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mpreintes du beau rêve
보컬로이드의 음원/성에 대해: 쿠라메씨의 고찰에 덧붙여 본문
우선 '보컬로이드'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당신이 '보컬로이드'라는 말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무엇입니까? 대답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우선 '하츠네 미쿠'라는 캐릭터를 떠올릴 것입니다. 여기서 '하츠네 미쿠'는 보컬로이드를 대표하는 환유적 존재가 됩니다. 그리고 조금 더 파고들어서, 하츠네 미쿠가 '부른' 노래—'부른'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만, 엄밀히 말하자면 보컬로이드 2라는 소프트웨어를 사용해서 조교된, 다시말해 입력된 것입니다—를 몇 개 떠올릴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질문 하나. 여기서—즉 노래에서—중심점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하츠네 미쿠일까요, 아니면 작곡가일까요, 그마저도 아니면 청자(듣는 자)일까요?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하츠네 미쿠가 처음 등장했던 2007년의 얘기부터 하도록 합시다. 2007년 8월 31일, VOCALOID 2 하츠네 미쿠가 발매되었습니다. 그리고 9월 20일, 아마 하츠네 미쿠의 노래 중에서는 가장 유명한 "미쿠미쿠하게 해줄게"가 니코니코동화(이하 니코동)에 투고되었습니다. 이때 하츠네 미쿠의 인지도는 그야말로 마이너 중의 마이너라, 작곡에 관심이 있는 작곡가 몇이나 그 존재를 알고 있는 정도였습니다. 엔하위키를 인용해 보면, "발매 초기에는 로봇이라는 점 말고는 캐릭터성이 거의 없다가 니코니코동화에 업로드된 오리지널 곡과 2차 창작물을 바탕으로 캐릭터를 형성해 나갔다고 한다. 때문에 초기에는 '로봇'이라는 독특한 이미지를 바탕으로 한 곡들이 대부분이었는데 대표적인 곡이 미쿠미쿠하게 해줄게." 즉 당시에 곡이 투고될 때만 해도, 하츠네 미쿠는 프로그램=로봇으로 인식되었던 것입니다. 왜 프로그램이 로봇으로 인식되었는지는 아마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만, 그 사이에 '안드로이드'라는 존재가 있기 때문입니다. 안드로이드는 인간형 로봇이지요. 그래서 하츠네 미쿠는 2D의 외양을 빌려 자신의 캐릭터를 만들어 나가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거기에는 수많은 작곡가들, 창작자들이 많은 기여를 했습니다. 그리고 여러 군데 변곡점이 있었습니다만, 지금에 와서 하츠네 미쿠는 '넷의 아이돌'이 되었습니다. 이 점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렇지 않다면 잘 모르겠다는 반응이겠지요.)
하츠네 미쿠가 분명한 색채를 띤 캐릭터이자 동시에 보컬이라는 것은 알게 되었는데, 위의 질문을 왜 던져야 했는지 질문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분에게 노래의 중심점은 당연히 '아이돌' 하츠네 미쿠겠지요. 하츠네 미쿠라는 시작이 없었다면, 이 정도의 열광적인 인기는 불가능했을테니 말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려 보자면, 하츠네 미쿠의 '뒤'에는 누가 있을까요? 뒷면이 없어 보이는 하츠네 미쿠에게도, 분명히 '뒷면'이라 말할 것은 존재합니다. 단순히 '소비'하는 입장에서 이 '뒷면'은 별로 중요하지 않지만, 점차 깊게 하츠네 미쿠와 보컬로이드에 대해 알아가다 보면, 오히려 중요한 것은 이 '뒷면'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이 '뒷면'의 정체는 바로 작곡가입니다.
한 바퀴 돌아서 작곡가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이 작곡가, composer는 대체 왜 하츠네 미쿠를 선택했을까요? 질문이 명확하지 않다면 바꿔 묻겠습니다. 하필이면 하츠네 미쿠라는 가상의 보이스를 채택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만약 단순히 보컬이 필요했다면, 친구에게 도움을 얻거나 여차하면 자신이 노래를 부르면 됩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인간의 목소리(음성) 대신 하츠네 미쿠(음원)를 택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차이가 생겨납니다. 작곡가들이 그런 점을 알고 행하든 모르고 행하든, 하츠네 미쿠를 택함으로써 자신의 노래에 '인간적인 것' 대신 다른 어떤 것을 부여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함에 따라 작곡한 모든 노래는 '하츠네 미쿠'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균질화됩니다. 쉽게 말해 니코동이라는 토양에서 일종의 '균질공간'을 형성한 게 됩니다. 그리고 하츠네 미쿠는 점차 색채가 선명해지면서 동시에 보호색처럼 다양한 색을 띠게 됩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울 수 없는 것은 이 '작곡가'라는 존재입니다. 그들은 무슨 수를 써도 지울 수 없습니다. 아무리 하츠네 미쿠가 '아이돌'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말이죠. 1
이제는 보컬로이드의 다른 측면, 음(원)성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합시다. 우선 보컬로이드는 명백하게 '음원'입니다. 후지타 사키의 보이스를 이용해서 50음도에 해당하는 발음을 녹음한 다음, 그것을 매끄럽게 이어지게 만들기 위해 기술적인 처리를 가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게 바로 '하츠네 미쿠'라는 보컬로이드vocal-oid입니다. 당연한 소리를 자꾸 하게 됩니다만, 처음에 '음성'은 실재하지 않았습니다. 이질감을 느끼기도 하는 그 '음성'이 말이죠. 어디까지나 존재하던 것은 '음원'으로, 실제로 이 점을 이용해 보컬로이드를 악기 취급하는 작곡가들이 있기도 합니다. 대표적으로 ATOLS라는 작곡가가 있습니다. 유투브에 그의 클립이 있으니 한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단순히 보컬로이드를 '음원' 취급한다고 해서, 보컬로이드의 '음성'이 사라지냐고 하면 그건 아닙니다. 보컬로이드가 만들어진 목적은 어디까지나 '노래'를 부르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그 점에 작곡가들이 주목한 것이기도 하고요. 만약 보컬로이드가 단순한 보이스웨어에 불과했다면, 작곡가들이 그것을 건드렸을 리가 없겠죠.
해서 다시 맨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오자면, '하츠네 미쿠'라는 캐릭터=보컬만큼 작곡가의 존재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간과하는 게 있습니다. 바로 '청자'의 존재입니다. 청자, 곧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다면, 보컬로이드 열풍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청자는 작곡가들이 보컬로이드를 사용해 작곡한 노래를 '능동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소위 '2차 창작'이라고 일컫는 그것입니다. 여기에는 동인지, 팬아트, 우타이테, 패러디, 영상 등이 있습니다만, 하나하나를 언급하기에는 너무 많기 때문에 일단 그런 것들이 있다 정도로 말을 맺겠습니다. 그럼에도 하나 주목할 게 있다면 바로 '우타이테歌い手'인데, 그 이유는 바로 우타이테의 고유한 특징 때문입니다.
우타이테는 일본어로 '가수'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뜻에 걸맞게, 니코동에서 소위 '우타이테'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작곡가들이 만든 노래를 따라 부릅니다. '하츠네 미쿠'의 자리에 한 사람의 목소리=정체성이 자리하게 되는 거죠. 그리고 이 우타이테의 수는 그야말로 엄청납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마음만 먹으면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말이죠. 그래서 한 가지 노래에 몇십, 아니 몇백 개의 우타이테 버젼이 존재하는 경우도 드물지만 있습니다. 그들은 원래 '하츠네 미쿠'라는 이름으로 균질화된 공간에 굴곡을 부여합니다. '균질공간'은 '비균질공간'으로 재정위하게 됩니다. 기존에 하츠네 미쿠가 차지하던 자리를 각각의 우타이테들이 차지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츠네 미쿠가 아예 사라져버리냐고 하면 그건 아닙니다만—아무래도 '원본'의 권위란 게 있으니까요—, 적어도 '하츠네 미쿠'라는 기표를 중심으로 한 동일성이 더이상 기능하지 못하게 됩니다. 한 마디로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1차원의 플랫이 '커브'를 얻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우타이테에 과도한 의미부여를 하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만들어진 곡을 가지고 노래를 부를 뿐입니다. 제가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비록 목소리가 '내면'의 표현이라는 생각이 허상이라고 할지라도, 각자의 정체성이 되고 고유성의 원천이 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청자는 각각의 하츠네 미쿠의 보이스—그 수는 작곡가가 하츠네 미쿠(& 어펜드)를 어떤 방식으로 조교하느냐에 따라 늘어납니다—마다 다른 '정체성'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노래를 듣습니다. 목소리는 이제 '다름'을 인지하는 표식이 됩니다. 거기에 보컬로이드라는 '음원/성'의 난해함이 있습니다. 보컬로이드는 음원의 플랫함을 전제로 합니다. 하지만 청자가 받아들이기에, 각각의 음성은 다른 정체성을 띠고 다가옵니다. 즉 누군가는 모든 하츠네 미쿠의 노래를 '같은 노래'라고 취급할 수도 있지만, 다른 누군가는 그렇게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앞의 질문에 대한 답은 "셋의 중심이 되는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라고밖에 답할 수 없습니다. 여기까지 들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동시에 하츠네 미쿠는 '소실점'의 역할을 겸하게 됩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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