 싸서 찐 생선찜과(별미였다) 디저트로 메론이 나온다는 것이었다. 나는 맥주와 함께 맛있는 저녁을 끝내고 여유롭게 메론을 먹었다. 나와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청년도 몇 명 있었다. 숙소에 묵는 8명은 함께 저녁을 먹었다. 그것이 아카네야도의 규칙이었다. 지금도 그 노란 메론의 맛을 잊을 수가 없다.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나는 지금(10시 59분) 비에이의 한 버스(이름은 트윙클이라고 한다. ツウィンクル라니, 이름도 참 반짝거린다.) 안에서 '일기 비슷한 것'을 쓰고 있다. 왜 '일기 비슷한 것'이라고 하냐면, 지금부터 쓸 내용은 '일기'의 범주에 넣기에는 약간 애매하기 때문이다. 애매한 점이 있다. 아사히카와에서 글을 쓰기는 썼는데, 뭐랄까 음, 한스의 망설임이 나에게까지 전해지는 것 같아서 가슴이 아렸다. 내가 지금 '아렸다'라고 쓰지만, 이건 사랑의 감정이나 이별의 감정과는 다른 '아림'이다. 지난 세월을 살던 나를 저 멀리서 바라보는 기분이라고 하면 적절할까. 그런 식으로밖에 내가 한스를 바라보는 감정을 표현할 수 없다. 한스는 또래에 맞지 않게 성숙하지만(조숙하지만) 반대로 내성적이고 대화에 약한 점도 있다.


  지금은 버스의 가이드[여성이었다]가 코스 소개를 하고 있다. 사진을 찍을 시간을 준다고 한다, 하하. 밖으로는 비에이의 풍경이 보인다. 아직은 들판과 언덕이 보이지 않고 건물들이 보인다. 흐리던 하늘은 조금씩 맑아가고 있다.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정말로 모든 것이 '순리대로' 흘러가는 것일까? 나는 요정과 기사, 억새와 검은 매가 앞으로 나아갈 길을 아직 모른다. 밖으로 켄과 메리의 나무가 보인다. 이제 드디어 넓은 들판과 언덕이 보인다. 파묻히고 싶을 정도의 '아릿한' 흐림이다. 나는 계속 쓸 것이다."


  좀 비장한 감이 없잖아 있지만, 최대한 정확을 기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여행을 가서 너무 진지해지면 그것도 곤란하다(웃음). 하여튼 트윙클 버스를 타고 비에이(정확히 말하면 패치워크의 길)를 한 바퀴 휘 둘러보면서 선명하지 않고 약간 흐린 들판의 풍경을 여유롭게 감상할 수 있었다. 나무 하나하나를 일일히 말하는 것은 가이드의 역할이지 내 역할이 아니기 때문에, 패치워크의 길이 궁금한 독자는 검색해 보기 바란다. 중간에 "사진을 찍을 시간을 준다"라는 말이 있는데, 두 번 버스에서 내려서 경치를 감상할 기회가 있었다. 때마침 아쉽게도 아이폰의 배터리가 제로라서, 나는 두 눈으로 비에이의 드넓은 풍경을 기억해 둘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결과적으로 말하면 성공적이었다. 지금도 나는 비에이에 불던 강한 바람과 여러 그루의 포플러 나무들, 잘 닦여진 도로, 감자나 토마토 등을 팔던 가판대, 메밀을 키우던 밭, 끝까지 뻗어 있는 들판과 저 멀리 흐릿하게 보이는 준령을 선명히 기억한다. 이 기억은 다음에 내가 다시 비에이를 방문할 때까지 그대로 머릿속에 남아 마음 한구석을 밝혀줄 것이다. 더 말할 필요도 없지만, 비에이는 '말'이 모자랄 정도로 좋은 곳이었다.


  그리고 다시 아사히카와로 돌아와서 저녁으로는 생맥주와 함께 징기스칸을 먹고(이 얘기도 나중에 또 할 기회가 있을 거다. 혼자 구워 먹어도 아무런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 내가 그런 것에 일일히 신경 쓸 나이는 지났지만.) 돌아와서 또 글을 조금 쓰다가 잤다. 징기스칸을 먹으러 가기 전에 노트북에 저장되어 있던 <추억은 방울방울>을 보았는데, 타카하타 이사오의 센스가 가감 없이 드러난 작품이었다. 회상과 현재의 적절한 조화, 그리고 밝아오는 미래. 그는 언제까지나 그런 것을 마음 속에 두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미야자키 하야오의 말대로 그저 '어린애 속이기子供だまし'에 불과한 것일까. 어른이라도 그의 작품에 매료되는 것을 보면 단순히 子供だまし는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나의 판단은 이번 가을(한국은 겨울이겠지만)에 개봉할 그의 유작이 될 <카구야 공주 이야기かぐや姫の物語>를 보기 전까지 유보해 두기로 한다. 이것도 일본에서 직접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럴 기회가 내게 주어질지는 아직까지 잘 모르겠지만. 부디 그리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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