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mpreintes du beau rêve
늑대아이: '호소다의 아이들'에 그림자가 없는 이유 본문
지난 7월 21일 개봉해 일본에서 큰 흥행을 거둬들인 <늑대아이 아메와 유키(한국판 제목 “늑대아이”)>는 건담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토미노 요시유키의 호평까지 들으며 바야흐로 ‘포스트 미야자키’를 이끌어 나가는 거두가 되었다. 우리에게 <시간을 달리는 소녀> 1나 <썸머워즈>로 익숙한 호소다 마모루 감독은 디지몬 어드벤처 극장판(이것도 아마 디지몬 팬들이라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때부터 독특한 연출을 선보이며 데뷔해 <시달소>로 대박을 터뜨리기 전까지 <우리들의 워 게임>이나 원피스 극장판 등에 감독으로 참여했다. 이렇듯 다양한 색을 가진 작품을 전두지휘한 호소다 감독을 한 마디로 평가내리긴 쉽지 않은데, 그래도 한 가지 공통된 점이 있다면 코어층을 겨냥한 영화조차도 어느 정도 흥행에 성공하였다는 것이다. 이는 감독의 역량이 뒷받침되지 않고선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어떤 점이 호소다를 ‘잘 팔리는 감독’으로 자리매김하게 만들었을까? 그가 매 영화마다 사용하는 그만의 독특한 연출이나 소품들은 차치하고서라도, 우리는 <시달소> 때부터 호소다의 영화에 참여해 온 캐릭터 디자이너 사다모토 유시유키(그는 에반게리온의 디자인에도 참가했다)와 각본가 오쿠데라 사토코를 확인할 수 있다. 좋다, 이는—제작진간의 팀워크가 애니메이션에서 특히 중요한 요소긴 하지만—감독 외적인 요소니 넘어가 보기로 한다. 그렇다면 호소다 감독만의 독특한 역량은 무엇일까? 여기서 우리는 잠시 다른 얘기를 해 보도록 하자.
9월 13일 국내개봉 바로 직전에 공개된 감독 인터뷰를 확인해 보면, 질문에 걸맞는 흥미로운 답변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를테면 “애니메이션 영화나 일본 영화 전체의 가능성이나 즐거움을 넓혀 가고 싶은 욕심도 오리지널 스토리를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없었던 이야기를 할 때는, 도전이 필요한 기획이 된다.” 같은 말들이다. 확실히 ‘애니메이션 감독’이 ‘일본 영화 전체의 가능성’을 말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긴 하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런 게 아니다. 좀 더 밑으로 내려가 보자. 뒤에서 두 번째 질문, “많은 애니메이션들이 (…) ”에 대한 호소다의 답변을 전체 인용해 본다.
“실사 영화나 사진 등을 보면 사람의 얼굴을 색을 일부러 구분해서 칠할 만큼, 그림자가 져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애니메이션에서의 색을 구분해서 칠하는 경우는, 어느 정도 ‘기호적인 표현’(굳어져 버린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림자가 없는 편이, 표정이나 연기가 좀 더 섬세하게 표현이 된다고 본다. 실제로 그림자를 표현하지 않고 작화하는 것이 애니메이터에게 있어서는 더 어렵고, 좀 더 많은 도전이 필요한 작업이다.”
애니메이션(영화)을 사랑한다면, 그리고 특히 호소다의 팬이라면 이 답변을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된다. 처음에 호소다는 실사 영화나 사진에서 사람의 얼굴이 그렇게 그림자가 져 있지 않다고 운을 뗀다. 이는 피사체에 빛이 어떤 방향으로 얼마나 쐬어지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지만, 일단 충분한 광량이 피사체에 정면으로 쏘아진다는 조건 하에 맞는 말이기도 하다. 그리고 다음 문장이 특히나 중요한데, 우리는 ‘기호적인 표현’에 주목해 볼 수 있다. 즉 다른 감독들이 이에 대해 고민해 보지 않고 하던 대로 그림자를 입혀 왔다고 말하는 것이다. 또한 그는 “그림자가 없는 편이 표정이나 연기가 좀 더 섬세하게 표현된다”고 말하며 그라데이션으로 표현된 캐릭터들의 판에 박힌 모습에서 벗어나 캐릭터에 감정과 역동성을 부여하기 위해 일부러 그림자를 입히지 않았다고 말한다.
요컨대 호소다는 “왜 굳이 색을 구분해서 칠해야 하나?”는 근본적인 물음에서부터 시작해 자신의 영역을 개척해 나간 감독이다. 색을 구분해 칠하면 캐릭터가 좀 더 ‘실제같아’ 보이는, 말하자면 입체적인 캐릭터가 된다는 이점이 있다. 하지만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굳이 ‘실제’에 근접할 필요가 있나? 거기다 실사 영화에서도 배우들의 모습은 그다지 그림자가 져 있지 않다! 그래서 호소다는 과감히 캐릭터에 그림자를 없앤 것이다. 이는 관객들의 눈이 (그림자가 져 있지 않아 돋보이는) 캐릭터에 집중하게 만들 수 있으며, 조연들이 배경에 그대로 섞여 버리는 것도 방지해 줄 수 있다. 왜냐면 캐릭터는 뒤의 ‘기호적인’ 배경과 분리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캐릭터의 ‘역동성’을 마땅히 받아야 하는 이에게 부여할 수 있다.
그는 “ (…) 애니메이터에게 있어서는 더 어렵고, 좀 더 많은 도전이 필요한 작업”이라고 말을 마친다. 이제까지의 ‘관습’에 익숙한 애니메이터에게는 당연히 생소하고 어려운 작업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보수적인 것으로 유명한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도전’이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불길한 상상이지만, 만약 호소다가 잘 팔리지 않았다면 우리는 위와 같은 영화들을 극장에서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호소다는 자신의 아이들에게 실제로 ‘인간적인 것’을 부여하는 데 성공했다. 바로 그것이 호소다 감독 고유의 역량이 아닐까.
최신작 <늑대아이>는 한 가정의 가슴 아프면서도 온기 가득한 한 편의 드라마다. 그가 “육아에의 동경”에 따라 만들었다고 하는 영화인 만큼 가정을 일궈본 경험이 있는 ‘여성’이 보면 몇 배로 감동과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흔치 않은 성인을 겨냥한—물론 아이들과 함께 볼 수도 있다—애니메이션인 만큼, 또 애니메이션이 ‘아동용’이라 인식되는 국내인 만큼 언제 셔터가 내려갈지 모른다. 평소에 애니메이션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또 가족 드라마를 좋아한다면, 꼭 보라. 엔딩 크레딧이 내려갈 때까지 눈을 떼지 못할 것이다. 감수성이 풍부한 이라면 펑펑 울지도 모른다.
- 이하 <시달소>로 표기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