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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mpreintes du beau rêve

어둔 밤에 본문

etc.

어둔 밤에

barde 2013. 2. 28. 19:16


그건 모두 거짓말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내 힘으로 자립할 수 있다는 말도, 또 그 정도는 충분히 마련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한 것도 새까만 거짓말이라고밖에 할 수 없었다. 소중하게 여기는 두 친구 중 하나와 만나고 밤늦게 헤어진 뒤에, 나는 외따로 떨어진 캄캄한 공간을 걸어 지하철을 타고, 이어서 버스를 탔다. 하고자 했으나 하지 못한 말을 마음속에 품은 채 나는 최대한 비틀거리지 않으려 노력하며 버스에서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시선은 자동차와 낮은 건물들로 가득한 밖이었는데, 그 밑으로 뭔가 하얀 지렁이 같은 선이 지나갔다. 자세히 살펴보니 구불구불하게 그어진 차선이었다. 문득 나는 저 차선이 철사처럼 구불구불해진 이유는 버스와 승용차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덜컹거리며 지나가거나 멈춰섰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원형 교차로 안쪽의 선은 둥그런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어둠에 덮인 내 눈엔 오직 구부러진 2차선밖에 들어오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며, 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어둠이 더욱 짙어진 느낌을 받았다. 인도에는 낙엽이 뒹굴고 빗물이 옴폭 들어간 곳마다 자리를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눈을 감싸고 있던 것은 어둠, 새까맣고 어깨를 짓누르는 어둠이었다. 점점이 허공을 점유하고 있던 가로등은 살짝 어둠에 비켜 서 있었다. 기다리는 신호등이 참을 수 없이 길게 느껴졌다. 나는 털썩 낙엽 위에 드러누워 칠흑같은 밤을, 무겁게 나를 짓누르는 어둠을 움켜쥐었다. 손과 입 사이로부터 거친 숨이 배어나왔다. 똑같이 생긴 컨테이너 트럭 둘이 영원의 시간을 달리는 것처럼 멀어져갔다. 그와 동시에 저 멀리서 푸른 종이 인형이 깜빡이는 잔상이 보였다. 영원회귀같은 거창한 말을 쓰지 않더라도 바로 이 순간만큼은 내게 있어 영원 그 자체였다. 비 개인 밤은 슬플 정도로 암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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