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mpreintes du beau rêve
12. 14. 본문
언젠가, 언젠가의 겨울밤에, 나는 내가 바로 앞에 총구를 마주하고 있다는 상상을 했고, 공포에 떨었던 적이 있다. 그러나 내가 만약 현실에서 그런 일을 당했을 경우, 나는 침착하게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내가 밤이 되면 이불 속에 들어가, 겁쟁이가 된다는 사실을 의미하는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분명히 나는 총구를 마주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것은 사람을 죽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본다면, 그것이 '총구'만을 두려워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내가 두려워했던 것은 '총구'가 아니었다. 내가 두려워했던 것은, 그러니까 길게 풀어서 설명해 보자면, 사람이 사람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잔인함, 천진난만함 그 자체였다. 이성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이는 간단하다. 사람을 죽이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자신의 손에 든 무엇이 총기든, 아니면 식칼이든 상관하지 않고, 그것을 사람을 죽이기 위한 목적=결과를 위해 사용할 각오가 되어 있다. 그러나 나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나는, 적어도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당위를 알고 있으며, 그것을 지킨다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도 알고 있다. 그러나 만약 사람을 죽이겠다는 각오를 한 사람 앞에서, 그러한 당위를 읊는다고 한다면, 그것이 얼마만큼의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지는 의문스럽다. 즉 나는 사람을 죽이겠다는 각오 앞에서 두려움에 떨었던 것이며, 인간의 인간을 향한 적의 앞에서, 내가 무력하다는 사실을 통감했기 때문에 두려움에 떨었던 것이다.
인간은, 적어도 인간은 다른 인간을 죽이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왜냐면 인간이란 곧, 자신에게 주어진 이성을 사용할 수 있으며, 그것으로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당위를 이끌어낼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최대의 선을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인간임을 포기한다면 어떨까? 우리는 거기에 대한 해답을 이미 준비해 놓았다. 그것은 물음 없는 절멸이다. 내가 총구 앞에서 공포에 떨었던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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