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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mpreintes du beau rêve

<해파리 공주> 감상 본문

etc.

<해파리 공주> 감상

barde 2014. 1. 5. 14:04



  <해파리 공주>를 처음 봤을 때, 나의 감상은 이랬다. "음, 이건 무슨 만화지? 패션만화인가?" 그리고 본격적으로 <해파리 공주>를 읽기 시작했을 때, 나는 이 만화가 범상치 않은 만화임을, 단순히 하나의 '장르'로 정리해버릴 수 없는 만화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해파리 공주>를 국내에 번역된 12권까지 다 읽고 나서, 나는 감탄했다. "아, 이런 만화가 있다니!" 나는 오랜만에 '만화를 읽는 보람'을 느꼈다. 말 그대로, <해파리 공주>는 순정만화-하지만 단순히 '순정만화'로는 분류할 수 없는-의 기본에 충실한, 정석을 지키는 만화다. 그러나, 동시에 이 만화는 독특한 색채와 빛깔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이건 각각의 캐릭터가 발하는 고유한 개성으로부터 연유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 '쿠라노스케'와 '츠키미'가 있다. (표지의 왼쪽, 오른쪽)


  <해파리 공주>는 '아마미즈칸'이라는 40년 가량 된 오래된 건물을 배경으로 한다. 이 건물에는 남성은 살지 않고 오직 여성들만 거주하는데, 그들은 모두 어딘가에 흠뻑 빠져 있는 '오타쿠'다. 우선 여주인공인 '츠키미'는 해파리 오타쿠고, 그 외에도 삼국지 오타쿠, 철도 오타쿠, 기모노 오타쿠, 중년(...) 오타쿠 등, 모두가 다양한 분야에 심취해 있다. 이야기는 그들이 살고 있는 '아마미즈칸'이 있는 땅이 재개발 지구에 지정되어, 헐릴 위기에 처함으로써 시작된다. 그 전에 '츠키미'와 '쿠라노스케'의 만남에 대한 얘기를 짧게 해 둘 필요가 있는데, 먼저 츠키미가 해파리 샵에 들러 죽어갈 위기에 처한 해파리를 본다. 그러다 가게의 알바생과 말다툼을 벌이고, 여기서 쿠라노스케가 나타나 츠키미 편을 들어준다. 그리고 그 해파리는 츠키미 손에 들려 아마미즈칸에 입주하게 된다. 이때 츠키미는 쿠라노스케가 '여장남자'라는 사실을 알지만, 그 사실을 '아마즈'(아마미즈칸에 사는 오타쿠 여성들을 가리키는 이름)에게 숨기기 위해 갖은 애를 쓴다. 왜냐면, 아마미즈칸에 '남자'는 들어올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듯 이야기는 초장부터 정신없이 흘러가지만, 여기엔 다 이유가 있다. 이를테면 나중에 포텐셜을 일으킬 '설정'을 쌓는 것이다. 남자라는 사실을 용케 들키지 않고 '아마즈' 멤버들과 안면을 튼 쿠라노스케는 아마미즈칸이 헐릴 위기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는 츠키미가 가지고 있는 '디자인'의 재능을 발견하는데, 그래서 저 둘을 결합해서 "멋진 브랜드를 만들어서 돈을 왕창 벌어 아마미즈칸을 매입하자"라는 계획을 수립하기에 이른다. 그것은 우선 해파리의 모습을 본딴 드레스를 제작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여기서도 갖은 트러블이 있지만, 여차저차 해서 아마즈의 힘을 빌려 드레스가 한 벌 완성되고 그걸 쿠라노스케가 입게 된다. 이 과정이 설득력 있게 제시되어 있기 때문에, 독자는 "왜 해파리 오타쿠에 불과하던 여자애가 갑자기 드레스 디자이너로 각성하는지" 의문을 가지지 않고 만화에 몰입할 수 있다. <해파리 공주>는 그와 같은 미덕을 갖추고 있다.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이건 중요한 미덕이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들은(아마즈의 멤버들은) 계속 드레스를 만든다. 보다 보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만들고 또 만든다. (이렇게 노동을 착취당하면서도 불평불만을 가지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아무리 음식과 굿즈로 회유한다고 하지만 신기할 정도다. 만화적인 설정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그리고 그것이 연극에 나가기도 하고, 직접 아마미즈칸에서 패션쇼를 개최하기도 하여 많은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게 된다. 그러나 이것으로 쿠라노스케의 꿈이 이뤄진다고 생각한다면 오산. 오트쿠튀르(맞춤제작) 드레스만 가지고 돈을 벌 수는 없다는 사실을 그는 제작을 맡기러 간 인도 업체에서 알게 된다. 다른 옷을 만들어서 그걸로 돈을 벌고, 직접 만든 드레스를 가지고 브랜드의 이미지를 구축한다. 그게 그가 생각한 제2의 플랜이었다. 하지만 이것도 쉽지 않은데, 대체 '뭘 만들어야' 사람들이 젤리피시(급조해 낸 브랜드명)의 옷을 사 줄 수 있을까. 그리고 그는 자신감이 제로에 가까운 아마즈의 멤버들을 보고 진지하게 생각한다. '그래, 아마즈라도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들자.' 이것은 쿠라노스케에게 있어서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또한 츠키미와 아마즈에게 있어서도.


  그리고 이야기는 빠르게 전개되어 츠키미가 유명 메이커 그룹의 CEO으로부터 디자이너 제의를 받는 데까지 이르게 된다. 여기서 쿠라노스케는 '여권이 없다'는 이유로 우선 급한 불을 끄지만, 나중에 아마미즈칸이 '진짜로' 팔릴 위기에 처했을 때, 츠키미는 결국 CEO를 따라 싱가포르로 가는 길을 쿠라노스케와 아마즈 몰래 택한다. 여기까지가 12권의 내용이다. 그리고 한가지 지적해 둘 점이 있다면, 일단은 순정만화답게 삼각관계, 아니, 3+1 관계가 그려져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3+1이라 표현한 것은, [쿠라노스케-츠키미-슈우]는 우선 연애감정이 드러나고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지만, 슈우를 짝사랑하는 쇼코는 어쩐지 평범한 악역 취급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주로 드러나는 연애는 츠키미와 슈우의 연애다. 둘 다 서로를 좋아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둘은 데이트를 한 번도 안 해 본 동정답게 어설픈 데이트를 즐긴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연애보다는 메인 스토리 쪽이 훨씬 흥미로웠다. 이건 내가 본디 '연애물'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워낙 스토리가 재밌게 짜여 있기 때문이 크다. 그러므로 <해파리 공주>에서 연애는 2차적인 것으로 다루어진다고 보면 되겠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복잡하게 요약이 흘러갔지만, 요컨대 <해파리 공주>는 보기 드물게 재밌는 만화다. 순정만화에 막연한 거부감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도, 부디 <해파리 공주>를 보기를 권한다. 의외로 재밌다, 술술 넘어갔다는 감상을 기대해 본다. 나도 처음에는 평범한 순정만화인 줄 알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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