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Tags
more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l'Empreintes du beau rêve

자살과 자유에 대해 본문

etc.

자살과 자유에 대해

barde 2014. 10. 14. 07:47




  "자살하면 편해진다"는 말은 이제 하나의 클리셰로 성립할 정도로 흔하디 흔한 말이 되었지만, 실제로 자살해면 편해지는 건지, 아니면 그것보다 더 괴로운 삶이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지는, 적어도 살아남은 자들 중에서는 알고 있는 사람이 없다. (일부 '귀신과 접촉했다'고 증언하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그러나 실제로 자살에 대해 생각해 본다면, 그 뒤에는 편하고 평화로운 삶이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다. 이것도 만들어진 이미지에 불과할지도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괴로운 삶을 보다 '생생한' 것으로 여기는 한편, 자살 뒤의 삶에 대해서는 생생함을 결여한 초월적인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즉, 사람들이 생각하는 '죽음 뒤의 삶'이란, 실은 현실적이지 않다면 무엇이라도 그 자리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잘 생각해 본다면, 자살이란 곧 "현실을 잘 견딜 수 있도록 도와주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역설적이게도, 사람들은 나중에 죽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하루하루를 살아 나간다. 즉 죽음이란 모든 것으로부터의 해방, 자유, 속박에서 벗어남을 의미하고, 반대로 현실이란 자신을 제약하는 모든 변수에 대해 예민한 인식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자유와는 명백히 대립하는 하나의 개념이 된다. 인간이 자유를 희구하는 동물이라는 것은 아직까지도 많은 설들이 대립하고 있지만, 만약 인간이 정말로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자유를 바라는 동물이라면, 자살을 선택하는 것도 이상한, '정상에서 벗어난' 결정은 아닐 것이다. 따라서 반대로 생각해 본다면, 사람들이 자살에 대해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생각은, 자유를 바라지 않는 인간의 일면일 수도 있다. 타인이 자유로워지는 것에 대해 명백한 반감을 품고 있는 사람들은, 자살에 대해서도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인간의 자유는 자살이라는 선택지로밖에 달성될 수 없는 것일까? 물론 그렇지는 않다. 앞의 글에서도 설명했듯, 현재의 자본주의 하에서는 돈으로 자유[각주:1]를 구매할 수 있으며, 따라서 충분한 양의 돈만 있으면 인간은 자유롭게 살 수 있다. 경제적 곤란으로 인한 자살이 많은 것도 같은 이유다. 즉 돈이 없어 자살을 택하는 사람들은, 그들에게 충분한 양의 돈이 꾸준하게 주어지기만 한다면, 자살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자살하는 이유는 돈 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이상, 그들에게 필요한 자유를 어떤 식으로 제공해 줄 수 있을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안락사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를테면 불치병으로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이나, 뇌사 상태에 빠져 식물인간으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 자살을 원한다고 한다면(하지만 후자의 경우 뇌사 상태에 빠지기 전에 언급을 하지 않았다면, 이는 윤리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 국가는 그들에게 안락사라는 선택지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그 외의 이유[각주:2]로 자살을 원하는 사람들에게도, 국가는 안락사라는 선택지를 제공해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들 모두가 안락사를 택하지는 않을 것이고, 만약 안락사를 제공해 주지 못한다면, 그들은 다른 방식으로 자살할 게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안락사'라는 선택지에 국가가 의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면 그것은 '진정한 자유'와는 무척이나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진정한 자유'를 정의내리는 일이 가능할까? 보편적인 용법의 자유에 대해서라면, 우리는--비록 그것이 일시적인 합의에 지나지 않을지라도--대강의 합의를 보았다. 하지만 '진정한 자유'에 대해서라면 전혀 그렇지 않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가장 핵심적인 이유 하나는, 각자가 생각하는 '자유'가 다르고, 이 자유를 실현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락사가 '진정한 자유'의 하나의 실현 방법이 될 확률은, 아주 낮다. 우리는 자살 후의 삶에 대해 아는 바가 없으며, 아는 바가 없다는 말은 곧, 그것을 '진정한 자유'와 합치시키기 위해서는 매우 비약적인 접근을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모두 '자신의 고유한 생각을 적절한 언어로 말할 수 있는' 교육을 받는다면, 그러한 비약적인 접근이 치명적인 약점을 품고 있으며, 자살이 '자유'를 향한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는 있겠지만, '진정한 자유'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합리적이고도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자살과 자유에 대해 말하기 위해 멀리 돌아온 것 같지만, 사람들이 자살에 대해 가져왔던 낭만적인 생각은 자유와는 거리가 너무나 멀다. 사실상 그들이 원해왔던 것은 현실로부터의 도피였고, 도피만으로 자유가 달성될 수 없음은 누구에게라도 명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경제적 곤란으로 자살을 택하는 사람들에게, 자살이란 그들이 자신의 존엄을 지키면서도 자유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사실을.

  1. 그러나 이 자유는, 판 파레이스가 사용하는 의미틀 내에서, '진정한 자유'는 결코 아니다. [본문으로]
  2. 세상에 대한 절망과 비참, 권위와 명예의 상실, 실연 등의 이유가 있을 수 있다. [본문으로]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