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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mpreintes du beau rêve

우산의 저주 본문

etc.

우산의 저주

barde 2014. 9. 17. 21:40




  간식 사 오기 전에 쓰는 글. 따라서 난삽할 수도 있으나,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잘.


  9월 3일, 이 날은 아침부터 거센 비가 내렸다. '거센 비'라고 말하면 무슨 비인지 잘 모를 수도 있으니 설명하자면, 대략 '우산--어떤 우산이라도 좋다--을 쓰지 않으면 10분 내에 어깨를 적셔 브래지어 끈이 보이는 정도'의 비가 내렸다. 나는 브래지어를 하지 않았지만, 뭐, 그런 것이 대수랴. 여하간 나는 7시에 잠들지 못하는 몸을 일으켜--이 날의 알람은 빌 에반스의 children's play song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곡이다--클렌징 폼으로 세수를 꼼꼼하게 한 뒤에, 미리 챙겨둔 캐리어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비가 내렸기 때문에 우산을 가지러 방으로 들어갔다 다시 나왔다. 우산은 초록색의, 하얀색 물방울 무늬가 있는 작고 귀여운 우산이었다. 나는 우산을 쓰고, 빨간색 캐리어를 밀고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 버스 정류장에 막 도착한 5528번을 타고 기괴한 정문이 있는 대학의 정문으로 향했다. 왜냐면 그곳에서 공항버스가 출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15분 가량을 기다렸을까, 실은 15분 전에 도착하는 버스를 탈 수 있었지만, 아쉽게도 간발의 차로 버스를 놓치고 말았다. 이것 때문에 앞에 서술하게 될 일들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노란색 공항버스가 도착했다. 나는 차에 올라 교통카드를 찍고 캐리어를 캐리어 놓는 곳에 놓았다. 타는 사람은 나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예정된 시각에 공항버스는 출발했고, 나는 충전해 둔 핸드폰을 만지며 버스가 제시간 내에 도착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이 바람은 곧 산산조각나 나의 심장에 깊은 상처를 남길 것이다.


  버스는 예정된 시각보다 정확히 10분 늦게 공항에 도착했고, 나는 짐을 내리자마자 헐레벌떡 달려 카운터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카운터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수속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상하게, 많이 느끼하게 생긴 남자 직원 한 사람이 나에게 행선지를 물어보았고, 나는 삿포로라고 대답했다. 그는 줄을 건너 바로 카운터로 가라고 말했다. 나는 카운터에 갔지만, 실은 이렇게 될 일을 예상했다고 말하는 편이 맞겠지, 여직원의 안됐다는 표정을 받으며--그냥 내멋대로의 상상일지도 모르겠지만--수속에 실패했다. 그래서 나는 표를 다시 끊고, 예정된 시각인 오후 6시 반까지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여러 군데 전화를 걸었고, 딱히 예약해 둔 곳은 없었지만, 1000엔을 깨서 공항에서 밥을 사 먹고(이건 맥도날드 이후로 처음이다), 남은 돈이 얼마 없다는 이유로 물을 한 통 산 뒤에, 그나마 편안한 의자에 앉아 책을 읽었다. 버스에서 잠을 잘 못 자서 공항에서 잘 속셈이었지만, 그마저도 4층 출국장에 있던 의자들이 몽땅 사라졌다는 이유로 성사하지 못하고, 피곤에 절은 눈으로 쉴 만한 의자를 찾던 중에, 만만해 보이는 의자가 있어서 그곳으로 가 잠을 청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곳에서 잠을 잘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만약 누군가 그 의자 위에서 숙면을 취했다고 한다면, 나는 그에게 수면의지를 계승한 자라는 칭호를 부여할 것이다.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였다. 별로 재미있는 책은 아니어서, 하지만 아무 것도 할 만한 일이 없을 때는 읽을 만하다, 나는 적당히 책을 읽고 3시간 일찍 체크인한 뒤에 바로 출국장으로 향했다.


  아마도 18번 게이트였던 것 같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나는 그곳에서 아침보다는 한결 수월하게 체크인할 수 있었다. 체크인해서 비행기로 들어가 봤더니, 비행기는 생각보다 좁았고(그 이유는 아침과 저녁의 비행기 기종이 다르기 때문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승무원은 친절했으며, 한국인보다는 일본인이 더 많아 보였다. 앞에 등받이를 170도 가량 젖힐 수 있는 비즈니스 좌석이 몇 석 있었는데, 그리 멋져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도 3시간 가량의 비행이라면 꽤 쓸모가 있을 터였다. 나는 창가 자리를 골랐다. 내 옆자리에는 아마도 출장으로 일본에 가는 듯한, 아니면 무슨 다른 용무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외국인이 앉았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서양인이다. 외국인은 밥을 먹고 바로 잠들었는데, 그래서 내가 화장실을 갈 때마다 외국인에게 "hello, excuse me" 같은 말을 걸어 외국인을 깨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외국인은 친절한 편이었다. 얼굴에서 웃음을 잃는 법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밥은 비프였는데, 꽤나 맛있었고, 무엇보다 식기가 적당히 무게감 있는 스텐레스라는 사실이 마음에 들었다. 이런 걸로 감동할 나이는 지났다고 생각했지만, 받아보니 조금 마음이 누그러지긴 했다. 그리고 영화를 하나 틀고, 프랑스 영화였는데, 적당히 볼 만했다. 프랑스 영화답게 매우 상황주의에 충실한 영화였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잠들었다. 깨어나 보니 벌써 밖은 어두워져 있었다. 영화는 거의 끝을 향해 있었고, 나는 멍하게 비행기가 공항에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다. 비행기가 공항에 도착했을 때, 나는 이미 모든 일에 체념한 상태였다.


  그 뒤론 별 거 없다. 공항역에서 기차를 타고--이 기차의 안 좋은 점이라면 바로 좌석이 개별석이 아니라 지하철 같은 일렬석이라는 것이다. 지정석을 끊었다면 개별석에 앉을 수 있었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운이 나빴던 게 아닐까 싶다--바로 삿포로로 가, 오후 11시 경에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 실제로는 오후 11시 반 정도일 것이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사람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그것 또한 즐거웠지만, 나는 너무 피곤했다. 오후 12시를 조금 지났을 때, 나는 2층침대로 들어가 바로 잠들었다. 이 또한 다음 날에 있을 일의 서막에 불과했다.


  그리고 다음 날. 나는 8시 20분 경에 숙소에서 나와 바로 지하철에 올라탔다. 급하게 가야 할 곳이 있어서였다. 역에 도착하기 전에 편의점에 들러--이 편의점은 전날 저녁에 홋카이도산 우유를 산 곳이기도 하다. 우유는 홋카이도산답게 꽤 맛있었다--비닐우산을 하나 구매했다. 이것을 쓰고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해, 오전 일정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오후에는 가슴 아픈 일이 하나 있었다. 오후 2시 정도에 숙소로 돌아왔는데, 숙소에 도착하기 전에 나는 우산을 하나 '해 먹었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역으로 향할 때 비바람이 너무나 세게 분 탓이었다. 그 덕에 나는 우산살이 완전히 망가져 버린 우산을 처리하기 위해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했고, 의외로 이 고민은 쉽게 풀렸는데, 역에서 다시 지상으로 올라왔을 때, 입구 앞을 걸어가는 노인 부부 한 쌍이 보였다. 부부는 나의 우산을 보더니 놀람의 탄성을 내뱉었고, 나는 비바람 때문에 우산이 이렇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미 살이 부러져 버려 우산을 고칠 수 없다는 것까지 함께 설명했더니, 대뜸 할아버지가 내게 비닐우산 하나를 주었다. 자기는 필요 없다면서 말이다. (실은 옆에 있던 할머니가 제대로 된 우산을 쓰고 있었다.) 나는 할아버지에게 감사를 표한 뒤에, 할아버지가 쓰던 비닐우산을 받아들었다. 내가 '해 먹은' 것과 같은 비닐우산이었다. 나는 이미 해 먹은 우산을 자전거를 세우는 공터에 버렸다. 여기서 끝났다면 '우산의 저주' 같은 말은 안 하겠지만, 실은 우산의 저주는 여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그래서 우산의 저주가 뭐냐고? 한번 버린 우산은 그 주인에게 반드시 복수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끝나지 않은 우산의 저주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이어서 적기로 한다. 왜냐면 나의 배가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며 한계신호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자, 그럼 다음 기회에.


  p. s. 충고하자면, 우산은 버리지 않는 편이 좋다. 만약 절대로 우산을 가지고 갈 수 없는 상황에 처한다면, 그 때는 우산을 버릴 게 아니라, 아예 다른 사람에게 주거나, 안전한 곳에 보관해 두어라. 우산은 그러한 주인의 배려에 저주를 내리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지지리도 운이 나쁜 사람이라면, 이런들 저런들 결국 저주를 피할 수 없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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