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   2025/03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Tags
more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l'Empreintes du beau rêve

'자유로움'에 대해 본문

etc.

'자유로움'에 대해

barde 2014. 4. 25. 11:51



  '자유로움'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외부적인 구속이나 무엇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기 때문에 부자유한 것이지만, 잘 생각해 보면 자유의 문제는 그게 아님을 알 수 있다.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음'이 인간의 조건이라고 한다면, 인간은 서로를 조건지음으로써 서로에게 부자유를 부과한다. 서로가 부자유하기 때문에 '질서'가 생겨나는 것이며, 질서를 유지할 수 있어야 '사회'가 탄생한다. 즉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언사는, 처음에 이 말을 한 사람이 비록 의도하지는 않았더라도, 인간은 부자유하게 살기를 타고난 존재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날 때부터 '자유로운' 인간은 적어도, '사회'에서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현재 일본에는 수많은 니트들이 있다. 프리터를 포함하면 어림잡아 200만 명 정도 되는데, 이들은 특별히 노동의욕을 가지지 않고 적당히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아니면 부모의 지원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여기에는 일본의 가혹한 노동환경과 파견근무, 일본 사회 특유의 '직업정신' 분위기도 한몫하지만, 가장 큰 원인은 '잃어버린 20년'-이제 조금 있으면 30년을 바라본다-의 여파로 일자리가 감소했기 때문이다. 사라진 일자리를 채운 것은 가혹한 노동을 강요하는, 게다가 월급도 살아가기에 빠듯한 비정규직과 파견근무로, 특히 파견근무는 일본 사회를 '지옥'이라고 부르게 만들 정도로 일하는 사람들을 사지로 몰아넣었다. 이런 사회답지 못한 '사회'니, 니트들이 늘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일하고 싶지 않아 자살을 선택한 사람에 대해선 예전에 적었지만, 만약 그 사람이 20년만 일찍 태어났다면, 그리고 버블경제의 수혜를 잔뜩 받아 가만히 있으면 돈이 내려오는 직장에 취직해서 금세 과장, 부장까지 올라갔다면, 과연 그는 자살을 택했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그가 자살을 택했던 것은 기본적으로, '생활할 돈'이 없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만약 20년 정도 일하고 나머지 반평생을 살아갈 수 있는 돈을 저축해 두었다면, 그는 무리하게 일하지 않고도 느긋하게 남은 생을 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런 '얼리 리타이어'들이 일본에는 꽤 있으며, 개중에는 해외에서 '틀어박혀' 사는 중년층도 있다. 이들에게 '자유'는 돈으로 구매할 수 있는 것으로, 수중에 충분한 돈만 있다면, 남에게 간섭받지 않으면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일도 가능하다. 앞에 했던 말을 다시 되새겨 보자면,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는 하지만, 여기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조건지음'은, 돈으로 면제받을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이러한 사람들이 계속해서 늘어난다면, 그리고 아베노믹스가 실패해서 일본이 일자리를 더 나눈(다고 쓰고 비정규직과 파견을 늘린다고 읽는다) 수밖에 없는 상황에 돌입한다면, 사람들은 '사회'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질까?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시적인 아노미 상태와 마찬가지로, '사회'에 대한 불신과 각자도생의 의지가 증가할 것이다. 사실 지금도 부분적으로는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일본은 '직업정신'을 언젠가는 포기할 수밖에 없을 테고, 그것은 고스란히 일본의 시민들에게 전가되어 사람들은 더 낮은 임금을 감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여기에 금융으로 이익을 얻는 자본가나, 부동산이나 주식으로 수익을 얻는 자산가는 해당되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그들에게는 '직업정신' 같은 것은 요구되지 않았다. 그들이 해야 하는 일은 오직 하나, 정부를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일이었다.


  다시 '자유로움'으로 돌아오면, 인간의 자유는 이제 돈으로 '조건지음'을 면제하는 것으로밖에 달성될 수 없다. 이것을 진정한 '자유'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사태가 해결되지 않은 채로 비상벨을 울리고 있는 이상, 모두에게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만드는 가장 빠른 방법은 모두에게 일정 금액의 돈을 지급하는 것이다. 이를 '기본소득'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고, '국민배당'으로 부를 수도 있겠지만, 자본주의를 대체할 만한 새로운 '시스템'을 찾을 때까지는, 이런 식으로라도 시민의 불만을 최소화하면서 견뎌나갈 수밖에 없다. 근대 이후로 모두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인권'이란 것을 가지고 있다고 합의한 이상, 여기에 '생활할 수 있을 만한 소득'이 들어가지 않을 여지가 없다. 만약 '사회'를 포기하기로 결의했다면, 인간을 다시 자연상태로 내모는 것밖에 다른 방법이 없을 테지만.

'etc.'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역사를 알아주길 바란다  (0) 2014.04.30
2013. 4. 11.  (0) 2014.04.27
<이런, 씹할>  (0) 2014.04.21
'자살'과 인간의 존엄  (1) 2014.04.16
'죽음'에 대해  (0) 2014.04.13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