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mpreintes du beau rêve
귤 본문
오늘 지하식당에서 밥을 먹다 있었던 일이다. 밥이라고 해도 흰 쌀밥에 반찬과 국을 더한 것으로, 네 칸으로 나눠진 낮게 파인 홈에 콩자반이나 어묵볶음 같은 반찬을 담아 거기에 미지근한 국을 더한 상차림이다. 여하간 수수한 차림이라고 해도 개의치 않고 맛있게 먹고 있는데, 손님들의 편의를 위해 허공에 걸어둔 TV에서 아프리카 난민 후원 광고가 나왔다. 이것만이라면 흔하디 흔한 후원광고 중 하나에 지나지 않겠으나, 거기에 등장한 인물의 발언이 퍽 인상깊었다. 빨래를 하던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보건소에 가서 피검사를 받으니 에이즈라고 했어요...” 에이즈, 에이즈라는 말에 나의 심장은 얼어붙는 듯했다. 본인은 주변의 누군가가 에이즈에 걸렸다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거니와, 직접 환자를 마주한 일도 없기에 에이즈라는 병이 얼마나 끔찍한 병인지 활자화된 글을 통해서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을 들은 순간 에이즈라는 불치병의 무게감이 그대로 전해져 오는 느낌이었다. 에이즈... 내가 만약 에이즈에 걸린다면 어떨까. 분명 약을 계속 먹고 병원에 다니는 생활을 평생 지속할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끔찍한데 면역력이 약화된다니! 그 정도로 에이즈란 병은 두렵고, 고통스러운 것이다.
마음 한 켠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끼면서도 나는 꿋꿋이 밥을 다 먹었다. 식당에서는 후식으로 작디작은 귤-아기 주먹만한-을 준비했는데, 가져올 땐 몰랐지만 옆을 보니 점같이 곰팡이가 슬어 있었다. 순간 에이즈에 걸린 인간의 몸에 피어나는 반점 생각이 나서 오싹했다. 에이즈에 걸리면 10년 이상 긴 잠복기를 거친 뒤에 면역력이 점차 약해지는데, 그 신호로 몸에 반점이 돋아난다고 한다. 사람의 몸이 스러져 간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처럼 반점이 하나둘 돋아나는 것을 상상하면 눈 앞이 캄캄해질 정도다. 그러나 나는 귤을 이미 식판에 담았다. 따라서 귤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껍질을 까 보니 다행히 과육 하나에만 곰팡이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리저리 살펴보니 다른 과육에는 아직 곰팡이가 퍼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곰팡이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손톱만한 과육을 조심스레 분리해 낸 뒤에, 두 입만에 귤을 해치워버렸다. 만약 다른 사람이 같은 귤을 발견했다면 어떻게 했을까. 에이즈가 아니더라도 귤을 먹지 않고 버렸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아깝다고 생각해 나와 같은 방식으로 분리해서 먹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다른 사람이 아닌 이상, 알 수 없는 일이다. 식당을 나오며 나는 이것을 글로 쓰자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