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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mpreintes du beau rêve

천사의 임무 본문

novel

천사의 임무

barde 2014. 1. 7. 12:48


나선으로 떨어지는 밝게 빛나는 물방울이 시야를 가로질러 지나가고 있었다. 물방울이라고 해도 단순히 물이 공중에 흩뿌려진 것이 아니라, 주먹만한 물덩이가 질량을 품고 그 검은 속에서 빛을 내뿜는 찬란한 모양새였다. 작은 학교만한 돔은 열린 채로 별이 주근깨처럼 빼곡히 박혀 있는 검은 하늘을 그대로 자신의 품 안에 내려담고 있었다. 그 가운데 서서, 나는 물방울을 향해 손을 뻗는 모습을 상상하며 언젠가 아름답다는 말을 들었던 속눈썹을 치켜올렸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수한 빛무리가 거기에 부딪쳐 산개하는 듯했다. 어떤 소리도 내지 않고 내리돌던 빛나는 물방울은 이제 농구대 높이까지 와 있었다. 가까이 와서 그런지 내뿜는 빛이 더욱 밝아진 느낌이었다. 충분히 기다렸다고 생각되어진 순간, 나는 오른팔을 죽 뻗어올려 무거워 보이는 물방울을 잡으려고 했다. 그러나 이제 눈부실 정도로 빛나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을 정도가 된 물방울은 가까운 거리에서 내 팔을 지나쳐 주위를 빙그르르 돌았다. 머리 높이부터 이윽고 발에 닿을 때까지 가을이 지나간 것처럼 생각되었다. 빨갛게 물든 낙엽과도 같이, 번쩍거리며 빛나는 물방울은 발 위로 톡 하고 내려앉았다. 하늘로 솟아오르는 빛 속에서, 나는 영원을 보았다.


높고 넓은 돔에서 신비로운 체험을 한 뒤로 벌써 일주일이나 지났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평화로이 거리를 활보하고, 그 사이를 아무 위화감 없이 걸어다니는 나도 겉으로는 어떤 내색도 하지 않은 채 예전과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에서부터 나의 정신은 커다란 변화를 겪었다. 기적이라고 불러도 좋을, 세상에서 두 번 다시 겪지 못할 경험을 한 나의 마음은, 이따금 그 거리를 짐작할 수 없는 곳에서부터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목소리의 주인은 천사여도 좋았고 인간 외의 존재라면 누구든 좋았다. 한 가지 확실한 점은, 나의 정신이 결코 인간의 지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체험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신이 존재하냐, 그렇지 않냐 하는 질문은 신학자나 철학자의 흥미를 끌기엔 더없이 좋은 질문이지만, 그런 질문은 현재의 나에게 있어 아무래도 좋았다. 처음에 ‘목소리’는 규칙적이긴 하지만 전혀 그 뜻을 알 수 없는 미지의 언어를 말하고 있었기 때문에, 비록 차분한 음성이긴 했지만 전혀 거기에 집중할 수 없었다. 그러나 최초의 ‘체험’으로부터 한 달이 지났을까, 점차 목소리가 모어로—정확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심상이 모어로 떠올랐으므로 모어로 적는다—‘들려오기’ 시작했다. 이것만으로도 답답함을 해소함과 더불어 이성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지만, 내용을 조합해 나가면 나갈수록 목소리에 대한 호기심과 놀라움은 커져만 갔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고요한 목소리는 꾸준히 내게 이렇게 말해오고 있었다.


“당신은 천사의 임무를 부여받았다”고.


천사나 으레 반대항으로 따라오는 악마에 대해선 어릴적부터 잘 알고 있었지만, 가지고 있는 지식의 수준이란 것이 고작 천사는 착하고 성스러운 존재며, 악마는 사악하고 꾀임에 넘어가선 안되는 아주 지독한 존재라는 지극히 이분법적인 내용이었다. 뭐, 실제로 인간이 천사나 악마를 볼 일은 없으니 멋대로 개념을 정의내린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형식적으로 ‘천사같은 사람’이니 ‘악마같은 놈’이라는 표현을 붙이는 것은 인간 주제에 너무 지나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정말 아무래도 좋을 것이었지만, 어쩐지 인간의 보잘것없음을 처음부터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나 자신은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사귀어 왔던 친구들로부터도 “너는 염세적이다”라는 매몰찬 평가를 받아왔기에, 거기에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도 어딘가 찝찝함이 남았다. 그러나 만약 내가 정말로 회의 속에 빠져 지내는 염세주의자라면, 어디에서 들려오는지도 알 수 없는 목소리를 긍정하고 관심을 보이는 일 따위는 결코 없었을 것이다. 물론 거기엔 이상할 정도로 굳센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지만, 그것이 곧 내가 신을 믿는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았다.


아직 예의 목소리는 내게 구체적인 지시를 내리지 않고 있었다. 이제 들려오는 횟수도 하루에 두세 번 정도로 줄어들었지만, 라디오 전파처럼 음성이 갑자기 끊기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나는 컴퓨터 앞에 눌러앉아 엉덩이가 저릴 때까지 편집을 하면서도 종종 그 날의 체험과 발등에 내려앉은 물방울에 대해 생각했다. 도대체 물방울은 무엇이었을까? 번쩍이며 빛나던 모습과 반죽한 찰흙같은 모양을 생각하면서도 나는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만지면 물컹할 것 같던 물방울은 발등에 닿은 직후 팟 하고 맹렬히 빛나더니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자 그만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분명 그게 목소리와도 관련이 있는 것일게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리고 돔. 분명 ‘플라네타리움’을 보기 위해 돔에 간 것이었지만, 어째선지 그 날은 별자리의 장대한 모습을—비록 쏘아올려진 영상에 지나지 않더라도—볼 수 없었다. 대신에 천정이 살짝, 아주 살짝 열려 있었다. 나로서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무언가 영사된 하늘이 아닌 실제 하늘을 관측하기 위해 잠시 열어둔 것이 아닌가 하고 막연히 추측하고 있다. 분명히 거기엔 관측을 위해 준비해 둔 중형 천체망원경이 몇 개 놓여져 있었다. 하나만 해도 가격이 꽤 나가는 물건일 거다. 저런 걸 잘도 구입해서 밤마다 쓴다니, 하고 나는 도중에 생각했더랬다. 취미의 영역이니까 존중해 주지 못할 것도 없지만, 하며 한 친구의 취미를 생각하며 덧붙였지만 말이다.


그런데 천체관측 따위가 중요한 것이 결코 아니었다. 목소리, 그리고 천사에 대해 깊이 고찰해 봐야했다. 천사라면 분명히 내가 아는 그런 천사—새하얀 날개 한 쌍을 달고 역시 새하얀 토가를 입고 있고 뒤에선 후광이 비쳐오는—겠지. 다른 천사를 생각하기에는 나의 두뇌에 입력된 정보가 부족하다. 천사의 임무라... 길 잃은 영혼을 ‘하느님 아버지’에게로 데려가는 것? 아니면 불쌍하고 절실한 사람들에게 신을 대신해 구원의 손길을 내리는 것? 그것도 아니면... 이런 식으로 연상해 나가면 한도 끝도 없다. 모니터를 쳐다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골이 났기 때문에, 나는 잠시 하던 생각을 접고 차라도 마시며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찌푸드드한 몸을 일으키며 키보드에서 손을 놓았을 때, 화면엔 질주를 잠시 멈춘 커서만이 깜빡일 따름이었다. 일도 충분히 물릴 만한 작업이었지만, 그것보다 더 나의 정신을 괴롭히던 것은 한 자도 틀리지 않고 질리지도 않는 듯 계속 말을 걸어오는 정체불명의 목소리였다. 그는 내가 대답할 수 없는 11차원의 공간과도 같은 위치에 자리잡고는 아무 감정의 기복 없이 인내심을 지니고 독백을 일삼았던 것인데, 과연 이래서야 미치지 않는 쪽이 이상하다. 생각이 거기까지 도달하고 나자, 나의 관심사는 목소리가 말하고 있는 것에서 목소리가 마음 속에서 들리지 않게 하는 방법으로 옮아갔다.


여기서 진짜 천사라면 만화에 나오는 모습과 같이 갑자기 각성을 일으켜 눈에서 빔이라도 쏘아야 정석이겠으나, 주지하다시피 내가 살고 있고 또 발을 딛고 있는 장소는 바로 현실이었다. 잠깐 주위를 둘러보기만 해도 먹다 남은 치킨에, 얼룩이 서려 있는 커피잔에, 나뒹구는 휴지뭉치까지 전부 처절히 현실감이 느껴지는 것들이었다. 이쯤에서 명확히 해 둘 것이 있다면, 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목소리’에 대해 아직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개인적인 고충을 아는 것도 나 하나뿐이고, 친구들이나 일로 만나는 사람들은 전부 내가 ‘평범히’ 잘 살고 있다고 여긴다. 이래저래 곤란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어디에도 털어놓을 곳 없는 이 심정을, 녹음기처럼 같은 말만 되풀이하는 ‘그 분’이 알 리가 만무하다. 나는 평소보다 길게 한숨을 쉬고는, 재떨이에 담배를 비비는 흉내를 내었다. 금연한지도 이제 꽤 되었다.


누군가 일상은 너무나 소중하고 한번 잃으면 두번 다시 되돌릴 수 없는 귀중한 나날이라고 그랬지만, 그 말이 맞다면 제발 내 일상을 훔쳐가 주었으면 좋겠다. 이런 일상이라면 차라리 영원히 되찾지 못하는 편이 낫다. 목소리로 말할 것 같으면 차츰 줄어 지금은 하루에 한 번 정도밖에 들리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거기에 대한 반동이라도 되는 것일까, 일거리는 전보다 더욱 늘어나 ‘사소한 것’들에 신경쓸 여유가 전혀 없게 되었다. 놀랍게도 그 당시의 나는 무자비할 정도로 내려치는 일감에 대해 어떤 불평도 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주어진 일을 해 나갔다. 이유는 여전히 오리무중이지만, 아마 심적으로 기묘하다 싶을 안정을 찾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짐작도 해 본다.


사건은 그 무렵에 갑작스럽게 일어났다. 그 날은 약간 흐린 하늘에 무기력한 햇살이 거리에 감돌았고, 노상에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오전에 방에 널브러져 달콤한 잠을 청하던 나는, 해가 중천이 다 되어 일어나 정신을 차린 뒤에 음료라도 사기 위해 마트에 들렀다 돌아오는 중이었다. 사거리는 아침저녁의 부산함을 잊은 듯 느릿하게 차들이 섰다 출발했다. 뭐라고 할까, 전체적으로 맥이 빠져 있었다. 횡단보도 앞에는 안경을 쓰고 머리가 긴 남자 하나와 유치원생임을 드러내는 노란 캡을 쓴 어린 아이밖에 없었다. 학교 주변이 아니라 그런지 초록 깃발을 들고 서 있는 ‘지킴이’ 아주머니는 보이지 않았으며, 이윽고 점멸하는 신호에 발맞춰 차들이 정지선을 지켜 멈춰섰다. 나는 아무런 이상함을 느끼지 못한 채, 한 손에 봉투를 들고 다른 한 손은 주머니에 찔러넣은 모습으로 기묘한 오후를 가로질러 건너가고 있었다. 평소대로라면 횡단보도를 끝까지 건너가고 신호등이 ‘멈춤’으로 바뀌는 게 당연했지만, 정말 이상하게도 파란불에 맞춰 발을 떼는 순간부터 시간이 느려지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확실히 이런 무기력한 오후라면 시간이 느려지는 느낌을 받는 것도 이상할 건 없겠으나, 문제는 내가 아닌 나의 바로 앞에서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는 아이였다. 녀석을 본 순간 나는 무언가 재빠른 것이 녀석을 휩쓸고 지나가는 잔상을 보았고, 전혀 의도하지 않은 행동이었지만 나는 손에 들고 있던 봉투를 내팽개치고 곧바로 아이를 향해 뛰쳐나갔다. 그리고 속으로 수를 세었다. 셋, 둘, 하나. 폴짝 뛰어서 녀석을 품에 안는 행동까진 완벽했지만, 딱 하나 내가 간과한 요소가 있었다.


오토바이는 한껏 엑셀을 밟은 속도로 공중에 떠 있던 내 오른다리를 경쾌하게 치고 지나갔다.


아니, 여기서 잠깐. 다리 한 짝을 날린 정도로 인간은 죽지 않는다. 오토바이에 치인 순간 정신을 잃었기에 그 뒤로 어떤 상황과 절차가 이어졌는지는 짐작으로밖에 알 수 없지만, 분명 많은 소란과 안도와 서두름이 혼재했으리라. 자신의 일인데 그렇게 느긋하게 말할 수 있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겠지만, 오히려 내 일이기에 한 발짝 물러서 바라볼 수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뒤에 듣기로 아이는 무사히 집에 돌아갈 수 있었다고 한다. 그 정도면 됐다고 편하게 마음먹었다. 의사가 수술은 잘 됐다고 마음 편히 있으라고 말해준 것은 여기에 도움을 주었다. 실로 오랜만의 입원이었다. 예전에 왔을 때와 비교했을 때 시설이 조금 더 깔끔해진 것만 제외하고는 별로 달라진 점을 확인할 수 없었다. 처음에 이 ‘병실’이란 공간에 들어왔을 때는 왠지 모를 설렘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한 달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밖에 남지 않는다. 뭐, 요즘이야 스마트폰도 있고 태블릿도 있으니 가만히 앉아서 서너 시간, 아니 반나절이라도 보내는 것쯤은 실로 수월하기 그지없지만, 그래도 ‘스마트한’ 생활을 한 달이나 지속한다는 건 내게 있어 너무나 가혹한 처사였다. 그나마 한 가지 다행이었던 점은 친구와 동료가 가엾은 나를 위해 입원해 있을 동안 읽을 책을 한 보따리 가득 가져다 주었다는 것으로, 이로 인해 지루한 입원 생활도 어느 정도 가을의 색채를 띨 수 있었다. 가을 하니 한 마디 덧붙이자면,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으면 창문 밖으로 빨갛게, 노랗게 물든 나무들이 줄을 지어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나무마다 가지각색에, 길 위로 울긋불긋하게 돋아나 있어 미관상으로도 퍽 뛰어나다. 아마 처음에 나무를 심은 사람도 가을의 경치를 생각하며 심었을 것이 틀림없다. 아무튼 병실에서 밖을 바라보고 있으면 가을이란 정녕 무엇인지 다가옴과 동시에 바로 앞에 죽 나 있는 길을 걸을 수 없다는 좌절감이 엄습해 온다. 한 달 뒤에도 단풍이 남아 있으면 좋으련만, 무리한 바람은 아니겠지.


사흘 정도 지나니 매일 세 끼씩 꼬박꼬박 배달되어 오는 슴슴한 식사에도 적응하게 되었고, 하루에 두 번 내 다리를 수술한 의사가 와 경과를 물어보거나—의사 말로는 다리가 심하게 뒤틀려서 꽤나 힘든 수술이 됐다고 한다—병실은 있을만 한지 같은 사소한 일을 물어보거나 했다. 거기에 부정적인 답변을 하는 것도 어색하게 생각되어 나는 적당히 대답하는 것으로 때웠는데, 의사가 언젠가는 “이제 걷는 연습을 하게 될 겁니다” 하고 말해 그 순간만큼은 놀란 목소리로 “네?” 하고 반문한 적도 있다. 다시 걸을 수 있게 되었다는 건 무엇보다 반가운 일이었지만, 소식이 너무나 갑작스러웠으므로 나는 당황하여 목소리를 높일 수밖에 없었다. 생활이 이와 같이 순탄하게 이어지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 의아했던 점은 이제 더 이상 ‘천사’로부터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볼 일이 끝난 건가, 그 ‘임무’라고 하는? 하느님이 아흔 아홉 마리의 양 대신 한 마리 어린 양을 품었던 일화를 생각하면 아이를 구하는 일도 천사의 ‘임무’ 중 하나라고 생각하지 못할 것도 없었지만, 여전히 석연치 않은 느낌은 남아 나의 머리를 계속 간지럽혔다. 앞으로 걷게 되면 간지러움도 사라지겠지 하고, 책에 몰입해 있던 당시의 나는 가볍게 생각했다.


하나 둘, 하나 둘. 물리치료라고 불리는 걷기 연습은 병실에 갇혀 무기력했던 나를 고양시키고 심지어 몸을 움직이고 싶게까지 만들었다. 사고 전의 나와 비교해 보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변화였다. 아직 수술한 다리에 완전히 적응한 것이 아니었으므로, 달리기나 뜀뛰기 같은 과격한 운동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걷는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만족할 수 있었고, 열심히 물리치료에 빠지지 않는 동안 계절은 점차 가을에서 겨울로 옮아가고 있었다. 나의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단풍은 점차 낙엽이 되어가고 있었으며, 병원에 내드는 사람들이 걸치는 외투도 점차 두꺼워지고 있었다. 당장 할 수 있는 있는 건 걷기 훈련과 가끔씩 찾아오는 소통, 언어적으로 에둘러 표현되는 걱정 어린 마음을 내색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내가 다시금 ‘천사’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발단이 되었던 것은 며칠 전, 저녁을 먹고 나서 불이 꺼진 병실에 홀로 앉아 보름달 달빛을 그대로 내리받고 있는 헐벗은 나무들을 보고 있던 때였다. 이중창인 창문이 굳게 닫혀 있었으므로 잎이 얼마 남지 않은 나무가 바스락대는 미세한 소리조차 들을 수 없었다. 나는 이 점에 대해 제법 아쉽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창문을 열어 추위에 민감한 다른 환자들을 깨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달빛의 교교함은 밑에 서 있는 자그마한 인간을 충분히 전율케 할 정도였다. 비스듬히 내리떨어지는 밤하늘의 달빛을 바라보며, 나는 퇴원까지 남은 날을 세었다. 그러다인가 아니면 생각이 끝나고 난 뒤였을까, 빛 속에서 날개를 단 몸뚱아리가 보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부정확하기 그지없는 표현이지만, 당시의 기억을 복기해 보면 그런 식으로밖에 표현할 수 없다. 달빛이 강한 쪽을 돌아보니 ‘그’도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목소리 다음엔 환영인가, 내 정신을 정말로 의심해야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살짝 불안감이 들었다. 하지만 다른 한구석에선 마치 예전부터 그를 기다려왔던 것처럼, 이제야 모습을 드러낸 환영을 반기는 마음까지 피어났다. 그런 짧은 생각들이 지나가고 나서 다시 밤하늘 한가운데를 쳐다보니, 환영은 온데간데없고 거기엔 어둠을 옅게 만드는 달빛만이 존재했다.


바람도 분류를 하자면 그 원인이나 성질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뉘고, 또 부는 방식도 가지각색이다. 부는 방식으로 말할 것 같으면 살랑살랑, 휘잉, 파르르, 그리고 태풍이 올 때 불어오는 무시무시한 속력을 지닌, 주위 소리를 전부 삼켜버리고 마는 바람이 있다. 이렇듯 같은 ‘바람’으로 불리더라도 인식되는 종류는 달라지는 수많은 갈래가 있지만, 이번에 내게 불어온 바람은—겨울임에도 불구하고—따뜻한 ‘살랑살랑‘이었다. 다리를 심하게 다쳐 입원 생활을 하고 있던 나도 퇴원 날짜가 얼마 남지 않게 되었다. 열심히 걷기 훈련을 할 때는 바깥세상을 향한 기대감이 마치 하늘을 찌르는 듯했는데, 막상 나갈 날짜가 닥치고 나니 이상하게도 별 감흥이 없다. 역시 인간이란 변덕의 동물이라는 것을 다시금 상기한다. 저번날의 ‘환영’에 대해선 지금도 종종 되새겨보고 있다. 그게 정말 하늘에서 강림한 천사의 모습인지 어쩐지는 도무지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점은 달밤의 기억이 무엇보다 생생히 남았다는 것이다. 같은 밤이라고 해도 그 정도로 영상이 선명한 밤은 이제까지 없었다. 이건 혹시나 하는 거지만, 나의 무의식이 내가 정말로 보고 싶어 하는 모습을 달빛 적당히 비추는 밤하늘에 짜깁기했는지도 모른다. 하나의 가설에 지나지 않지만, 마음 속에서 묘한 설득력을 자아내고 있었다. 그런 식으로 나는 겨울의 초입을 지나 추위의 시절로 몸을 옮기고 있었다. ‘살랑살랑’과는 다르게 매섭게 부는 바람은 마지막으로 가로수에 남은 단풍을 보도에 떨어뜨렸다.


퇴원하자마자 내가 한 행동은 바로 달리기였다. 나의 다리뼈와 관절과 근육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새삼스레 확인하기 위해, 병원 문을 나서자마자 곧바로 저 앞에 보이는, 지금은 작동하지 않는 분수대까지 내달렸다. 다행히도 무릎에서 뚝 하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게다가 예전보다 달리는 폼이 더욱 능숙해졌다! 이것은 놀라운 변화였다. 평소에 달릴 일이 전혀 없었던 이 몸이, 이 정도의 속력을 낼 줄이야! 뒤에서 내가 달리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친구도 내가 분수대 앞에서 몸을 돌리고 손을 흔들자마자 이렇게 답해왔다.

“대단하네. 우리 팀 만년 몸치가 이 정도로 달릴 줄이야. 물리치료가 꽤나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야.”

“당연하지! 얼마를 내고 받은 건데, 성과를 내 주지 못하면 안 되지!”

“하여간 너는 그런 마인드가 문제라니까. 최선의 성과는 네 다리를 원상태로 되돌려 놓은 것 아냐? 달리기가 빨라진 건 부차적인 거고.”

친구는 역시나 정론을 말하고 있었다. 거기에 적당한 응수의 말을 찾지 못한 나는 분수대를 짚고 숨을 잠시 헐떡인 다음, 다시 친구가 있는 쪽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탁 하고 친구의 어깨를 짚은 뒤, 상쾌함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이렇게 답해주었다.

“어쨌든, 모든 일이 잘 풀렸으니까 그걸로 된 거 아니겠어?”


오늘은 내가 병원에 입원한 날로부터 반 년이 되는 날이자, 내가 구해주었던 아이의 가족을 만나는 날이다. 아이의 부모 쪽에서 내가 다리를 심하게 다쳤다는 사실을 안 이후로 몇 번이고 연락해 와 사례를 하겠다고 부탁하듯 집요하게 접근해 와서, 굳이 그럴 필요 없다는 마음의 진정성이 별로 담기지 않은 듯한 말로—이건 전적으로 나의 목소리와 억양 탓이다—거절해 왔지만, 아이의 아버지가 3주 전에 아이의 졸업식이 있다고, 부디 식사를 같이 했으면 좋겠다고 역시나 부탁하는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와 어쩔 수 없이 응대하고 말았다. 응대라고 할까, 정확히 말하자면 식사 초대에 의례적으로 답한 것이다. 다행히도 졸업식은 점심 즈음 끝을 맺었다. 아이의 유치원에 가까운 어느 고급스러운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우리는 어색하게 대면했다.

“안녕하세요.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당신이 제 아이를 구해준 일에 대해 언제나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오늘만큼은 아무런 부담 갖지 말고 마음껏 즐겨주세요.”

아이의 아버지는 옆에서 부인의 말을 거들 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아이는 내 옆에 앉아 생명의 은인이 바로 옆에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 채로, 스푼과 나이프와 포크를 가지고 놀이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런 모습이 재밌다고 생각하며, 나 역시 의례적으로 답했다.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 순간에 하필이면 제가 있었고, 아이가 있었던 거죠.”

적당히 넘어가도 좋을 타이밍이었지만 기세 좋게 내 자랑을 에둘러 해 버리고 말았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니, 나는 잠시 나 자신이 영화에 등장하는 선한 주인공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현실에서, 나는 초라한 편집자이자 번역가에 불과했다. 옆을 돌아보니 녀석은 여전히 식사 도구를 가지고 뭐가 그리 즐거운지 즐겁게 놀고 있다. 그러다 갑자기, 아이의 아버지가 내 손을 잡더니 이렇게 말한다.

“정말...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 순간에 만약 당신이 없었더라면... 저희가 어떻게 은혜에 감사를 표하면 좋을지. 혹시 따로 원하시는 것 있으십니까?”

마지막 문장은 인사치례로 나온 듯했으므로, 나도 거기에는 생각나는 대로 적당히 답했다. 그러자 그는 약간 안심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혹시 내가 벤츠라도 한 대 뽑아달라고 했으면, 그의 표정이 갑자기 바뀌었을까? 따위의 짓궂은 생각을 하며.

“아저씨, 아저씨는 다리 안 아팠어? 무지 아팠을 것 같던데.”

하하, 요 녀석. 어느새 어른의 대화에 비집고 들어와 있다. 아이의 천진난만한 얼굴에 농담을 거는 것도 그다지 내키지 않아서, 나는 입가에 최대한 상냥한 미소를 짓고,

“많이 아팠지. 그런데 ‘죽을 정도로’ 아프지는 않았어.”

하고 답해주었다. 그리고 뭐라 말할 것 없는 호화로운 코스요리가 이어졌다. 이 정도 수준의 레스토랑에 나를 초대하는 걸 보니, 부부는—맞벌이를 하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수입이 꽤나 괜찮은 모양이었다. 하기야 나 같은 편집자나 일에 비해 민망할 정도의 박봉에 허덕이지, 다른 ‘건실한’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은 여유롭게 물건을 사거나, 레스토랑에 가거나, 아니면 아이를 고급 유치원에 보낼 것이다. 여하간 병원을 나온 이래로 이렇게 잘 먹은 적은 처음이었기에, 가족과 헤어질 때 고맙다는 인사를 빼먹지 않았다. (나는 가끔 이러한 대접에 고맙다는 말을 빼 먹는 적이 있었다. 실제로 별로 고맙지 않아서 그러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단순히 말하는 걸 잊어버려서 말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은 “천만에요. 오히려 이쪽에서 고마워야죠.” 하고 응수해 왔다. 아이는 지하철에 오르기 위해 떠나는 나를 향해 작은 손을 옆으로 흔들어 주었다. 그래, 이 정도면 됐지 뭘. 왜일까, 아무렇지도 않게 웃음이 슬며시 피어오르는 것을 느끼며, 나는 활기찬 발걸음으로 역으로 향했다.


그 뒤로 다른 특별한, 기억에 남을 만한 일이 있었냐고 하면... 글쎄, 지금 내 글을 읽고 있는 독자가 기대할 정도로 특별한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내 능력 이상의 일감을 받고 커피와 홍차와 함께 새벽을 허덕이고 있으며, 누구나 사정은 마찬가지다. 아, 한 가지 덧붙일 것이 있다면 이제 더 이상 ‘목소리’가 들려오는 일은 없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계속 뇌를 간지럽히듯 들려오던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는다는 사실에 기뻐했지만, 한 달 정도 지나자 신기하게도 목소리를 추억하게 되었다.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듯한 목소리가 품고 있던 신비함이나 경이로움 때문일까, 아니면 끊임없이 주위를 환기시키던 꾸준함 때문일까.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나는 목소리를 그리워하게 되었고, 그날 밤 보았던 환영과 결부시켜 이것저것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보기도 했다. 그러나 더 이상의 ‘체험’은 무리였다. ‘목소리’는 더 이상 비루한 나를 부르지 않고, 환영도 두 번 다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잠깐 비일상을 체험한 나는 다시 평범하기 그지없는 ‘일상’에 내던져지고 만 것이다. 기뻐하고 슬퍼할 것도 없다. 그저 되돌아온 ‘일상’을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다. 아스라이 느껴지는 목소리의 잔영을 가만히 덮으며, 나는 과거의 기억과 나에게 다가왔던 아이에 대해 회상한다. 지금쯤 아이는 초등학교에 들어갔겠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올라가고 대학에 입학해도 나라는 존재가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할까. 글쎄, 잘 모르겠다.


아이는 아이의 길을 걷는다. 나는 나의 길을 걷는다. 중간에 한번, 우연히도 두 길 사이에 엇갈리는 때가 있었다. 한 길은 다른 길을 극적으로 보충했다. 그것으로 된 것이다. 어느새 식어버린 커피를 홀짝이며, 새벽 하늘에 남은 그믐달을 바라보며 나는 만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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