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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mpreintes du beau rêve

다카하시 겐이치로高橋源一郎 본문

etc.

다카하시 겐이치로高橋源一郎

barde 2014. 3. 12. 12:11

일본어 위키백과 링크


다카하시 겐이치로(たかはし げんいちろう、1951년 1월 1일 - )는, 일본의 소설가, 문학자, 문예평론가. 메이지학원대학 교수. 히로시마현 오노미치시 출신. 일본테레비 방송프로그램 심의회위원.


고금동서의 명작으로부터 만화・TV에 이르는 매스컬쳐를 인용해, 패러디나 파스티슈pastiche를 구사하는 시니컬한 수법과 그에 상반하는 서정적인 작풍으로, 일본을 대표하는 아방・팝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주목되고 있다. 경마평론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네 번의 이혼력과 다섯 번의 결혼력을 가지고 있다. 첫 번째 처와의 사이에서 얻은 장녀는 자유기고가인 하시모토 마리. 두 번째 처와의 사이에도 장남이 있다. 세 번째 처인 타니가와 나오코, 네 번째 처인 무로이 유즈키는 둘 다 소설가(타니가와는 결혼 당시는 잡지편집자로, 이혼 후에 소설가로 데뷔). 또한, 무로이와의 사이에는 남자아이도 있다. 다섯 번째 처와의 사이에는 남아 2명. 아이들의 합계는 5명에 이른다.


히로시마현 오노미치시에 있던 모친의 집에서 태어남. 1살까지 오사카의 데즈카야마에 있던 부친의 집에서 주로 조모의 손에서 자랐다. 친정은 오노미치역 가까이에서 자전거집을 하고 있었으며, 신도 카네토(영화감독, 각본가)가 점원으로 일한 적도 있다고 한다. 오노미치 시립 츠치도 소학교 재학 중에 자전거집이 폐업한 관계로 가족이 도쿄로 옮겨가고, 세타가야 구립 후나바시 소학교를 나와서 아자부 중학교에 입학. 1964년, 나다고등학교에 전학. 이 때 아유카와 노부오, 타니가와 간, 스즈키 시로야스 등의 현대시를 읽고, 감명받는다. 또한 나다중학교의 동급생 타케노부 에츠오로부터 문학적 영향을 많이 받았다. 고교시대부터 무당파의 데모에 참가. 1969년, 도쿄대학에 수험할 예정이었지만, 도쿄대 입시 중지에 따라 교토대학을 수험하지만 실패하고, 후기교[각주:1]였던 요코하마 국립대학 경제학부에 입학한다. 하지만 대학분쟁 중의 파업으로 대부분 수업이 이뤄지지 않고, 활동가로서 가두데모 등에 참가하는 나날을 보낸다. 동년 11월, 학생운동에 가담해 흉기준비집합죄로 체포, 기소되어, 도쿄구치소에서 반년을 보낸다. 그 때의 체험이 원인이 되어 실어증을 겪게 되고, 쓰는 일이나 읽는 일이 생각대로 되지 않게 된다. 요코하마 국립대학에서는 제적되었다.


1972년, 토목작업의 아르바이트를 시작해, 철공소나 화학공장, 토건회사 등을 10년 정도 전전했다. 이 때 경마에 흥미를 가지게 된다. 1979년부터 실어증의 치료를 겸해서 소설을 쓰기 시작하고, 1980년에 『멋진 일본의 전쟁』을 군조 신인문학상에 응모, 최종선고까지 올라가지만, 세토우치 쟈쿠쵸를 제외한 모든 선고위원으로부터 혹평당해 낙선한다. 이 때 겐이치로를 담당했던 편집자의 권유로 장편소설의 집필을 시작하고, 1981년에 『사요나라, 갱들이여』로 군조 신인장편소설상에 응모, 우수작으로 평가되어 등단하게 된다. 이 『사요나라, 갱들이여』는 하스미 시게히코, 요시모토 타카아키 등으로부터 절찬을 받았다. 1982년, 같은 작품으로 데뷔.


1984년에 『무지개 저편에』를, 1985년에 『멋진 일본의 전쟁』에 수정을 가한 『존 레논 대 화성인』을 발표. 『사요나라, 갱들이여』와 함께 3부작으로 한다. 1987년, 제이 매키너니의 『브라이트 라이츠, 빅 시티』를 번역, 베스트셀러가 된다. 1988년,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로 제1회 미시마 유키오 상을 수상. 타카하시, 코바야시 쿄지, 사에키 카즈미, 시마다 마사히코, 마츠우라 리에코, 야마다 에이미, 요시모토 바나나, 이구치 토키오, 나카자와 신이치, 아사부키 료지, 이와모리 미치코, 타카세 치즈라는 후보 총 12명, 소설, 평론, 시가의 세 방면에 이르는 대혼전에 이른 와중, 선고위원이었던 오에 겐자부로와 에토 준의 2표를 얻어 수상했다. 이 때 받은 상금 100만 엔은 전부 일본 더비에 쏟아넣었으며, 한꺼번에 날려버렸다.


1990년 『혹성 P-13의 비밀』 이후는 1997년 『고스트 버스터즈』까지 소설을 발표하지 않고, 에세이, 시평 등을 중심으로 집필했다. 1991년, 걸프전쟁에의 자위대 파견에 항의해, 가라타니 고진, 나카가미 겐지, 츠시마 유우코, 다나카 야스오와 함께 성명을 발표했다.


1997년부터 『군조』에 『일본문학성쇠사』의 연재를 시작해, 2001년에 간행. 근대문학이 성립해 나간 과정에서 메이지 시대의 문학자들의 고뇌를, 전화방이나 어덜트 비디오를 비롯한 현대풍속의 가운데 재현해, 다음 해 이토세이 문학상을 수상했다. 이 작품은 찬반이 거세어, 츠시마 유우코의 강한 추천에 힘입어 수상하게 되었다. 『일본문학성쇠사』 이후에는 『관능소설가』 『기미가요는 영원무궁하게』 『미야자와 겐지 greatest hits』 등, 이전과 비교했을 때 소설의 발표가 늘어났다. 2005년, 메이지학원대학 국제학부 교수에 취임.


2012년, 『사요나라 크리스토퍼 로빈』이 타니자키 준이치로상을 수상. 현재는 노마문예상, 스바루 문학상, 나카하라 츄야상, 문예상, 하기와라 사쿠타로상 선고위원.


고바야시 타키지의 『게공선』이 2008년에 다시금 각광을 받은 것은, 같은 해 1월 9일에 마이니치신문 도쿄본사판의 조간 문화면에 게재되었던, 다카하시와 아마미야 카린[각주:2]의 대담이 계기가 되었다고 말해진다.


또한, 선조는 요네자와 번(야마가타 현)의 가신이었다고 한다.


경마를 매우 좋아해서, 1988년에 산케이 스포츠 도쿄본사판의 경마면에 예상 칼럼 「이렇게 빗맞으면 문제인 걸까」를 연재개시. 2010년 현재도 연재를 이어가고 있으며, 실로 20년 이상에 달하는 장기연재가 되었으며, 연재분이 과거에 출판된 적도 있다.


1990년대부터 TV의 경마 관련 방송에도 진출. 『스포츠 우르그스』 (일본TV) 에서는, 사회를 맡은 에가와 스구루와 예상 대결을 펼치기도 하면서, 『드림 경마 KOKURA』 (TV 서일본 제작분) 에서는 게스트로 종종 출연. 맹우였던 사토 세이이치 아나운서가 정년이라는 이유도 있어서 방송에서 멀어진 이후는, 해설자적인 사회로 해서 매회 출연하게 되었다. 이 둘의 방송으로 인해, 다카하시는 「경마를 좋아하는 작가」로 단번에 유명해지게 되었다.


또한, 레귤러로 출연한 『드림 경마』에 대해선, 2007년 2월 11일의 방송을 최후로 후지시로 마키코와 함께 강판했지만, 그 후로 반년이 지난 8월 12일의 방송은, 같은 해 유일하게 BS후지에 있어서 전국으로 방송되는 일도 있어, 이 날 한정으로 부활해서 출연하게 되었다(강판할 때는 TNC로컬 방송이었으므로, TNC 이외의 시청자에게는 강판 인사가 없었다).

  1. 역자주: 학력고사 이전의 전기, 후기를 생각하면 된다. [본문으로]
  2. 역자주: 작가, 사회운동가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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