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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mpreintes du beau rêve

12. 28. 본문

etc.

12. 28.

barde 2013. 12. 28. 21:00


  원래 일기는 일기장에 적는 게 평소의 습관이지만, 오늘만큼은 특별히 여기에, 블로그에 적기로 한다. 거기에는 어떤 한 가지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부터 그 이유를 말하기 위해 나는, 최대한 자세히 오늘 하루의 일을 적어볼 생각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리 흥미진진한 내용은 아니다. 기대할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아침 일찍 샤워를 하고 집을 나왔다. (여기서 말하는 '집'은 내가 거주하는 방을 말한다.) 내가 집을 나온 이유를 여기서는 밝힐 수 없지만, 여하간 일찍 집을 나와서 신촌으로 향했다. 그리고 거기서 볼 일을 보고 난 뒤에, H라는 일식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에 들어가서 밥을 먹었다. 밥은 그저 그랬고, 나는 별 유감 없이 신촌에서 시청으로 향했다. 그 때가 오후 한 시였다.


  한 시에 나는 지하철에 올랐다. 신촌에서 시청까지는 다섯 정거장이 걸린다. 시청에 내려서 나는 삼성화재 건물 안에 있는 스타벅스로 향했다. 아직 광장에서는 무대를 설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타벅스에 들어가서 바닐라 루이보스를 한 잔 주문한 뒤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딱히 할 일이 없어서—실은 할 일이 있었지만, 그다지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시간을 죽인다는 이유로 트위터를 보았다. 이렇게 한 시간이 지났다.


  2시 조금 넘어서 프린트를 읽기 시작했다. 읽다가 재미가 없어서 『트랜스크리틱』[각주:1]의 서문을 읽었다. 다시 읽는 것이지만, 여전히 흥미로운 문제의식을 담고 있었다. 3시를 10분 남기고 스타벅스를 나왔다. 나와 보니 광장으로 향하는 일단의 노동자들이 보였다. 나도 그 사이에 껴서 광장으로 향했다. 경찰은 곳곳에 있었지만 광장으로 가는 것을 제지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나는 수월하게 광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미 광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자신의 깃발을 들고 있는 사람, 스케이트장 앞에서 연설을 하고 있는 사람, 추운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광장으로 향하는 사람 등등. 나는 이 사이에서 어디로 갈지 몰라 우왕좌왕하다 결국 광장 저 끝에 자리를 잡았다. 이미 광장을 한 바퀴 반이나 돌고 나서였다.


  날이 상당히 매서웠기 때문에, 나는 시위하는 내내 핫팩을 손에 쥐고 있었다. 이 핫팩은 쌍화차코코아 측에서 나누어 주는 것인 듯했다. (포장지에 그리 쓰여 있었다.) 고맙게도 두 팩이나 받아서, 한 팩을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주머니에 넣고 손에 쥐고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문제가 되었던 것은 바로 발이었다. 막상 앉고 나니 발가락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시려웠다. 미칠 정도였다. 그래도 어찌저찌 해서 4시 40분까지는 버텼다. 총파업이 슬슬 마무리가 되어갈 때였다.


  총파업은 막상 즐거웠다. '즐거웠다'고 표현하면 이상할지도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원기를 북돋워 준 탓일까, 춥지만 그래도 힘이 생기는 기분이었다. 다들 한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게 오감으로 느껴지니 힘이 났다. 대단하구나, 하고 생각했다. 이 정도로 사람이 모이다니, 하고도 생각했다. 그래서 추운 바닥에 계속 앉아 있을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시청역으로 내려가서 사람들의 거동을 살폈다. 다들 이쪽으로, 혹은 저쪽으로 바삐 걸어가고 있었다. 역사 내에는 빠르게 포스터를 붙이고 있는 철도노조원들도 보였다. 나는 그렇게 30분간을 역에서 보내다가, 다시 광장으로 올라왔다. 해가 점차 저물어 가고 있었다.


  총파업이 성공적으로 끝나고(마지막에는 사람들이 온 광장을 메우고 있었다. 다들 촛불을 들고 있었다.), 나는 광화문 쪽으로 향하는 사람들을 따라가지 않고 바로 지하로 내려왔다. 광화문으로 간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리 내키지가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끝까지 따라갔을 테지만, 어쩐지 그 1년 사이에 나도 많이 변해버린 것만 같았다. 지하철에는 사람이 매우 많았다. 그래도 퇴근 시간만큼은 아니었다. 시간은 퇴근 시간이 맞긴 하지만, '토요일'이라 그런가, 시청을 제외하면 사람이 여느 때와 달리 많아 보이지 않았다. 오직 시청에서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열차에 올랐다. 다들 총파업에 참여했던 것일까.


  그리고 나머지는 별거 없다. 저녁을 먹고 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피곤하다, 피곤하지만, 축 쳐질 정도로 피곤하지는 않다. 민주노총 추산으로는 10만 명이 광장에 왔다고 하는데, '총파업'이라는 이름의 힘이, 지금의 비상사태와 결부하여, 10만 명을 동원해 낸 게 아닐까 싶다. 사람이 이 정도로 많은 곳에 간 경험은 없었다. 메이데이 때도 꽤 사람이 많기는 했지만, 오늘만큼은 아니었다. 새롭게 '사람의 힘'을 느꼈다. 동시에 이 '힘'이 끝에는 어디로 갈까 하는 걱정도 조금 들었다. 내가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번 총파업만큼은 기세가 쭉 이어지기를 바란다. 비상사태는 오직 인민이 브레이크를 걸 수 있다. 이대로 가면 안 된다, 이건 말도 안 된다 하는 절박한 인식이 사람들을 한 곳으로 모이게 했다. 역사를 '진보하는 방향'으로 다시 돌려놓을 수 있기를 바란다. 일기는 이것으로 마친다. B

  1. 가라타니 고진 저, 조영일 옮김, 도서출판 b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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