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Tags
more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l'Empreintes du beau rêve

우산의 저주, 이어서 본문

etc.

우산의 저주, 이어서

barde 2014. 12. 13. 05:15




  친구의 부탁으로 지난번에 적은 글, 우산의 저주를 이어서 써 볼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금 시각은 오전 4시 46분이지만, 그것이 내가 글을 쓰는 데 크게 문제가 되거나, 혹은 글을 쓰다 잠들어버린다거나 하는 일을 발생시킬 만한 커다란 변수가 되지는 않는다. 여하간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했으니, 바로 뒤의 일부터 적어내려 볼까 한다.


  그래서 나는 할아버지에게서 받은 우산을 쓰고 숙소에 도착했다. 이 숙소는 게스트하우스인데, 아는 사람은 잘 알겠지만 게스트하우스라는 곳은 여러 사람이 묵었다 떠나는 곳이다. 그래서 이제까지 묵었던 사람들이 사용했던 우산들이 하나가득 꽂혀 있다. (다행히도, 칫솔이나 쓰던 티슈, 성냥 같은 물건은 남아 있지 않다.) 그래서 나도 거기에 내가 쓰던 우산을 하나 꽂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설마 다시 우산의 저주가 이어지리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저 나는, 이제야 말할 수 있는 일이지만 대학에 시험을 보러 가서 너무 피곤했고, 한숨 자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숨 푹 자고 나서 8시 반 경에 일어나, 저녁을 먹기 위해 다시 우산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삿포로의 9월, 그리고 밤은 비바람이었고, 나는 가까스로 오오도리에 도착해 삿포로 맥주공장으로 향하는 지하철을 탔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역에서 내린 뒤에 나는 나의 몸을 의지할 수 있는 우산 하나만을 부여잡고, 거리를 휘몰아치던 비바람을, 힘겹게 힘겹게 뚫고 맥주공장으로 향했다. 맥주공장에 도착하기 전에 다시금 우산을 '해 먹어버린' 나는 이미 탈진한 상태였고, 그래서 맥주공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나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가까스로, 메뉴 오더가 끝나기 전에 식당 안으로 들어간 나는, 메뉴를 고를 틈도 없이 맥주와 함께 음식을 하나 주문했고(음식은 치즈감자 그라탕이었다), 그리고 음식이 나오기만을 목이 빠져라 기다렸다. 음식과 맥주는 마치 넥타와 암보르시아같았다. 나는 신들린 거지처럼, 게걸스럽게 음식을 섭취하고 맥주를 목에 밀어넣었다. 너무나 행복했고, 그제야 나는 우산의 저주에서 벗어난 듯했다.


  다행스럽게도, 돌아갈 때는 비바람이 불지 않았다. 나는 이번에는 삿포로역으로 가는 버스를 탔고, 돈이 조금 들기는 했지만 여차저차 해서 숙소에 돌아올 수 있었다. 숙소에 돌아왔을 때가 대략 11시 정도였는데, 잘 기억은 안 나지만, 거실에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눴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 뒤에는 술을 너무나 좋아하는 사람들과--이 중에는 와인을 주구장창 마시던 할머니도 있었다. 할머니에 대한 얘기는 다음에 또 할 기회가 있을 거다--새벽 5시까지 위스키(조니워커 블랙)를 마셨다. 물론 그 다음 날 내가 거의 죽은 채로 일어났다는 것은, 그것도 오전 11시에, 말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나는 술을 진창 퍼 마신 것을 후회했고, 언제나 후회가 뒤에 따라온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삿포로에서의 황금같은 시간을 허비한 것을 후회했다. 그리고 오후 2시 정도에 오비히로에 가는 특급열차에 올랐고(음, 지금 생각해 보면 역시 미친 짓이었다. 내가 왜 그런 짓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나쁘지 않았다.), 오후... 그러니까 10시 좀 넘어서, 아니 11시 가까이 돼서였나, 숙소에 도착했다. 그리고 나는 멍청하게도 또 새벽 3시까지 술을 퍼 마셨다. 그래서 결국 다음 날에는 오후 1시가 넘어서야 나는 눈을 뜰 수 있었다. 주인장(아주머니였다)에게 욕을 퍼 먹은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리고 나는 삿포로역에서 엿같은 오후를 보내고, 5시 40분에 출발하는 우에노행 침대열차, 호쿠토세이에 올랐다.


  결국 나에게 버려진 우산은 나에 대한 복수를 충실히, 그리고 확실히 이행한 셈이었다. 나는 우산에게 된통 당해버렸고, 그야 당연한 일이지만, 돈 또한 까먹었다. (여권을 잃어버리지 않은 게 어디랴. 언제나 최악의 상황에 처하지 않음에 감사하길.) 그래서 내가 버스에 놓고 내린 우산이 그 후 어디로 갔는지, 또는 어떻게 됐는지는 잘 모른다. 내가 우산을 사랑했던 마음은 지금도 의심할 수 없지만, 역시 그 당시의 나는 뭔가 미쳤던 것 같다. 어떻게 우산을 두고 내릴 생각을 했을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알 수 없다. 자, 이야기의 교훈을 정리해 보겠다. 하나. 무슨 일이 있어도 우산을 버려두고 떠나진 마라. 둘. 우산을 '해 먹었다'고 해서, 다시 다른 우산을 해 먹을 생각은 버려두는 게 좋다. 우산에게 예의를 갖춰라. 셋. 뭐가 됐든 너는 엿을 먹게 되어 있다. 따라서 불운에 감사하고, 당신 곁을 지키고 있는 우산에게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라. 넷. 글을 쓸 때는 언제나 겸허한 마음을 가져라.


  지금 내가 지니고 있는 우산은, 손잡이가 하얗고 비닐 몸체를 가지고 있는, 날렵하고 가벼운 우산이다. 우산이 나를 향해 몸을 기울이고 내 이야기를 엿보는 것마냥 손잡이를 기울이는 것을, 나는 단순한 기분 탓으로 여긴다. 하, 불쌍한 녀석. 나는 이제 다시는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거야, 마치 샌디 쿠퍼가 하늘을 향해 외쳤던 것마냥. 이제 진짜 끝이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