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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mpreintes du beau rêve

Comic LO: '소녀'를 바라보는 이중슬릿 본문

etc.

Comic LO: '소녀'를 바라보는 이중슬릿

barde 2013. 5. 23. 03:55




베컴이 이 잡지를 들고 있는 사진으로 유명해진(실은 PSP 게임기에 합성한 것이었지만), 오타쿠들 중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는 잡지 Comic LO는, “One and Only Comic Magazine”이라는 표어를 내걸고 2003년에 창간한 성인 잡지다. 잡지를 소비하는 주 대상은 로리타 컴플렉스에 빠져 있는 성인으로, 이들은 지난 10년간 Comic LO가 망하지 않고 100호가 넘도록 잡지를 낼 수 있도록 한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었다. 흥미롭게도 LO의 표지는 수채화 풍의 그림으로 유명한 타카미치가 창간호부터 맡고 있는데, 잡지의 표지가 화제가 될 정도로 ‘표지만은’ 순수하고 귀엽기 그지없다. 그러나 내용은 모두가 알다시피 성인을 위한 만화로 채워져 있는데, 이 간극이 LO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가장 단순한 사실부터 시작해 보도록 하자. 표지는 타카미치의 그림으로 미려한 배경을 뒤로 하고 순수하고 귀여운 소녀들이 지면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한 장 한 장 넘기기 시작하면, 범상치 않은 맥락을 확인할 수 있다. 중간에 LO에서 독자적으로 구성한 광고나 조언(?)이 들어가 있기도 하지만, 300페이지 가까이 되는 분량은 거의 전부 다양한 만화가들이 그린 동인지로 가득 채워져 있다. 잡지의 목적은 명확하다. 그러나, 어째서 타카미치가 표지를 그린 것일까? 사회에서 용납받지 못하는 욕망을 그대로 드러냈다는 것을 순수하고 귀여운 그림으로 숨기기 위해서? 아니면 ‘소녀’를 가장 잘 묘사하는 작가가 바로 타카미치라서? 타카미치에게 직접 묻지 않는 이상, 진짜 이유는 알 수 없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의 눈에 보이는 LO를 한번 생각해 보자. LO의 ‘표지’는, 잡지를 구매하거나 훑어보는 다른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고 구성된 화면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표지의 자리에 어떤 그림이 와도 상관 없었을 테다. 어차피 내용은 너무나 명확하니까, 구매할 사람은 구매하고 나머지 사람은 거들떠도 안 볼 것이다. 그러나 타카미치의 그림은 누구라도 고개를 돌릴 정도로 뛰어난 퀄리티의 그림이다. 적어도 귀여운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한 사람이 LO의 표지를 보고 무엇을 생각할지 상상해 보면, 답은 간단하다. 그가 설령 LO의 ‘본질’을 미리 들어 알고 있을지라도, 표지만은 좋다고 생각할 확률이 높다. 내용은 별로지만, 표지는 괜찮네. 그리고 바로 이것이 LO가 노리는 바다.


LO는, 자신을 바라보는 프레임을 두 개로 나누는 데 성공했다. 하나는 익히 알다시피 성인 잡지다, 그것도 사회에서 용납받지 못하는 욕망으로 가득찬. 그리고 다른 하나는, 타카미치의 그림으로 촉발된 효과다. LO의 내용에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 좋은 이미지로 생각되어지게 하는 것. 표현의 자유를 존중해 달라고 천 마디 말을 해도 소용이 없다. 훌륭한 그림 하나만 있으면, 사람들의 뇌에는 잡지의 속과는 관계없이 좋은 이미지가 생긴다. 아, 그 예쁜 그림. 잡지 이름이 Comic LO였나? 물론 좋은 이미지가 생겼다고 해서 덩달아 잡지의 매상까지 올라가는 것은 아닐 테다. 하지만, 적어도 LO를 파렴치한 욕망의 전시와 향유로 머릿속에 자리잡게 하지는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LO는 성공을 거두었다.


표지에 자리잡은 ‘소녀’를 보는 두 가지 시선은, 따라서 표지 바로 위에서 초점이 하나로 모인다. 이제 중요한 것은 LO의 내용이 아니라 표지가 구성한 ‘이미지’가 되었다. 성인 잡지를 사는 사람은 꾸준히 존재해 왔다. 그들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해서라도, LO는 자신을 최대한 선하게 꾸밀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표지에 타카미치의 그림을 택하고, 중간중간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는 성숙하지 못한 성인들을 위해 구호나 조언도 넣어 가면서, 현실과 ‘가상’을 철저히 분리했다. 어쩌면 LO는 표현의 자유라는 뜨거운 감자의 최전선에 서서 래디컬한 운동을 벌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O의 표지는 소녀를 바라보는 한 가지 시선을 감추고 있다. 소녀를 ‘성적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성적 도착의 문제로 들어가면, 문제는 내가 다룰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해진다. 따라서 나는 ‘시선’을 지적하는 정도로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LO는 심하게 표현하자면 분명히 도착에 가까운 욕망으로 벌어먹고 사는 잡지다. 하지만 여타 성인 잡지와는 다르게, LO는 자신에게 어떤 ‘이미지’를 덧붙이는 데 성공했다. ‘소녀’를 바라보는 이중슬릿은, 한쪽 시선을 표지 뒤에 숨기면서 다른 한쪽을 일반인의 시선과 동화시켰다. 표백된 시선에서 욕망은 말끔하게 거세되고, 거기에는 오직 소녀를 보는, 애정 가득한 따뜻하고 상냥한 시선밖에 남지 않는다. 그러면 거기, 바로 ‘그곳’에 서 있는 소녀는 누구를 보고 있을까? 그리고 소녀는, 자신이 두 가지 시선에 마주하고 있음을 과연 깨달았을까? 하지만 그림은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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