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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mpreintes du beau rêve

12. 14. 본문

etc.

12. 14.

barde 2014. 12. 14. 00:48
  언젠가, 언젠가의 겨울밤에, 나는 내가 바로 앞에 총구를 마주하고 있다는 상상을 했고, 공포에 떨었던 적이 있다. 그러나 내가 만약 현실에서 그런 일을 당했을 경우, 나는 침착하게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내가 밤이 되면 이불 속에 들어가, 겁쟁이가 된다는 사실을 의미하는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분명히 나는 총구를 마주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것은 사람을 죽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본다면, 그것이 '총구'만을 두려워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내가 두려워했던 것은 '총구'가 아니었다. 내가 두려워했던 것은, 그러니까 길게 풀어서 설명해 보자면, 사람이 사람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잔인함, 천진난만함 그 자체였다. 이성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이는 간단하다. 사람을 죽이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자신의 손에 든 무엇이 총기든, 아니면 식칼이든 상관하지 않고, 그것을 사람을 죽이기 위한 목적=결과를 위해 사용할 각오가 되어 있다. 그러나 나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나는, 적어도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당위를 알고 있으며, 그것을 지킨다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도 알고 있다. 그러나 만약 사람을 죽이겠다는 각오를 한 사람 앞에서, 그러한 당위를 읊는다고 한다면, 그것이 얼마만큼의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지는 의문스럽다. 즉 나는 사람을 죽이겠다는 각오 앞에서 두려움에 떨었던 것이며, 인간의 인간을 향한 적의 앞에서, 내가 무력하다는 사실을 통감했기 때문에 두려움에 떨었던 것이다.

  인간은, 적어도 인간은 다른 인간을 죽이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왜냐면 인간이란 곧, 자신에게 주어진 이성을 사용할 수 있으며, 그것으로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당위를 이끌어낼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최대의 선을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인간임을 포기한다면 어떨까? 우리는 거기에 대한 해답을 이미 준비해 놓았다. 그것은 물음 없는 절멸이다. 내가 총구 앞에서 공포에 떨었던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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