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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mpreintes du beau rêve

인상 #5 본문

novel

인상 #5

barde 2014. 4. 4. 07:22


  '말'이 하늘을 나는 힘을 잃고 낙하하는 속도는 매우 빠르다, 정신을 잃어버릴 정도로.

  떨어지는 말에 잘못 맞으면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보통 말에 맞는 일은 없지만. '말'을 다시 하늘로 되돌리는 방법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중력은 여전히 강하다.

  남에게 사과하는 사람은 자신의 잘못이 없기를 속으로 바란다는데, 그래서 내가 '사과'하지 않은 건지도 모른다. 대신 나는 '포기'했다.

  내가 언제나 발견하는 것은 '차이'와 '어쩔 수 없음'과 '낯선 얼굴'과 '아, 그래'와 제대로 살아가는 건강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내가 낄 자리가 없다.

  제대로 살아가는, 때때로 자신의 상궤를 벗어나지 않은 삶에 대해 고민하는 건강한 사람들.

  나는 건강한 사람들을 가만히 지켜보는 일이 좋다. 그들은 이미 '잃어버렸기' 때문에, 말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신경쓰지 않는다. 아니, 알 수 없게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언어를 자유자재로 사용한다, 마술사가 모자에서 토끼를 꺼내는 것처럼.

  그리고 두 마술사가 서로 묘기를 펼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런 생각이 불쑥 든다.

  '멋지네.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알다시피 말은 현재도 자신을 지탱하는 힘을 잃은 채 떨어지고 있고, '말'을 잡아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신 나는 바닥에 떨어진 '말'을 주워서, 그것들을 한데 모아 퍼즐을 만드는 일에 집중한다. 아스팔트 위에 떨어진 말은 썩지 않는다. 땅에 떨어진 말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조금씩 땅으로 녹아들어 간다. 지붕에 떨어진 말은 처참하게 일그러진다. 햇빛을 너무 심하게 받아서 그렇게 되는 것이다. 물에 떨어진 말은 점점 자신의 형체를 잃어간다.

  나는 이런저런 말들을 주워서 "한 작은 소년이 초록색 머플러를 하고 나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다"는 문장을 만들었다. 여기까지만 해도 굉장히 어려웠다. 그리고 잠시 휴식. 문장으로 만든 말들을 고정시키기 위해선, 다른 문장들을 같이 배열해야 한다. 이를테면 이렇다.

  "하늘이 푸르고 햇살이 쨍쨍한 날이었다. 한 작은 소년이 초록색 머플러를 하고 나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다. 소년의 곁으로 까마귀가 낮게 날고 있었다. 까마귀는 입에 갓 구운 게 분명한 빵을 물고 있었다. 새는 서쪽으로 날아갔다. 소년은 나무 사다리를 타고 집의 꼭대기로 올라간다. 지붕의 끝에서는 풍향계가, 졸음에 겨운 듯 느릿하게 회전하고 있었다."

  이 정도로 해 두면 일단 안심이다. '올라간다'가 과거형이 아닌 것은 아직 시간이 덜 지났기 때문이다. 하루에서 이틀 정도만 기다리면, '올라간다'는 '올라갔다'가 된다. 서술어가 한번 과거형이 되면, 다시 현재로 돌아오는 일은 없다. 그래서 현재형은 활자로 박제된 '책'에서밖에 볼 수 없다.

  한번 만들어진 '말'은 썩지 않는다. 말은 영원히 세상에 남는다. 말을 없애버리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말은 갑자기 나타나지도 않는다.


  나는 언젠가, 말에 대해 대단한 불신을 품은 적이 있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참고하라.) 그래서 아예 '말'이란 것을 꺼내지 않았다. 나는 말을 속에 품고, 이제나저제나 '봄'이 오기를, 봄이 와서 나의 볼에 온기를 나누어 주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1년 정도가 지나서 봄이 왔다. 하지만, 봄이 되었을 때 나와 함께 벚꽃을 보러 갈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말'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광경을 직접 목격했다. 아, 그 때의 충격이란. 놀라웠다. 말들이 눈이라도 되는 것처럼, 하나하나 하늘에서 떨어져 내렸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말들은 아름다웠다. 하지만 나 말고 그것을 본 사람은, 적어도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는 없었다. 나는 다시 말에 대해 깊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이윽고, '아이들'이 말들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아이들의 세계로 향했다. 하지만, 여기서부터는 '어른들'에게 말해줄 수 없는 비밀의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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