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etc. (77)
l'Empreintes du beau rêve
오늘은, 잔액이 50원밖에 안 남아 버스에서 내린 남자를 보았다. 남자는, 가방을 메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다 탈 때까지 버스 앞좌석 옆에서 기다리고는, 사람들이 다 타고 나자 홀로 버스에서 내려 인도를 걸었다. 그리고 남자는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나는 그 남자의 심정을 알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저 남자가 아닌데, 그의 심정을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혹시 그는 그냥 재수가 없다고, 교통카드를 충전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게 아니었을까? 알 수 없지만, 그러나 나는 그 남자에 대해 계속 생각했다. 버스에는 사람들이 몇 명 있었다. 다들 어둠에 맞서 달리는 버스에서, 아무 말도 없이 앉아 있었다. 나는 버스를 타고 가며 계속 이렇게 생각했다. 죽기 위해 사는 것이다, 죽기 위해 사는 것이다. ..
니코동 주소유투브 誰より大切な君に 愛されないことを恐れて 一万年先の星まで ひとっ跳びで逃げた 누구보다 소중한 네게 사랑받지 못할 것을 두려워해1만년 앞의 별까지 단걸음에 도망쳤어 そっと瞼を開けてみる 目の前は黒い空の海 一億年先の地平まで 流れてゆくんだ 살짝 눈꺼풀을 열어 보니 눈 앞은 검은 하늘의 바다 1억년 앞의 지평선까지 흘러가고 있어 吸い込んだ真空の温度で 感覚が凍りつく前に この身体一つ分の 愛を 빨아들인 진공의 온도로감각이 얼어버리기 전에이 몸 하나 분의 사랑을 愛を 今すぐ 愛を 私に 愛を どうか 愛を 사랑을 지금 곧 사랑을 내게 사랑을 제발 사랑을 光射さぬ星の上で 暗闇に飲まれないように 一万年先の夕焼けを ひとりで見てた 빛이 없는 별 위에서 어둠에 먹히지 않기 위해1만년 앞의 노을을 혼자서 보고 있어 きっとこ..
니코동 주소유투브 すれ違いは結局運命で 全ては筋書き通りだって 悲しみを紛らわせるほど 僕は強くないから 弾き出した答えの全てが 一つ二つ犠牲を伴って また一歩踏み出す勇気を奪い取ってゆく 마주침은 결국 운명이라 모든 것은 줄거리대로라며슬픔을 잊어버릴 수 있을 정도로 나는 강하지 않으니까계산한 모든 답이 하나 둘 희생을 동반해다시 한 걸음 내딛을 용기를 빼앗아 가네 いつか君に捧げた歌 今じゃ哀しいだけの愛の歌 風に吹かれ飛んでゆけ 僕らが出会えたあの夏の日まで 언젠가 네게 주었던 노래 지금이라면 슬픔뿐인 사랑노래바람에 날려 날아가거라 우리가 만났던 그 여름날까지 巡り会いも結局運命で 全ては筋書き通りだって 都合良く考えられたら 寂しくはないのかな 弾き出した答えの全てが 一つ二つ矛盾を伴って 向こう側へと続く道を消し去ってゆく 우연한 만남도 결국..
일본어 위키백과 링크 가토 노리히로 (かとう のりひろ、1948년 4월 1일 - )은, 일본의 문예평론가, 와세다대학 국제교양학부 전 교수.고단샤 논픽션상, 코바야시 히데오상 선고위원. 내력.인물야마가타현 야마가타시 출신. 야마가타현립 야마가타히가시고등학교를 나와, 1972년 도쿄대학 문학부 불문학과 졸업. 1985년 『아메리카의 그늘』로 데뷔한다. 현대문학, 사상사, 정치, 역사인식에 대해 폭넓게 발언한다. 역사인식은 중도파. 에피소드1995년에 『군조』지상에 「패전후론」을 발표. 일본의 전후를 어떻게 인식해야 할까를 물었다. 일본의 침략이나 식민지지배에 의한 아시아 등의 피해자에게 사죄하는 주체, 즉 「일본인」이라는 주체가 결여된 채로 오늘날에 이르렀다는 논의를 전개했다. 또한, 구체적인 방책의 하나로..
(짤방에 특별한 의미는 없음. 진짜로.) 최근 이런 생각을 했다. 트위터라는 게 혹시, ‘아는’ 사람을 꼬드기는 개미지옥이 아닐까 하고. 지금의 트위터는 너무 사람이 많고, 사람이 많은 이상 의견과 주장들도 많고, 그리고 물론이지만, 다른 사람을 욕하거나 조리돌리는 말들도 많다. 나는 사람을 욕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대신 애매하고 구체적이지 않은 것에 대해 평하기를 좋아한다), 트위터에서 누군가를 조리돌리는 말이 보일 때마다, 그 자의 손가락을 뜯어내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미안하다, 솔직한 심정이 이렇다. 실제로 만나면 아마 아무 짓도 못 하겠지만 말이다.) 그러나저러나, 트위터에서 모든 비방과 욕설과 조리돌림을 피하기란 불가능에 가깝고, 나는 오늘도 내 발로 엿을 먹는 심정으로 트위..
5월 22일부터 25일까지,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서울인권영화제라는 영화제가 열렸다. 서울인권영화제는 올해로 19회를 맞이하는데, 그동안 많은 우여곡절을 거치며 어엿한 하나의 영화제로 성장할 수 있었다. 올해는 4일에 걸쳐 이런저런 '사람들'과 '장소'를 다룬 영화를 상영했는데, 인상깊었던 마지막 날에 대해 짧게 말해볼까 한다. 마지막 날에 나는 4시가 조금 지나서 마로니에공원에 도착했다. 도착하고 보니 실낱같은 비가 내리고 있어서, 많은 사람들은 텐트 밑에서 준비된 의자에 앉아 영화를 보고 있었다. 상영작은 이었는데, 책자에서는 영화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밀양투쟁을 바라보는 외부인의 시선에서 점차 밀양에 거주하면서 삶의 문제로서 송전탑을 바라보는 주민들의 시선으로 옮겨가면서, 편견이나 오해로 왜곡되..
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마지막 화에, 타마코가 자신이 우사기야마 상점가에서 살아온 시간을 말하며, 여기서 태어나고 사람들과 마주하며 자란 게 정말로 기쁜 일이라고 말했을 때, 나도 만약에 타마코처럼 교토의 한 상점가에서 태어났다면, 그녀와 같은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그랬을지도 모르고, 아니면 다른 생각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자일 확률이 훨씬 더 높았을 것이다. 한국에서, 어느 한 곳에 정착해 유년기의 전부를 보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부산에서 태어나, 어머니의 말에 따르면 6개월 정도를 이문동에서 살았고, 그리고 부평으로 건너가 거기서 어린이집 시절을 보냈다. 어린이집의 기억은 현재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아버지가 밤에 혼자서 놀고 있는 나를 데리고 온 것만은 어렴풋이 기억난다...
최근 을 리뷰한 글을 읽었다. 거기서, 필자는 소설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호밀밭의 파수꾼"이란 꿈이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자신있게 비관할 수 있는 건 줄거리가 그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홀든은 D. B. 같이 변절하는 어른의 세계를 혐오하고 피비와 앨런 같은 아이들을 순수의 결정체로 이상화하지만 그 이분법적 오류는 마지막에 가서 깨지고 만다. 혹자의 착각과 달리 이 이야기는 쉽사리 희망을 말하지 않으며, 아주 작은 성장의 처참한 실패기이기도 하다. 정신병원에 갇힌 홀든의 마지막 결말은 이 사회가 아이들의 팔다리를 잘라 무기력하게 만드는 풍경이자, 동시에 홀든 스스로도 자신의 알 껍질을 깨지 못하고 좌절하는 비극의 풍경이다. 우리가 보통 상상하는 성장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용감..
마이니치신문 독자투고란 번역 대학생 고순미 21세 (도쿄도 토요시마구) “특별영주가 뭔가요?”그 날, 친구와의 술자리를 마치고, 귀가길에 올랐다. 역을 나온 곳에 서 있던 순사 2명에게 신분증의 제시를 요구받았다. 동안인 내가 미성년으로 보였기 때문일 거다.“출신은?”“한국입니다.”재일 코리안인 나는 숨기지 않고 전했다.“특별영주에요.”“특별영주가 뭔가요?”순사는 내게 그렇게 말했다. 또한, 계속 일본에 있는 건가, 왜 있는 건가 하고.“양친도 재일입니다. 조모가 전쟁이던 때 한국에서 왔습니다.”“전쟁이라면?”이 순사는 역사를 모르는 건가. 역사가 알려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자만이었던 건가. 자신을 타이르지 않으면 눈물이 흐를 것 같았다. 한국을 비판하지 말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왜..
이맘때가 다가오면 광장에서 다시금 노숙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고개를 쳐 드는 것이다. 한낮의 뜨거운 햇빛을 반사하던 유리빌딩, 벌집처럼 구멍이 송송 나 있는 어느 고급 호텔의 겉벽, 점심시간이 되어 식당으로 향하는 회사원들과 분수에서 뛰놀던 아이들. 더웠지만, 밤에는 시원했고 사람들이 사라진 광장엔 이따금 취객이나 일터에서 돌아오는 노동자가 광장을 뱅 돌아 거리 저편으로 사라져갔다. 그리고 기나긴 정적. 광장에는 화장실이 없었다. 화장실에 가기 위해선 지하철로 가거나 빌딩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그러나 용변을 해결하는 일은 사소하다고 말할 정도였다. 더 큰 문제는 바로 하루 걸러 열리는 그놈의 '행사'였다. 며칠 전에 연락이 오면—심지어 행사 당일 아침에 말을 걸어오는 경우도 있었다—텐트민들은 되도록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