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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mpreintes du beau rêve

논논비요리: 시골은 정말로 무서운 곳이 아닐까? 본문

etc.

논논비요리: 시골은 정말로 무서운 곳이 아닐까?

barde 2014. 10. 11. 08:28




  최근, 어쩌다 보니 논논비요리[각주:1]를 보게 되었다. 만화는 꽤 잘 만든 일상물이었고, 딱히 흠 잡을 만한 곳도 없었지만, 한 가지 드는 생각이 있었다. 뭐냐고 하면 바로, "시골은 정말로 무서운 곳이 아닐까?" 라는 것. 알다시피 논논비요리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배경은 시골 중에서도 시골, 도쿄에서 '6시간'이나 걸리는 깡촌이다. 원작의 배경이 오카야마 현의 츠야마 시라고 한다면, 실제로 도쿄에서 도카이도 신칸센을 이용해 오카야마역까지 간 다음에, 거기서 츠야마선을 타고 츠야마역까지 간 다음, 거기서 키신선이나 인비선으로 갈아탄다고 한다면(갈아타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6시간이 걸리는 것도 납득할 만하다. 여하간, 각설하고 원래 질문으로 돌아와 본다면, 논논비요리에서 그려지는 시골은 너무나 평화롭고, 또한 풍요롭다. 사람들은 크게 경제적으로 곤란을 겪지 않고(다가시야 또한 막과자집만 운영해서 벌어먹는 게 아님을 작중에서 암시한다), 자전거로 2시간 걸리기는 하지만 편의점도 있으며[각주:2], 차를 이용하면 무려 '백화점'도 갈 수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도, 시골 아이들의 도쿄에서 온 아이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 또한, 논논비요리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모두들 자신의 자리에서 즐거운 시골 생활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작품에서 유일하게 '구멍'이 되는 것은, 이것을 '세계가 빠져나가는 구멍'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는데, 바로 코마리와 나츠미의 오빠이자 동시에, '존재감이 없는' 스구루이다. 스구루는 코마 안에서 늘 뒷자리로 밀려가는 공기가 된다. 가끔 존재감을 드러내는 때도 있지만[각주:3], 존재감을 드러내더라도 결국 다른 인물에게 그것을 나눠준다. (분유한다, 는 표현도 쓸 수 있다.) 스구루는 자신이 이 작품에서 주연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고, 그것을 최대한 이용하는 한에서, 자신이 그 자리에서 '현존한다'는 것을 드러내려 애쓴다. 현존은 본질에 앞선다고 사르트르가 말했듯, 그는 만화의 본질인 '만들어진 평화로운 공기'에 앞서, 자신이 존재하고 있음을, 현존하고 있음을 강렬하지 않지만 뚜렷한 몸짓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여기서 독자인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란 바로, 만화에서 그려지는 '시골'이란, 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골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논논비요리에서 그려지는 '시골'은, 실은 이전의 수많은 작품에서 반복되어 왔던 '시골'의 낙관적인 버젼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웃으며 방문객을 맞이한다. 거기에는 분교가 하나 있는데, 학생들의 수는 적고, 그리고 모두가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여기서 눈치챌 수 있겠지만, 실은 이러한 설정은 단번에 미스터리나 공포물로 전환할 수 있는 역량을 품고 있다.[각주:4] 오히려 그러한 호러적인 패러디가 나옴으로 해서, 우리는 논논비요리가, 그곳에서 그려지는 시골이 동전의 양면 중 하나에 불과함을 알아챌 수 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식에 비춰 봤을 때, 시골이란 다만 그 정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시골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그것이 영상물이 됐건, 아니면 만화나 소설이 됐건 간에--을 감상할 때 주의할 점이 하나 있다. 작품에서 그려지는 '시골'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시골에 대한 관념을 그대로 투사하고 있다. 우리가 거기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절대 '시골'이 품을 수 있었던 하나의 가능성, 있을 법한 하나의 상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안'에 있던--그러나 결코 현실을 분유할 수 없을--마치 아수라 백작같은 '시골'이다. 우리에게 시골은 없었다. 적어도 우리가 도시에서 '시골'을 향유하고 있는 한은.

  1. 애니가 아닌 원작 쪽 [본문으로]
  2. 다만 24시간이 아니라는 것은 조금 뼈야픈 일이다. [본문으로]
  3. 요리를 하거나, 오키나와 여행권을 뽑는다거나 하는 소소하지만 도움이 되는 일들 [본문으로]
  4. 따라서 논논비요리의 호러적인 패러디가 나온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전혀 없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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