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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mpreintes du beau rêve

태피스트리의 기억 본문

novel

태피스트리의 기억

barde 2013. 2. 28. 18:28

붉은 기가 도는 흙으로 지어진 작은 집은, 누구도 그 기원을 묻지 않을 정도로 무덤덤했으며 쉽게 다가갈 수 없는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다. 발을 친 입구를 조심스럽게 걷어 집 안으로 들어서면, 손이 그 위를 인내심을 가지고 스쳐 지나간 흔적이 맨들맨들한 광택을 통해 드러나는 아담한 탁자가 보이고, 거기에 새끼처럼 들러붙어 있는 땅딸막한 의자가 두 개 있다. 그 밖에 보이는 거라곤 낡아빠진 이불을 덮고 있는, 그 위에 누우면 바로 삐걱대는 소리를 낼 법한 키 낮은 침대나 위태롭게 벽을 쥐고 버티고 서 있는 선반, 흐려서 간신히 다가오는, 혹은 멀어져 가는 사람을 분별할 수 있을 정도의 창문--그마저도 눈이나 비가 오면 아예 보이지 않겠지만--정도였다. 그곳에 사람이 없다면 집은 말 그대로 폐가, 좋게 말해도 쓰러져 가는 낡은 가정집이었겠으나, 거기엔 다소곳이 앉아 조용히, 끈기 있게 태피스트리를 짜고 있는 한 여인이 있었다. 여인 앞, 탁자 위엔 갓 짠 양젖을 담고 있는 토기 잔이 있고, 그 옆엔 손때를 많이 탄 타로 카드 두 벌이 있었다. 아마도 메이저와 마이나 아르카나일 것이다. 내가 지금부터 하려는 얘기는 사실 별 거 아니다. 그저 한 여인이 태피스트리를 짜는 동안 일어났던 일을 서술하려는 것에 불과하다. 물론 창고 속에 박혀 긴 잠을 자던 시가 발굴되어 찬란한 빛과 따뜻한 칭찬을 받는 일도 있겠으나, 내 운명이 그런 거창한 일과는 별로 관련이 없고, 또 이 글이 결코 거창한 무엇이 되리라곤 생각지 않기 때문에, 부디 독자들이 이 글을 전래되어 내려오던 흔한 이야기, 하지만 특별히 교훈을 담고 있지는 않은 무엇으로 읽어줬으면 한다.

내가 그 당시엔 젊었기 때문에 다른 일로 바빠 그 집에 언제부터 상인들이나 직조공 또는 거렁뱅이들이 드나들었는지는 잘 모른다. 여하튼 아무도 들어설 것 같지 않던 작은 집에 몇몇 사람들이 드나들고 난 이후로, 여인이 짜고 있던 태피스트리에 대한 얘기가 흘러 나왔다. 상인들은 그것을 무엇이든 꿰뚫을 수 있는 날카롭고 위엄 서린 창이라고 말했고, 직조공들은 아주 커다랗기에 왕과 귀부인, 그 뒤에 서 그것을 받치고 있는 시종들까지 감싸안을 수 있는 양산이라고 말했고, 거렁뱅이들은 태피스트리에 대한 얘기는 별로 꺼내지 않고 그저 여인이 타로점을 재밌게 본다고, 그런데 무슨 소릴 하는진 잘 모르겠다고 내뱉듯 말했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궁금증이 생긴 나는 여인의 집에 방문하기로 마음먹고, 사람이 드나들지 않던 어느 날 그 집을 방문했다.

집 안은 고요했고, 딱히 뭐라 설명할 수 없을 정적이 감돌았다. 익히 듣던 대로 여인은 가만히 앉아 태피스트리를 짜고 있고, 그 앞엔 타로 카드 두 벌만이 새근새근 잠을 자고 있었다. 옆에 있는 땅딸막한 의자에 앉을까 아니면 침대에 앉을까 고민하던 나는, 다리를 둘 곳이 마땅치 않다는 생각을 하고 침대에 앉게 되었다. 여인은 내가 침대에 앉는 소리를 들었는지, 고개를 돌려 초점 없는 눈으로 지긋이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먼저 말문을 터야겠다는 느낌이 들어, 우선 가볍게 시작해보기로 했다.

"안녕하세요."

"당신은 키가 크군요."

"그걸 어떻게 아셨죠?"

"침대에 앉을 때, 당신이 발을 내려놓는 소리가 가까운 데서 들려왔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다리만 길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하기엔 침대의 삐걱대는 소리가 조금 컸구요."

'예사롭지 않은데' 하고 나는 생각했고, 뭘 질문해 볼지 잠시 머리를 굴리다 이 집에 다녀간 사람들에 대해 물어보기로 했다.

"그런데 이 집에 다녀간 사람들은 총 몇 명이나 되나요?"

"글쎄요, 상인 두 명에, 직조공 한 명에, 거지 두 명, 그리고 제게 양젖을 가져다 주는 아이까지 해서 총 여섯 명이네요."

"음... 상인들은 당신에게 뭘 물었죠?"

여인은 짜던 태피스트리를 잠시 내려놓고, 생각하는 듯한 눈길을 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상인들은 묻기 위해 이곳에 오지 않았어요."

"그럼요?"

"그들은 제가 할 수 있다고 믿는 예지를 듣기 위해, 정확히 말하면 제가 하고 있는 질문에 대한 답을 듣기 위해 이곳에 왔어요."

"당신이 하고 있는 질문이 뭐지요?"

"제 손을 보세요."

여인의 무릎 위에 놓여 있는 작은 두 손을 보았지만, 나는 그것이 뭘 뜻하는지 잘 알 수 없었다.

"잘 모르겠네요."

"그렇겠지요. 하지만 상인들은 자신들이 질문을 알아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게 "당신이 짜고 있는 태피스트리가 완성되면, 거액을 주고 그것을 사겠소."라고 대답하곤 자리를 떴답니다."

"정말 그 말만 했나요?"

나는 살풋 어린 미소를 놓치지 않았다. 여인은 눈으로 타로 옆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제가 말하는 데 은화가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끄응...' 별 수 없었다. 나는 주머니에 있던 은화 세 개 중 하나를 타로 카드 옆에 놓았다. 열쇠를 돌리듯 딸각 하는 소리가 들리고, 여인은 차분히 말하기 시작했다.

"상인 중 하나가 제게 이렇게 물었지요. "당신이 짜고 있는 태피스트리는 뭘 묘사하고 있는 거요?" 전 딱히 할 말이 없었기에 "제 눈은 태피스트리 위를 훑지 않고 그 밑을 응시합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상인이 이렇게 말했지요. "내 눈엔 저것이 날카로운 창으로 보이는군." 저는 그저 웃기만 했지요. 처음에 물었던 상인은 제가 짜고 있는 태피스트리를 유심히 보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흠, 그래. 그렇게 볼 수도 있겠어. 어쨌든 그대의 세심한 손길이 훑지 않는 곳은 없구려. 잘 모르긴 해도 아름다워, 집 벽에 걸어두면 훌륭한 장식물이 되겠군." 그리고 그 뒤는 제가 말한 대로에요. 어때요, 의문이 풀렸나요?"

"글쎄... 이것만 가지곤 뭔가 부족하단 느낌이 듭니다. 혹시 직조공과의 대화도 들어볼 수 있을까요?"

"당신의 궁금증은 해소될 날이 요원해 보이네요. 그래도 해 드릴 순 있지요. 요 앞에 놓여 있는 카드 두 벌을 잘 섞어 주시겠어요?"

물론 못할 건 없었다. 나는 조심스레 탁자 앞으로 가, 곳곳이 해져 뚜렷하진 않지만 잘 그려진 그림을 품고 있는 카드들을 고루 섞었다. 달, 조커, 탑, 왕... 각각의 의미를 품고 있는 상징들이 눈앞을 지나가고, 태피스트리 짜는 소리와 카드 섞는 소리가 톱니바퀴와도 같이 맞물려 주위에 감돌았다. 이윽고 적당히 카드를 잘 섞었다는 생각이 들 때쯤, 동작을 멈추지 않고 여인이 내게 지시했다.

"이제 카드를 내려놓고, 잠시 앉아 계세요."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뒤, 여인은 바늘을 태피스트리의 조밀한 구멍에 꽂고 뒤돌아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잘 섞인 카드 뭉치를 손으로 들고 간을 보듯이 한장 한장 넘기는데, 그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내가 타로점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에 점을 본 과정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겠다. 다만 점을 보고 나서 여인은 카드들의 나열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이윽고 고개를 들고 나를 쳐다보았다.

"무슨 문제 있습니까?"

"아뇨, 모든 게 뜻대로 이뤄지고 있네요. 직조공과의 대화가 궁금하다 하셨죠? 그는 제가 엮어내고 있는 태피스트리를 보더니, 오직 그것에 대해서만 얘기했어요. 이를테면 잎사귀를 짜는 솜씨가 좋다느니, 어떤 염료를 썼냐느니 등등…… 물론 저는 그저 웃기만 했죠. 직조공들이란 원래 그런 자들이에요. 자신의 직업의식이 그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어, 다른 것들--선반의 기울어짐이나 다 해진 이불보 등--은 보이지 않는 거에요. 그래서 그들과 대화할 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없죠. 잠시 딴 눈을 팔다 돌아와도 여전히 똑같은 얘기만 반복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당신은 직업이 뭐죠?"

"타로는 그런 것에 대해 말하지 않습니까?"

"아, (여인은 잘 웃는 것 같았다) 타로는 제 생각을 정리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일 뿐이지, 뭔가를 정확히 짚어내는 "만능 램프"가 아니에요. 점성술사도 얼치기가 아닌 이상 그의 재능과 도구를 맹신하지 않지요."

"그렇군요. 저는 현재 가업을 잇기 위해 아버님의 가게에서 견습직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가게에선 주로 향신료나 실크를 취급합니다."

"향신료의 여왕이라는 샤프란 향 역시 그 가게를 감싸겠군요."

"뭐, 그런 셈이죠. 저는 그 향이 지겹습니다만."

"이제 거지분들의 대화가 궁금해지지 않으셨나요? 하지만 그들의 대화를 엿들었다간 실망할지도 몰라요."

"음... 과연 그렇겠습니다. 그들은 술을 마시고 여인네들을 희롱하는 데에서만 유희를 얻기 때문이죠."

"모든 거지들이 그렇진 않다는 걸, 설마 모르진 않겠지요?"

"일단 제가 본 거지들은 그랬습니다."

"당신은 디오니소스의 일화를 들어본 적이 있나요?"

"견유학파의 그 디오니소스 말씀이군요. 글쎄요, 일단 디오니소스는 신이 아닙니까? 그의 신성은 그가 아무리 거지 행세를 하고 다녀도 사라지지 않겠지요. 인간들이 쉽게 타락하는 것과 반대로."

"어째서 인간들이 그렇게 쉽게 타락한다고 보시나요?"

"글쎄요… 누군가를 현혹할 만한 것들이 도처에 있기 때문 아닐까요?"

"그건 자신들이 만들어낸 물건들에 대한 핑계일 뿐이에요. 자, 그럼 여기까지. 당신이 정말로 묻고 싶은 질문을 해 보세요."

그런 게 있을 턱이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탁자에 한쪽 팔을 걸쳐 턱을 괴고 생각해 봐도 떠오르지 않는 질문을 입 밖에 낼 수는 없는 법이었다. 얼마간 고민하고 있는 내 모습을 외면하고 타로를 정리하던 여인은 카드 한 장을 내 눈 앞에 들이밀고는 말했다.

"'운명의 수레바퀴', 줄여서 "운명"이라고도 하죠. 당신은 인간이 그에게 주어진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휴머니스트에요. 휴머니스트는 주어진 환경과 여건에 대체로 저항하곤 하죠. 이 카드의 의미와 궤를 같이하여, 당신은 당신의 삶에 있어 큰 전환기를 맞게 될 겁니다. 자신이 살고 싶은 대로 살 수 없다는 사실을 당신은 깨닫고, 역사의 흐름 속에 신체를 내맡기고 얼마간 방황하게 될 거에요. 그리고 뭘 하게 될지는 아직은 비밀입니다. 이 이상을 타로는 어렴풋이 말할 뿐이에요. 그러니 이 집을 나가게 되면, 제가 말한 것을 가급적 의식하려 하지 말기를."

그러고 나선 여인은 재빨리 홱 돌아서더니, "운명" 카드를 덱의 맨 위에 올리고 잠시 탁자에 기대어 눈을 감고 서 있다, 작업대로 돌아가 하던 작업을 마저 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었기에--그 상황에서 무언가 더 말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아 보였다--, 나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그녀의 말대로 나는 일종의 "예언"을 의식하지 않았고(못했고), 가게로 돌아와 오랜만에 많이 들어와 문 앞에 쌓여 있는 소품들을 옮겼다.

내 무의식은 내가 언제까지고 물건들을 옮기고 그것들을 선반 위에 정렬하고 손님들과 흥정을 하고 값을 매기는 일을 하리라곤 결코 생각지 않았으리라. 역시나 나는 단지 사막을 경험하고 싶다는 맹목적인 이유로 집을 나섰고, 십오 년에 걸쳐 방황하고 또 방황했다. 내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사막엔 바람이 모래에 물결을 그려내 곡선미를 자랑하는 사구들과 허깨비 그리고 달콤한 코코넛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야자수와 오아시스가 있었다. 또한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는--그러나 자리를 잡고 "제국"이라는 보호망에 안도하는 사람들을 비웃는--유목민들과 그들을 혹 사이에 싣고 느릿하지만 둔중한 발걸음으로 사막을 걷는 낙타들이 있었다. 그곳엔 언제나 타는 듯한 태양과 살금살금 걷는 전갈들과 선인장이 있었으며, 지친 여행자를 웃음과 곰보 얼굴로 맞는 달과 매서운--밤이 되면 모래들은 열기를 잃고 태양을 그리워하며 새근새근 잠에 들었다--추위 역시 존재했다. 터번을 쓰고 이리저리 방랑해도 누구도 맞아주지 않았으며, 사구에서 한바탕 굴러도 내 안위를 걱정해 주는 사람은 주위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내 이마에도 아버지와 같은 깊은 골이 여럿 생기고 눈가에도 자글히 주름이 자리잡게 되었다. 세월은 흘렀건만, 어디 자리를 잡겠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나는 "실크 로드"가 끝나는 한 거대한 도시에 자리를 잡게 되었고, 소싯적 어깨 너머로 배운 요거트 만드는 기술을 십분 발휘해 시장에 좌판을 벌리게 되었다. 물론 그것은 최소한의 생활을 위한 임시방편이었으며, 남는 시간엔 등불을 켜고 책을 읽거나--주로 두꺼운 책들이 내 밤상대가 되었다--떠오르는 생각들을 양피지에 옮겨 적었다. 그렇게 탄생한 글이 바로 이 글이고, 나는 다른 글들과 같은 정도로 이 글에 애정을 지니고 있다. 한번은 타로를 배워볼까 하는 마음이 들어 주위에 타로를 잘 하는 사람이 없나 찾아보기도 했다. 그러다 수정구와 기타 신묘한 주술 도구들을 가지고 있는 한 여인의 점집에 들르게 되었는데, 그 이야기는 밤이 깊었기에 다음에 써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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