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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mpreintes du beau rêve

9.2 - 9.4 본문

etc.

9.2 - 9.4

barde 2013. 9. 26. 02:58




 말들이 대부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글을 계속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행기를 쓰기 전에 그런 생각을 했다. 한 가지 이유를 댈 수 있다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한다. 그 '순간'을 최대한 잘 복기해 내기 위해서.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에서 고양이 쵸비가 한 것과 같이, 솔직한 심정을 담아서. 그런 이유로 여행기를 끝까지 계속 써 나가고 있다. 이제 마지막 편이다. 아사히카와에서부터 시작한다.


  아사히카와에 돌아올 때만 해도 이 작은 도시가 반가웠는데, 떠나려고 하니 어디를 어떻게 들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동물원은 이미 방문했고, 게임센터는 이제 문을 닫았고, 그렇다고 지비루관에 갈 수도 없고. (아침이라 맥주를 마실 기분이 아니었다.) 그래서 역에 한번 들렀다가 다시 시내로 나와서 지도를 가만히 보고 있으니, 어떤 할아버지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는 내게 여행자냐고 물었다. 나는 할아버지의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내게 무엇을 찾고 있는지 물었고, 나는 점심을 먹을 곳을 찾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런 연유로, 나는 할아버지와 함께 소바를 먹으러 가게 되었다. 가게에 들러서, 할아버지는 일본에서 한국인을 만난 게 반갑다고 말했다. 나는 거기에 딱히 드물지 않다는 답을 했지만, 여전히 할아버지는 즐거운 얼굴이었다. 메뉴를 고르고 있으니 텐푸라 소바를 사 준다고 해서, 나는 거기에 따랐다. 한 가지 기억나는 것이 있다. 소바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으려니, 할아버지는 갑자기 "Ich liebe dich" 하는 말을 했다. 나는 그 뜻을 몰라서 뭔지 물었더니, "그대를 사랑한다"는 말이라고 했다. 여자에게 하면 좋다고, 그렇게 말했던 걸로 기억한다. 내가 여성에게 그런 말을 할 때가 언제 올지는 모르겠지만, 여하간 할아버지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주로 한국의 여성에 대해-여러 번 했다. 그런데 물어보니 할아버지는 결혼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여기서 나는 한 가지 '의심'이 들었지만, 그것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밥을 사 준 사람에게는 예의를 지켜야 한다.) 소바를 다 먹고 우리는 카페로 향했다. 거기서 아이스커피를 마시면서 우리는 여러 가지 것들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국의 현 상황에 대해서라든지 일본의 교육 환경에 대해서라든지 이것저것... 아주 재밌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나는 할아버지가 혼자 살면서 아주 외로웠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 때는 약간 지루하다는 얼굴을 하고 이야기를 들었다. 딱히 눈치챘을 것 같지는 않지만, 눈치를 채더라도 넘어가 주는 게 관계의 순리 아니겠는가. 나중에 다시 한번 아사히카와에 들러 자신의 집에서 라멘이라도 먹자고, 할아버지는 내게 말했지만, 나는 언제 다시 홋카이도에 올지 몰라서 그냥 긍정도 부정도 아닌 애매한 답을 했다. 비행기 표값을 반 내 준다고, 이런 말을 해서, 밥까지 얻어먹은 마당에 어색하게 웃었던 기억이 있다. 여하간 역에서 할아버지에게 선물까지 받고 헤어진 다음, 가방을 챙겨서 오비히로로 향하는 기차를 탔다. 두 번 갈아타야 하는, 귀찮은 행로였다.


  위의 사진은 갈아타는 와중에 新得しんとく에서 찍은 것이다. 반대편 플랫폼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은 삿포로행 슈퍼 오오조라スーパー大空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다. 쿠시로에서부터 출발하는, 특급 열차다. 신토쿠新得에서는 오비히로까지 가는 열차를 잡아탔다. 우선 아사히카와旭川에서 후라노富良野까지 간 다음에, 후라노에서 다시 신토쿠까지 가는 열차를 탄다. 그리고 新得에서 오비히로까지 가는 열차를 타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 시간을 잘 맞춰야 했지만, 잘 맞춘다고 하더라도 네 시간 가량 걸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특급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슈퍼 하쿠쵸를 제외한 모든 특급은 삿포로로 향한다), 일반열차를 타고 계속 나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오비히로가 아니라 니시오비히로西帯広에서 내렸는데, 숙소가 그곳에 있기 때문이었다. 도착하니 이미 주위는 어두웠다. 같이 내리는 여고생 몇 명이 있어서, 그들은 역 앞에 세워둔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나는 가방을 메고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숙소로 들어갔다. 한 박에 3500엔 하는, 값싼 비즈니스 호텔이었다. 오비히로에서 묵을 수도 있었지만, 내가 굳이 니시오비히로에 자리를 잡은 것은 역시 예산 때문이었다. 니시오비히로에서 오비히로까지 왕복하는 데는 420엔이 든다. 4000엔 밑으로 내려가는 호텔이 없어서, 나는 서쪽을 택했다. 여하간 그 날은 숙소에 들어가서 일찍 잤다. 편의점에서 호로요이와 오뎅, 오므라이스, 그리고 푸딩을 골랐는데, 오므라이스가 맛있어서 놀랐다. 편의점에서 그 정도 수준의 음식을 맛볼 수 있다는 데 우선 놀랐고, 가격이 싸다는 데 다시 한번 놀랐다. 배부르게 밥을 먹고 TV를 켜지 않은 채(1시간에 100엔을 내야 TV를 볼 수 있었다) 와이파이가 다행히 잡혀서 웹서핑을 좀 하다 잤다. 예산 때문에 머리를 싸맸던 기억이 있다. 나중에 가서는 다 잘 해결됐지만.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서 오비히로에 도착하니 11시 정도였다. 원래 가고자 했던 부타동집이 정기휴일이라서, 대신 텐푸라 전문점인 하게텐으로 향했다. 주소를 잘 보고 가서 거기서 또 약간 헤맨 다음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점심이라 직장인들이 많이 보였다. 나는 자리를 잡고 앉아서 텐푸라 정식을 주문했다. 내가 밥을 먹는 동안 두 명의 직장인이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한국인만큼, 아니 한국인보다 빨리 밥을 먹었다. 쉽게 먹을 수 있는 덮밥이라 그런지도 모른다. 하게텐은 텐푸라 전문점이지만, 오비히로라 그런가 부타동도 같이 판다. (하게텐의 부타동 전문점 부타하게는 오비히로역 안에 있다.) 주로 두 가지 메뉴를 사람들은 고른다. 내가 밥을 다 먹고 나왔을 때는 점심 시간이 지나 있었다. 그리고 오비히로역에서 500엔에 구매한 스위츠 순회권スイーツ巡り券으로 과자점을 하나하나 찍기 시작했다. 커피젤리와 마들렌과 아이스크림과 과자와 이것저것을 받을 수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맛있었던 것은 바로 커피젤리였다. 파칭코가 있는 TAIYO라는 건물 1층에 있는 카페인데, 주로 영화를 보기 전이나 후에 들르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커피젤리를 하나 시켜놓고 제목을 알지 못하는 만화를 한 편 봤다. 두 명의 의사가 나오는 만화였는데, 그림체가 어디선가 본 것이었다. 만화를 다 보고 나서 맛있게 커피젤리를 마저 먹고 다시 상점가로 돌아갔다. 그렇게 저녁이 될 때까지 계속 거리를 돌아다녔다, 스위츠 순회권 덕분에.


  위에 언급한 부타하게에서 부타동 도시락을 하나 사고 나서, 4시 50분에 출발하는 열차에 타기 위해 플랫폼으로 향했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바로 열차를 잘못 타고 만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역내로 내려와서 한 시간 가량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열 명 넘게 있는 휴게실에 들어와서, 나는 음악을 들으며 해변의 카프카를 읽었다. 이 책은 지금도 책장에 잘 꽂혀 있다. 펼쳐 보지는 않지만(웃음). 이러는 사이에 "홋카이도에 먹으러 가자" 가이드북을 잃어버린 것 같은데, 정확히 어디서 잃어버렸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아마 열차 안에 두고 왔으리라고 추측할 따름이다. 다시 열차에 올라서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6시가 넘어 있었다. 여러 가지 것들을 하고-여기에는 애프터눈 사계상 수상작을 읽은 것도 포함되어 있다. 이 이틀간 가장 값진 경험이라면 바로 이것이 아닐까.-새벽에 잤다. 도시락은 약간 식어 있었지만 맥주와 함께 먹으니 그런 대로 먹을 만했다. 아사히 더 엑스트라는 맛있었다. 슈퍼 드라이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사계상 대상 수상작인 みやあやた의 <두 사람의 기록>에 대해서는 이미 트윗에 적었기 때문에 여기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궁금한 분은 내 관심글을 참고하면 되겠다. 덧붙여 이날 먹었던 복숭아 젤리가 정말 맛있었다. 지금도 그 맛을 잊지 못한다, 맥주나 부타동보다 더욱.


  "현재 시간은 오전 8시를 조금 넘겼다. 내가 타고 있는 열차는 슈퍼 오오조라(넓은 하늘)로, 이건 쿠시로에서 삿포로까지 가는 열차다. 나는 미나미치토세에서 내린 다음에 거기서 공항까지 가는 열차로 갈아타는 것으로 되어 있다. (중략) 기차가 잠시 멈춰섰다 다시 출발한다. 창 밖에는 실낱같은 비가 내리고 있다. 몇 줄기의 물방울이 바람에 흔들리면서 지그재그로 유리의 표면을 가로질러 간다. 자, 그럼 우선 기사의 이야기부터 하기로 하자."


  나머지는 아주 사적인 이야기라 인용하지는 않았다. 마지막 날에는 슈퍼 오오조라를 타고 미나미치토세南千歳까지 갔다. 물론 신치토세 공항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공항에서 부타동-별로 맛이 없었다. 공항이라 어쩔 수 없지만-과 맥주를 점심으로 먹고, 시간에 맞춰서 비행기에 올랐다. 올 때보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당연하지만 대부분 한국인이었다. 다들 돌아가는 길에 선물보따리를 많이 가지고 가는 게 눈에 띄였다. 비행기에서 나는 일기를 마무리지었는데, 몇 줄만 인용해 보기로 한다.


  "2년이 지나는 동안 나는 두 살을 더 먹었고, 키와 몸무게는 아주 약간 늘었으며, 더 많은 쓸모없는 지식을 뇌에 집어넣었고, 만년필 모으기는 이제 그만뒀고, 비행기에 세 번이나 올랐으며, 유럽과 일본을 '혼자서' 다녀오고, 방을 서울에 구했으며, 그리고 조금 더 일본어를 듣고 말하고 읽고 쓸 수 있게 되었다. 2년이라는 시간은 곧 그런 거다. 사람이 아주 조금 성장하는 시간."


  슬픈 일이다, 시간을 몸에 저장한다는 것은. 성장한다는 것은 슬픔을 몸에 쌓는다는 말과 다른 말이 아니다. 그 슬픔을 누그러뜨려 줄 '기쁨'을 찾는다면 삶은 행복하겠지만. 언제나 그렇듯,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내가 바라는 것은 행복이라기보다 오히려 자유다. 여행기는 이것으로 마친다. 솔직하기는 한 것 같은데,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잘 전달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설픈 물건이 되고 말았다. 끝까지 읽어 준 분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다음에도 여행기를 쓸 수 있으면 쓰고 싶다. 그러려면 우선 여행을 다녀와야겠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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