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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mpreintes du beau rêve

七夕を迎え 본문

novel

七夕を迎え

barde 2014. 9. 1. 03:28




나는 교실에 혼자 앉아 있었다. 창문은 한쪽이 열린 채로 커튼이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었으며, 끝자락이 손을 뻗으면 닿을 위치까지 넘실대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손을 뻗거나, 아니면 창문을 다시 닫지는 않았다. 우선 그럴 이유가 없었고, 부드러운 늦봄의 바람을 맞으며 가만히 앉아 있는 일이, 꽤 기분 좋았기 때문이다. 나는 한쪽 팔로 턱을 괴고 앉아서 앞으로 해야 될 일들과, 봐야 할 만화책들, 그리고 어제 내가 앉았던 자리에 앉아 있었던 그녀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우연히 그 장면을 목격했는데, 깜빡하고 잊고 간 만화책이 한 권 있어, 그걸 가지고 돌아가기 위해 다시 교실로 돌아온 참이었다. 그리고 오늘과 같이 잠깐동안 자리에 앉아, 창문을 열어두고 멀어져 가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바람을 즐길 생각도 있었다. 그래서 아무런 주의 없이 문을 드르륵 하고 열었는데, 그녀가 내 자리에 앉아서 나와 똑같이 창문을 한쪽만 열고, 마찬가지로 가까이 살랑거리는 커튼을 아랑곳하지 않고 바람을 즐기고 있었다. 나는 잠시 아연해졌다.

‘예상대로 후지카와였어. 한번 가까이 다가가 볼까. 아냐, 그냥 여기서 말을 걸자.’

그리고 나는 비교적 쾌활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내 스스로 목소리가 너무 높지는 않은지 확인하면서.

“후지카와, 내 자리에서 뭐 하는 거야?”

그녀는, 후지카와는, 내 말에 고개를 스르르 옆으로 돌렸다. 순간 귀신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엄습했지만, 물론 그렇지는 않았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정리한 뒤에,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아. 메론 군이 하던 대로 한번 해 보고 싶었거든. 그래서 이렇게 앉아 있었던 거야.”

여기서 말하는 ‘메론’은 내 이름을 말한다. 왜 내 이름이 ‘메론’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어린아이에게는 너무 심한 이름이 아닌가—여하간 나는 앞으로도 ‘메론’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여간, 나는 한 손에 란도셀을 들고 후지카와가 있는 자리로 갔다. 내 자리는 창문 바로 옆에 있었기 때문에, 교실의 한쪽에서 다른 한쪽으로 가는 데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그 사이에 후지카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양해를 구하고 책상 위에 란도셀을 올려둔 뒤에, 책상 서랍에서 만화책을 꺼내 가방에 집어넣었다. 가방에 든 게 별로 없었기에, 만화책을 넣자 둔탁하게 툭 하는 소리가 났다. 후지카와는 바로 옆에서 내가 만화책을 집어넣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일단 란도셀을 가방걸이에 걸어두고, 의자에 앉았다. 그래서 나는 책상 옆에 선 후지카와를 올려다보는 모양새가 되었다. 먼저 말문을 연 것은 후지카와였다.

“미안. 혹시 내가 자리에 앉아서 기분이 안 좋았니?”

“아니, 전혀. 그보다 나는… 후지카와가 나를 그대로 따라하고 있다는 것에 조금 놀랐다고 할까. 후지카와가 남의 자리에 앉는 일은 없잖아. 그것도 모두가 떠난 오후의 교실에서 말야. 하필이면 오늘 그래야 할 이유가 있었던 거니?”

“하하, 그게 무슨 소리야. 그냥 메론 군이 자리에 앉아서 바깥을 보고 있는 게 신기해서, 궁금해서 자리에 앉았던 것뿐이야. 다른 이유는 없었어. 뭣하면 내일 앉아볼 수도 있는 거고.”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날 수가 없는걸. 왜냐면 내일은, 내가 이 자리에 앉아 있을 테니까.”

“뭐라고?”

후지카와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것도 그런 게, 나는 내일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설명하기 시작했다. 왜 내가 내일을 볼 수 있게 되었는지, 언제부터 그 사실을 알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제 후지카와가 내 자리에 앉는 것을 보게 된 일까지 하나도 빼놓지 않고. 후지카와는 내 이야기를 다 듣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래, 다들 그런 표정을 지으니까, 이상할 것 없어. 나는 내 이름이 메론이라는 것에는 크게 불만을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이런 상황이 올 때마다 나의—보통은 있을 리 없는—능력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는 사실에는 적잖은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이건 그 누구의 죄도 아니었다. 나는 어쩌다 보니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뿐이고, 그리고, 보통 사람들은 아무런 예지능력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함께 알았을 뿐이다. 일반적으로, 그들이 나의 능력에 대해 들으면 하는 소리는 고작 이 정도가 다였다. “정말이냐?” “너, 혹시 머리가 이상한 것 아냐? 병원에 가 보는 게 좋을 거야.” 그래서 나는 뚜렷한 목적 없이 인간을 불신하게 되었고, 지금 후지카와의 앞에서 능력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도, 그리 후지카와가 나를 믿어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나는 후지카와가 스스로의 상식—공통감각이라고도 불리는—과 맞대면할 시간을 주었다. 후지카와는 턱을 손으로 감싸며 생각에 잠겼고, 그 덕에 나는 오후의 여운을 즐길 수 있었다. 시간이 잠깐 흘렀을까, 멍하니 있던 내게 후지카와가 말을 걸었다.

“그럼 말이지, 메론 군. 혹시 내가 내일 어디서 뭘 하는지도 볼 수 있는 거야?”

“아아, 내일 뭘 할지 말인가. 그건 간단해. 오른손과 왼손을 마주잡고 있으면 돼. 그럼 알 수 있어.”

후지카와는 순순히 양손을 내게 내 놓았다. 어이, 그렇게 쉽게 속아넘어 가면 위험하다고. 이것 참, 안 될 여자구만. 나는 고개를 젓고 그녀의 두 손을 잡았다. 생각만큼 부드럽지는 않았는데, 그녀의 뼈마디는 얇고 뭉툭한 편이었다. 그리고 손바닥에 살집도 얼마 없었다. 마른 체질이니까. 나는 잠시 생각한 뒤에 말했다.

“내일 너는 친구들하고 군것질을 즐긴 뒤에, 피아노 학원에 가는 대신 공원에서 해가 질 때까지 책을 읽어. 그리고… 다시 학교로 돌아올 거야. 왜 돌아오는지는 모르겠지만.”

“진짜? 으아… 내가 피아노 학원에 가야 한다는 건 어떻게 안 거야. 정말로 미래를 볼 수 있는 거야?”

“말했잖아. 내일을 볼 수 있다고. 나는 거짓말은 하지 않아. 그걸 믿는 건 이야기를 듣는 사람의 자유겠지만.”

“메론 군, 그러면 내가 학교에 돌아와서 무슨 일을 하는지는 전혀 알 수 없는 거야? 하나도?”

“그것까지 보려면 조금 시간이 걸려. 미안, 내가 빨리 집에 돌아가 봐야 하거든. 혹시 볼 수 있다면 알려줄게.”

“고마워. 그리고 한 가지 더 부탁이 있는데…”

그녀가 말을 더듬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이미 후지카와가 학교에서 뭘 할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에게 말하지 않았던 것이다. 후지카와는 마지막으로 말했다.

“메론 군, 내가 내일 학교로 돌아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려 주면 안 될까?”


나는 교실에 걸려 있던 시계를 보았다. 시계는 오후 3시 53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초여름이니까, 평소대로라면 해는 5시 반을 넘겨서 질 것이다. 나는 준비해 온 책을 꺼내 읽었다. 챈들러의 <큰 잠—빅 슬립>이었다. 이제 막 100여 페이지를 읽은 참이었다. 나는 필립 말로에 스스로를 빙의했다. 방해자 없이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책을 절반 조금 넘게 읽고 고개를 들자, 이미 사위는 어두워져 있었다. 시계를 보았더니 5시 32분이었다. 곧 해가 질 것이다. 나는 책을 덮고 그녀를 기다렸다. 그녀, 후지카와가 교실에 도착할 때까지는 앞으로 30분 가량 걸릴 것이다. 공원은 학교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었다. 그녀는 5시 40분 정도가 되서야 해가 졌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리고 책—그녀가 요즘 빠진 순정소설이었다. 작가의 필력은 꽤 좋았다—을 란도셀에 넣고 학교에 돌아올 것이다. 1층에서 실내화를 벗고 교실로 올라오는 데 5분 정도 걸리고, 교실 문을 열면 시계는 오후 6시 1분을 가리키고 있을 것이다. 나는 연습장을 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후지카와에게 앞으로의 일을 설명하기 위해, 나는 정성들여 그림을 그렸다. 창 밖이 빠르게 어두워졌고, 나는 초조한 마음을 억누르며 시간을 나의 편으로 만들었다. 복도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고, 곧이어 교실 문이 드르륵 하고 열렸다. 후지카와였다.


“안녕, 메론 군. 내가 조금 늦었지?”

나는 시계를 보았다. 시계는 6시 1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괜찮다고 말한 뒤에 교실의 불을 켜 달라고 말했다. 후지카와는 스위치를 눌렀고, 우리가 있는 교실에는 불이 들어왔다. 동시에 교실 곳곳이 밝아져 왔다. 후지카와는 내 곁으로 다가왔다. 나는 종이를 찢어 후지카와에게 보여주었다. 학교의 평면도였다.

“잘 봐, 우리는 지금 3층에 있어. 정확히 말하면 중앙계단에서 세 번째 교실이지.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간단해. 그건 교장실에서 물건 하나를 훔치는 거야. 그 물건이 무엇인지는 지금 말하지 않을게. 가면 알 수 있을 테니까. 훔치는 역할은 내가 맡을 테니까, 너는 문 앞에서 감시를 서고 있어. 그러다 누가 오면 문을 두드려. 그럼 내가 불을 끄고 책상 밑으로 들어갈 테니까. 알겠지?”

“응. 그런데… 꼭 훔쳐야 되는 물건인 거야? 교장님에게 부탁해서 받을 수는 없어?”

“안 돼. 그건 불가능하거든.”

이런 말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순간적으로 나는 느꼈다. 하지만 할 수밖에 없었다.

“네가 오늘 학교에 돌아올 수밖에 없는 것과 같은 이유야. 무슨 말인지 알겠지?”

“응. 알겠어. 그렇게 할게.”

나는 후지카와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조용히 교실의 불을 끄고, 문을 연 뒤에 복도를 건너 1층으로 내려왔다. 아무도 그곳에 없었다. 우리는 은밀히, 마치 닌자라도 된 것처럼 교장실로 향했다. 문은 잠겨 있었지만, 나는 준비해 온 커터칼로 걸쇠를 젖혔다. 문은 닫혔을 때와 마찬가지로 매우 쉽게 열렸다. 후지카와가 망을 보고, 나는 교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작은 학교라 그런가, 교장실은 넓지 않고 아담한 편이었다. 나는 곧바로 책상 뒤편에 있는 서랍장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내가 찾던 물건이 있었다. 나는 그것을 서랍장에서 꺼냈다.

“후지카와, 이제 다 됐어. 누구 온 사람은 없지?”

“응. 그야 5분밖에 안 지났는걸.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거야?”

“아니, 아직 할 일이 하나 남아 있어.”

나는 그것을 란도셀에 넣고 태연하게 교장실을 나왔다. 수위 아저씨는 아직 보이지 않았고, 후지카와는 들어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문 앞에 다소곳이 서 있었다. 나는 손짓으로 후지카와에게 나오라는 신호를 보냈고, 그녀는 고맙게도 내 지시에 따라주었다. 우리는 그대로 학교를 나와—물론 실내화를 운동화로 갈아신는 것을 잊지 않고서—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강변으로 향했다. 강변에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 몇과, 술을 마시고 있는 커플 한 쌍을 제외하면 사람은 없었다. 우리는 적당한 곳에 자리를 깔고 앉았다. 후지카와가 손수건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풀잎에 치마를 적실 일 없이 앉을 수 있었다. 나는 란도셀에서 그것을 꺼냈다.

“이게 뭔지 알겠어? 밤이라 잘 안 보일 테지만.”

“어… 폭죽인가? 이걸 훔쳐온 거야?”

“잠깐. 실망하긴 일러. 이 폭죽은 앞으로 10년이 지나면… 아니, 그렇다기보단 구하기 매우 어려운 폭죽이라서. 훔칠 만한 가치가 있는 물건이야. 왜냐면 교장은 이걸 쓰지 않을 생각이었거든.”

“왜? 폭죽은 사용해야 가치를 지니는 물건 아냐?”

“그래! 네 말이 맞아. 하지만 어째선지 교장은 이상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 폭죽을 계속 가지고 있으면, 자신이 무엇을 하든 잘 풀릴 거라는 믿음을 그는 가지고 있었어. 결국 그것은 근거 없는 믿음으로 판명되었지만.”

“에? 메론 군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는걸. 좀 더 쉽게 설명해주면 안 될까?”

“미안. 하지만 나중에 가면 무슨 말인지 알게 될거야. 후지카와, 나는 너와 결혼하기 위해 이곳에 왔어.”

그렇다. 여성이란 자고로 갑작스레 이런 말을 들으면 놀라는 법이다. 결혼이라니, 초등학교 5학년에게는 일러도 너무 이른 단어가 아닌가. 어두웠지만, 그래서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의 얼굴도 잘 안 보였지만, 후지카와가 매우 당황하고 있다는 것만은 잘 알 수 있었다. 나는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 아직 어린 그녀를 놀라게 해서는 안 된다. 적어도 폭죽을 터뜨리기 전까지는.

“잘 들어. 후지카와, 오늘이 몇 일이지?”

“어?! 아니, 그게… 7월 6일인가.”

“그래. 오늘은 칠석 전날이야. 내일은 아마 학교에서 탄자쿠 적기를 할 테지. 그리고 밤에는 강변에서 축제가 열릴 거야. 우리는 축제 전에 학교를 빠져나와, 자유시간을 보내겠지. 그 때 나는 폭죽을 터뜨릴 거야. 바로 이곳에서.”

“뭐라고?”

“폭죽을 터뜨린다고.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날을 기념하기 위해. 시간은 오늘과 마찬가지로 오후 여섯 시. 아마 사람들은 거대한 폭죽소리에 놀라겠지. 하지만, 그런 것은 아무렇지도 않아. 왜냐면 나는… 네게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으니까.”

아뿔사. 너무 많이 나갔다. 나는 후지카와의 표정을 살폈다.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녀가 깊이 생각하고 있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후지카와는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나 따위가 근접할 수조차 없는 먼 곳에서.

“좋아. 나도 그 자리에 함께 있을게. 대신… 결혼은 나중에 다시 생각해 보자.”

나는 그녀가 이렇게 말하리라 짐작하고 있었다. 나중이라니, 그것은 내게 허락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나는 이번 여름이 지나면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 전에 후지카와에게 이 말만이라도 하고 싶었다.

“후지카와, 내가 너를 좋아하는 마음은 변함없을 거야. 그러니, 나를 잊지 말아줘.”


긴 시간이 흘렀다. 커플은 아직까지도 술을 퍼 마시고 있었다. 그래, 좋은 시절이다. 적어도 결혼하기 전까지는 좋은 시절이 계속 이어지겠지.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후지카와는 무릎을 접고 양팔로 감싼 채, 바람이 불어 흔들리는 억새를 바라보고 있었다. 강변에는 억새가 많이 자라 있었다. 이 풍경도 이제는 보기 힘들어질 것이다. 하아… 나는 한숨쉬었고, 후지카와는 나를 걱정스럽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우리에게는 휴대폰조차 없었다. 나는 슬슬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후지카와도 그렇게 생각한 모양이었다. 우리는 각자의 란도셀을 짊어지고, 깔고 앉았던 손수건을 접어 앞주머니에 넣은 뒤에 강변을 떠났다. 자전거에 탄 사람들이 빠르게 사라져 가고 있었다. 그 모습은 한 시대의 종말과 비슷했다. 길을 걷다 우연히, 나는 바닥에 떨어진 종이갑을 발견했다. 아몬드 초콜릿이 담겼던 상자였다. 나는 후지카와에게 그것을 건넸다.

“이것을 잘 간직해 줘. 그리고 나중에 나를 만나면, 내게 그것을 보여줬으면 좋겠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후지카와는 웃었다) 내일도 볼 거잖아. …혹시 전학이라도 가는 거야?”

“뭐, 그렇게 됐네. 아버지와 함께 먼 곳으로 떠나게 됐어. 아주 먼 곳으로. 나중에 돌아올지도 몰라. 하지만, 그 때가 되면 후지카와는 이미 어른이 되어 있겠지. 나와는 달리.”

“나이는 모두가 같이 먹는 거잖아. 나 혼자 어른이 되기는 어렵지 않을까? 나는 메론 군이 어른이 된 모습을 보고싶어. 그리고 어른이 된 메론 군이 내게 다시 한번 고백한다면… 그 때는 들어줄지도 몰라.”

“아냐. 나는 어른 같은 건 되지 않을 거야. 어른이 된다는 건 너무 무서워.”

“괜찮아. 다들 그렇게 생각할 거야. 그러니 괜찮아.”

우리는 손을 잡고 걸었다. 저 멀리 집들이 모여 있는 주택단지가 보였다. 해는 이미 모습을 감추고, 하늘에는 밝은 초승달이 떠 있었다. 지금 내 옆에는 후지카와가 있다, 이것을 쓸쓸한 마음에 유일한 위안으로 삼으며.


다음 날인 7월 7일은 맑았지만, 하늘에는 구름이 조금 있었다. 이제 곧 태풍이 올 것이고, 태풍이 지나가고 나면 무더운 여름이 시작될 것이다. 나는 조금 일찍 학교에 도착해, HR이 시작하기 전까지 가져간 만화책을 친구들과 함께 돌려 읽었다. 후지카와와 아침 인사를 나누고, 3시에 수업이 끝날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학교가 끝났을 때, 그녀는 어제와는 많이 달라진 모습이었다. 그녀가 먼저 내게 말을 걸어왔다.

“메론 군. 그럼 오늘은 여섯 시에 강변에서 보는 거다?”

“그래, 알겠어. 아, 성냥은 내가 챙겨갈 텐데, 혹시 모르니 후지카와도 하나 챙겨와 줘. 그리 걱정할 일은 없을 거야. 모든 일은 준비된 대로 흘러갈 테니까. 내가 내일을 볼 수 있다는 거, 후지카와는 믿지?”

“응. 믿어. 그렇지 않으면 내가 메론 군 말을 들을 리 없잖아. 성냥 꼭 챙겨갈게.”

우리는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는 헤어짐의 인사를 했다. 잘 가, 하고 후지카와가 말했고, 안녕, 하고 내가 말했다. 아직 시간은 세 시간 가량 남아 있었다. 나는 우선 집으로 돌아와, 밀린 레포트를 정리했다. 보내지 않은 서류들이 책상 위에 쌓여 있었다. 작업을 마치고 나니 오후 5시 정도가 되었다. 짐을 가볍게 챙기고,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강변까지는 느긋하게 걸어서 가면 20분 정도 걸렸다. 후지카와는 먼저 강변에 와 있을 것이다. 나는 내가 어제 보았던 대로 행동하기를 바랐다. 이상한 말이기는 하지만.


강변에 도착했을 때, 후지카와는 이미 가방을 벗어두고 갈대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강을 따라 저 멀리까지 길게, 점포와 사람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었다. 꽤나 시끌벅적했지만, 내 귀에는 그것이 하나의 소음으로밖에 인식되지 않았다. 나도 가방을 풀밭에 내려놓고 후지카와를 향해 걸어가, 세 보를 남겨두고 “다녀왔어”, 하고 짧게 인사했다. 후지카와는, 집에서 저녁 산책을 다녀온 개를 바라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뒤돌아보며 말했다.

“메론 군, 이제 저녁 시간이야.”

“알고 있어. 곧 있으면 6시가 되겠지. 그럼 폭죽을 터뜨릴 거야, 어제 말했던 대로.”

“그런데 메론 군,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뭔데?”

“…나중에 물을게. 사실 어제, 이상한 꿈을 꿨거든.”

“흐응.”

후지카와는 나를 보더니 왼손을 들어 손목시계의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5시 58분이었다. 이제 2분 뒤면 나는 준비해 온 성냥으로 폭죽을 터뜨릴 것이고, 그렇게 되면 폭죽에서 반경 50m의 사람들은 깜짝 놀랄 것이다. 우리는 폭죽이 터지기 전에 잽싸게 도망칠 계획을 세웠다.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제방 너머로 도망가서, 사람들이 소리의 근원을 발견할 때까지 잠시 숨어 있는다. 그리고 소동이 잠잠해지면, 다시 강변으로 돌아와 해가 지는 것을 바라본다. 이것이 우리의 계획이었다. 후지카와가 손수 성냥을 준비했기 때문에, 나는 후지카와의 것을 사용했다. 성냥을 하나 꺼내 세게 긁어 불을 붙이고, 불을 폭죽의 심지로 옮겼다. 불이 붙은 심지는 빠르게 타 들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폭죽을 풀밭 한켠에 놓아두고, 폭죽이 터질 때까지 제방 너머로 달렸다. 얼마쯤 달렸을까, 멀리서 펑! 하는 소리가 났다. 우리는 계속 달렸다.

“후우, 후우…”

“하아, 하아…”

“후우… 아직 사람들이 우왕좌왕하고 있을 거야. 어디서 폭발이라도 난 게 아닐까 하고서.”

“설마 경찰이 오지는 않겠지? 그렇게 되면 다시 못 돌아갈지도 몰라.”

“아냐. 경찰이 오긴 하겠지만, 그들은 소리의 근원이 폭죽이라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다시 물러갈 거야. 후지카와, 지금 시간이 어떻게 돼?”

“오후 6시 10분. 아직 10분밖에 안 지났어.”

“그래… 내가 본 대로라면 25분에 소동이 정리될 거야. 여기서 30분까지 기다렸다가, 주위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가자. 혹시 저녁 먹었어?”

“나는 아직 안 먹었어. 메론 군은?”

“나는 먹었거든. 후지카와, 그럼 내가 타코야끼라도 사 올까? 먹고 싶은 거 있어?”

“모르겠어. 지금 너무 놀라서, 가슴이 진정이 안 돼서, 배가 고픈지도 모르겠는걸.”

“잘 봐. 이제부터 시작이니까.”

나는 후지카와가 폭죽이 터지는 장관을 볼 수 있도록, 그녀를 뒤돌게 만들었다. 폭죽은 터진지 5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 폭발을 거듭하고 있었다. 소리는 많이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화력은 줄어들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아직 하늘은 밝았지만—그러나 이제 막 노을이 지려 하고 있었다—폭죽이 그리는 불꽃의 선은 매우 선명하고 뚜렷했다. 사람들이 놀라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그래, 내가 바라던 건 이거였어. 후지카와가 터지는 폭죽을 바라본다, 그것도 이제는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려운. 폭죽은 장장 5분 정도를 더 폭발해서야 한숨 사그라들었고, 경찰차가 한 대 오긴 했지만, 폭죽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바로 돌아갔다. 사람들은 축제를 즐기고 싶어했다. 그들에게 있어 폭죽은, 비록 시끄러운 방해물이기도 했지만, 칠석을 기념하는 축포이기도 했던 것이다. 이곳에서는 강이 잘 보이지 않았으므로, 30분이 되자 다시 가방을 챙겨들고 강에서 가까운 쪽으로 향했다. 후지카와와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아서 강과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느리게 느리게, 강의 보폭에 맞추어 사람들은 행진하고 있었다. 풀밭에는 아까의 짙은 여운이 감돌아 있었다. 탄 냄새도 아직 완전히 흩어지지 않았다. 후지카와는 배가 고픈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럼 타코야끼를 사 올까? 아니면 구운 오징어는 어때?”

“아무거나 좋아. 야끼소바면 될 것 같아.”

“그럼 야끼소바하고 내가 먹고 싶은 걸로 하나 사 올게. 아니, 돈은 필요 없으니까.”

후지카와는 자신의 손지갑을 꺼내려다가, 내가 한사코 말리자 마지못해 다시 앞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후지카와에게 어른다운 대접을 해 주고 싶었다. 비록 그것이 어린아이의 치기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나는 아직 어린아이 티를 못 벗었음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후지카와는 이제 곧 어른이 되겠지. 아름다운 어른이 된 후지카와를 되새기며, 나는 밑으로 밑으로 내려갔다.


제방에서 내려와 축제가 벌어지고 있는 강 바로 옆으로 내려왔을 때, 나는 어디로 갈지 몰라 우왕좌왕했다. 우선 사람들이 너무 많았고, 그리고 너무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하며 거리낌 없이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사람들을 피하느라 기력을 많이 소모했다. 그래서, 타코야끼를 파는 가게 바로 앞까지 왔을 때, 나는 기진맥진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타코야끼를 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런 나의 모습을 본 주인이 내게 라무네 한 병을 건넸다. 총천연색의 라벨이었다. 나는 가까스로 돈을 지불하고 라무네를 마실 수 있었다.

“후아… 감사합니다. 그리고 타코야끼도 하나 주세요.”

주인은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곧바로 타코야끼를 만들기 시작했다. 나는 가게 바로 앞에 서서 사람들을 피하며 타코야끼가 완성되기를 기다렸다. 시간이 조금 흘렀고, 해가 지면서 하늘이 점차 어두워졌다. 강은 제방 위보다 더 어두웠다. 그러나 불빛이 강을 가득 메우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 어둡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마치 포장마차가 잔뜩 늘어서 있는 뒷골목으로 들어온 기분이었다. 주인이 내게 갓 구운 타코야끼를 건넸고, 나는 돈을 지불했다. 그리고 후지카와가 먹고 싶다던 야끼소바를 사러 다시 먼 길을 떠났다. 이번에는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곳이 야끼소바를 파는 가게란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나 또한 줄을 섰고, 해가 완전히 언덕 너머로 사라졌을 때, 나는 야끼소바를 들고 제방 위로 올라올 수 있었다. 물론 마시던 라무네와 함께다.


“후지카와, 야끼소바 사 왔어.”

“와! 고마워, 메론 군. 사람이 많아서 힘들지는 않았어?”

“어, 그럭저럭. 중간에 타코야끼를 사 왔거든. 거기서 잠시 쉬었어.”

“다행이네. 마실 건?”

“내가 마시던 라무네가 있긴 한데… 마실래?”

“좋아.”

나는 마시던 라무네를 후지카와에게 건네주었다. 그녀는 아무 거리낌 없이 내가 든 병을 받아들어, 입에 대고 한 모금 마셨다. 라무네가 조금 줄었다. 나는 갑자기 슬픈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후지카와에게 야끼소바를 건네고, 그녀에게 라무네를 전부 마시라고 한 뒤, 타코야끼를 먹기 시작했다. 이제 교실도, 폭죽도 뭣도 없다. 앞으로 길고 긴, 끝나지 않을 여름이 시작될 것이다. 내가 이러는 것으로 대체 무엇을 이룰 수 있는 걸까. 그녀는 내가 없이도 남은 삶을 잘 살아갈 것이다. 확신할 수 있었다. 갑자기 목이 말라서, 바로 옆에 있던 간이매장에서 차가운 물을 한 병 사 왔다. 그리고 벌컥벌컥 마셨다. 이제 해는 완전히 져, 다시 후지카와의 윤곽밖에 보이지 않게 되었다. 옆에 있는 게 후지카와인지도 잘 분간되지 않았다. 물론 그럴 리는 없었다. 내가 그녀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는데. 후지카와가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말야… 메론 군이 처음에는 되게 이상해 보였어. 그게 갑자기 전학을 왔잖아. 4월 중순에.”

“으응.”

“왜 전학을 왔을까, 아버지가 직장을 옮겼다고 했는데, 그게 왜 하필이면 여기일까. 있잖아, 그런 생각. 그리고 친구들하고도 얘기했거든. 쟤는 우리들과는 다른 것 같다고. 나는 그냥 듣고만 있었어.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였지. 사실 나는 꼭 친구들이 얘기한 대로가 아니라, 메론 군에게는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거든. 왠지 모르게 그런 게 느껴졌어. 여자의 감이라고 말하면 우습지만.”

“아냐, 전혀. 아니,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라…”

“알고 있어. 메론 군, 내게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있는 거지? 그리고 그 비밀을 가지고 가야 하는 거지? 지금 내게 그렇다고 말해줄 수 있어?”

“나중에 전부 알게 될 때가 올 거야. 그때 너는 미소지으며 이렇게 답하겠지. “잘 왔어, 메론 군” 하고. 내가 후지카와를 좋아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을 거야. 후지카와는 지금 모습 그대로 있으면 돼. 아냐, 그렇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나는 후지카와가 변하지 않을 것이라 믿어. 왜냐면 후지카와는…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니까.”

“…메론 군도 짖궂어. 그런 소리를 부끄럽지도 않게 하다니. 듣는 사람의 마음도 생각해 달란 말야.”

“그래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걸. 정말로, 한점 부끄럼 없이.”

후지카와는 이제 웃기만 했다. 내가 후지카와가 웃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었냐 하면, 그녀의 얼굴에 지는 그림자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후지카와의 얼굴은 밑에서 올라오는 빛을 받아 옅은 주홍색을 띠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그녀의 얼굴에 다가서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행동으로 옮기진 않았다. 대신, 그녀의 손은 잡을 수 있었다.


“이제 완연한 저녁이네. 하늘은 어둡고, 바람은 서늘하고. 그런데도 사람들은 돌아갈 기미를 보이지 않아. 그들에게 있어 칠석은 어떤 의미일까?”

“메론 군, 그건 말이지. 사람들은 칠석이 아니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는 거야. 다들 힘들게 살잖아. 버블이 꺼진지 아직 5년밖에 안 됐고, 나는 잘 모르지만. 분명 그럴 거야. 그렇다고 생각해.”

“버블이란 게 그렇게 좋은 시절이었을까? 기억나지도 않는데 말야. 하지만 사람들은 다들 살기 좋았다고 말하지. 모두가 소비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일본이 세계에서 1등이었다는 얘기를 아무 거리낌 없이 하면서. 나는 잘 모르겠어.”

“실은 나도 잘 몰라. 6살이었던 때의 일을 어떻게 기억하겠어. 그냥 그렇지 않을까… 싶을 뿐이야. 이제 돌아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후지카와는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나는 그동안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사람들도 이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지하철과 버스는 아마 미어지겠지. 내가 지하철을 이용할 일이 없다는 게 다행이다. 멍하니 강변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 후지카와가 내 곁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달빛을 받으며 돌아가는 길에 올랐다. 어제와 꼭 같이.


그 뒤로는 시간이 빨리 흘러간 것 같았고, 7월 말에 여름방학을 맞이했을 때 후지카와와 나는 매우 가까운 사이가 되어 있었다. 그녀와 나는 등하교를 같이 했고, 점심을 같이 먹었으며, 때로는 학교에 남아 같이 책을 읽기도 했다. 후지카와는 한번 잡은 책은 오래도록 읽는 습관이 있었는데, 내가 지켜보는 동안 그녀는 책을 두 번밖에 바꾸지 않았다. 아마 좋아하는 책은 두고두고 읽는 모양이었다. 나는 후지카와에게 말했던 대로 여름방학이 끝나기 전에 ‘전학’을 떠났고, 후지카와는 나에게 작은 보석이 박힌 목걸이 하나를 주었다. 이걸 하고 있으면 많은 사람들 속에 둘러싸여도 메론 군인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메론 군, 우리가 나이를 먹어도 서로를 알아볼 수 있겠지? 변하지 않는 것이란 게 정말로 존재하는 거겠지?”

“그래. 분명 그럴 거야.”

나는 후지카와에게 하려던 말을 끝까지 하지 못하고 참아넘길 수밖에 없었다. 아아, 이렇게 허무하게 떠나고 싶지는 않았는데. 그래도 이 세계에 더 있을 수는 없다. 나에게는 돌아갈 시간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레포트를 정리하고, 묵던 집에 잔금을 치르고 작별인사를 한 뒤, 나는 홀연히 이 세계에서 사라졌다. 딱 5개월 만이었다.


다시 돌아온 세계에 적응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떠날 때와 마찬가지로 세계는 조용했고,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이 맡은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돌아왔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우선 내가 소속되어 있는 대학으로 향했다. 대학은 내가 남은 학기를 수강하지 않는 것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들이 내게 뭐라 불평할 입장은 아니었다. 그것도 그런 것이, 나는 이제 졸업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라이시 씨, 정말로 다음 학기를 다니지 않을 생각입니까? 지도교수와 상의는 하셨나요?”

“네. 전부 이야기를 끝냈습니다. 올해 말까지 졸업논문을 제출하겠습니다. 제가 학사를 수료할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는, 교수님들이 판단하시겠지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그럼.”

“끄응…”

그들 역시 난감한 입장일 것이다. 내가 대학에 오래 있는 편이 그들에게는 더 나을 테니까. 하지만 나는 이 대학에 오래 있을 생각이 없었다. 시간여행을 한번 마치고 온 이상, 나를 받아줄 곳은 어디에나 있었다. 비록 나는 그 사실을 불문율에 부쳤지만 말이다. 여하간 이번 년도에는 도서관에서 보낼 생각이었다. 거기에는 그녀가 있으니까. 나는 서둘러 내가 기거하는 도서관으로 향했다. 도서관은 가장 빠른 택시를 잡아타고도 30분 거리에 있는 먼 곳에 있었다. 해가 보이지 않는 하늘이 싫어, 나는 창문의 색을 푸른색으로 바꾸고 내가 해야 할 일들을 복습했다.


도서관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저녁이었다. 나는 카드를 들어 내가 선임연구원을 위한 특별 회원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했고, 게이트를 지나쳐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때는 조급한 마음을 억누를 수 없었다. 아아, 빨리 가야 할 텐데. 가서 할 얘기가 많이 있는데. 엘리베이터에 올라 “14층”이라고 짧게 말했다. 바로 그녀가 일하는 곳이었다. 엘리베이터는 소리 없이 빠른 속도로 올라갔다. 나는 곧바로 열람실로 향했다.

“돌아왔어요. 많이 늦었죠? 잠깐 대학에 들렀다 와서요. 그들에게 제가 얼마나 비협조적인지를 적극적으로 설명했어요. 이제 그들도 저를 빨리 졸업시키려 안간힘을 쓸 겁니다. 더이상 저를 붙잡을 이유가 없으니까요.”

“그래요. 잘 왔어요, 시라이시, 아니 메론 군.”

나는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녀, 후지카와—이제 ‘후지카와’라는 성 대신 ‘마유미’라는 자신의 본명을 사용하는—는 나를 바라보며 미소짓고 있었다. 그리고 내게 이리 오라고 손짓했다. 나는 순순히 그녀의 지시에 따랐다. 아니, 따를 수밖에 없었다. 도서관의 주인은 바로 그녀였으니까.

“이거, 메론 군이 내게 준 거 맞죠? 어쩐지, 꼭 닮았다 했더니.”

그녀가 내게 준 것은 아몬드 초콜릿 상자였다. 색은 많이 바랬지만, 한눈에 내가 그녀에게 주었던 바로 그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할 말을 잊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손에 들고 왔던 목걸이를 그녀에게 채워주며, “잘 다녀왔어요, 마유미 씨, 이제 더 이상 당신을 힘들게 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라고 말하는 것뿐이었다. 그녀는 나를 보며 미소지었다. 영원히 변하지 않을 아름다운 미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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