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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mpreintes du beau rêve

인간불신이라는 포지션 본문

etc.

인간불신이라는 포지션

barde 2014. 11. 6. 13:23



인간이 다른 인간을 불신하게 되는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그런 이유들을 가지고 '인간불신'이라는 포지션을 가지고, 그것을--이를테면 죽을 때까지--유지하는 경우는 보기 드물다. 문득 생각해 보면 이것이 당연하거나 자명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왜 그들은, 그러니까 인간을 불신할 만한 충분한 동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인간을 불신하지 않을까? 인간이 단순히 사회적 동물이라 그런 걸까? 만약 스티븐 핑커의 말대로 인간 본성이 '선한 천사'를 가지고 있다면, 사람들은 점차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보다는 협동하고 협조하는 이타적인 길을 택할 것이다. 그러나 가설을 뒷받침할 방대한 양의 역사적인 자료가 주어진다고 해서, 과연 인간이 '불신'이라는 포지션을 쉽게 포기할까? 바꿔 말하자면, '인간불신'이라는 포지션을 택하지 않는 사람들은, 왜 쉽게 그것을 택하지 않는 것일까.

예전에 나는 친화력(일반적인 의미에서)은 타고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은 생각이 약간 바뀌었지만, 그래도 본질적으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친화력은 양도, 전수, 교육 불가능하며, 가정 내 환경이 영향을 줄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가장 큰 변수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친화력은 타고나는 것이다. 하지만 '불신'에 대해서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면 알겠지만, 처음 사회에 내던져진 인간이 다른 인간을 불신하기란 꽤나 어렵다. 우선 그들은 서로를 탐색할 것이며, 그리고 서로의 능력과 자질과 품성 같은 것들을 나름의 기준을 세워 판단하고, 그리고 '마음이 맞는' 자들끼리 무리를 지어 놀이에 참여할 것이다. 여기에 인간에 대한 불신이 끼어들 여지는 없다. 즉 '놀이'라는 하나의 시작점, 스타팅 포인트가 없으면, 불신은 시작조차 할 수 없다.

그러나, 흔히 일어나는 일이기는 하지만, 놀이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불신은 자신이 자라날 토양을 가진다. 이를테면 네 명이 놀이를 하는 와중에 A가 놀이의 암묵적인 룰을 어겼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게 되면 B, C, D는 A에게 구두로 경고를 할 것이다. 그리고 다시 잘 놀다가, 이번에는 B가 놀이의 룰을 어기고 말았다. 이럴 때는 A, C, D가 B에게 구두로 경고를 하겠지만, 여기서는 A가 B에게 더 공격적으로(aggressive) 경고를 가할 확률이 높다. 이렇게 되면 A와 B 사이에는 서로에 대한 적대감과 불신이 자라난다. 즉 서로가 서로에 대해 공동체의 법에 반하는 약점을 가지고 있을 경우, 우선 취하게 되는 포지션은 불신이다. 한 번 법을 어긴 자는 나중에 다시금 법을 어길 수 있으며, 이것은 다른 법을 어긴 자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 가능하다. 여기서 불신은 '룰을 지키지 못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반면에, 상호적인 불신이 아닌 일방적인 불신도 있다. A가 여러 번 약속을 어긴 경우를 가정해 보자. 그렇게 되면 공동체는 A에 대해 깊은 수준의 불신을 갖게 될 것이다. 약속의 경중에 따라 불신의 강도도 달라지겠지만, A가 다시 약속을 지킨다고 해도, 불신이 쉽사리 사라지지는 않는다. 왜냐면 이미 그들은 경험적으로 A가 약속을 어기리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그것이 다시 '약속을 지킨다'는 믿음으로 바뀌기 위해서는, 이전보다 더 많은 수의 경험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한 번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는 데는, 처음에 물을 받았던 것보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여기서 불신은 '룰을 지키지 못할 것이라'는 믿음임과 동시에, 'A'라는 인간에 대한 하나의 평가 기준, 척도로도 작용한다. 즉 불신이란 단순히 '믿지 못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한 인간에 대한 깨지기 어려운 확고한 믿음이 된다.

그러나 이렇게만 본다면, 어떤 인간이 다른 인간을 불신하지 않는 이유를 생각하기는 어렵다. 즉 모든 사람이 비슷하게 행동한다고 가정했을 때는, 소수의 '룰을 어기는 자'가 나오기만 한다면, 다수는 쉽게 불신하는 포지션을 택하게 된다. 만약 누군가가 불신하지 않는 포지션을 취한다고 해도, 그래서 그의 믿음이 불신을 극복할 정도로 견고하다고 해도, 그가 보답받기는 매우 어렵다. 즉 '룰을 어긴 자'가 '감히 불신하지 않은 자'에게 개인적으로 보답을 한다고 해도, 그의 원래 믿음이었던 '룰을 어기는 자가 룰을 지킬 것이라는 믿음'은 보답받지 못한다. 그의 믿음은 매번 다른 방식으로 보답받는데, 그가 거기서 일종의 만족을 느낀다고 하더라도, '룰을 어긴 자'가 공동체와 불화하는 것을 저지하지는 못한다. 다수는 그에 대한 확고한 믿음(룰을 지키지 않을 것이라는)을 견지할 것이며, 이것은 하나의 합리성으로 기능한다.

정리하자면, 불신이라는 포지션을 가지기는 정말 쉽다. 모두가 같게, 일사분란하게 행동한다고 생각할 수는 없기 때문에, 공동체 안에서는 반드시 '룰을 어기는 자'가 나올 수밖에 없으며, 여기에 대해서 다수는 분노하고, '인간불신'이라는 포지션을 가진다. 그러나, 그 중에 소수는 감히 인간을 불신한다는 믿음을 택하지 않을 것이며, 이들의 믿음은 결코 보답받지 못한다. 그들은 '다른 식'으로 보답받는다.

하지만 모든 인간이 서로를 불신하기만 한다면, 지금의 사회가 망하지 않을 이유가 무엇인가? 비록 '불신하지 않은 자'의 믿음이 견고할지라도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불신'이라는 믿음은, 쉽게 다른 믿음으로 치환될 수도 있다. 이를테면, 역사가 증명하듯 전체주의와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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