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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mpreintes du beau rêve
다카하시 겐이치로의 단편 중에 가장 인상깊었던 건, 자신의 의지에 따라 '아사'하는 네 젊은이를 다룬 글이었는데, '현실적으로' 사람이 하나씩 죽어가는 모습을 담담히 묘사한 게 지금도 기억난다. '죽음'에 비하면 존재란, 실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바꿔 말하면, '죽음' 이후에야 존재자는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고, 여기까지 도달하는 데는 다양한 길이 있겠지만, '죽음 이전'에 존재자가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죽음'에 걸맞는 '필사적인' 노력과 비장함이 없으면 안 된다. 나는 이 소설을 읽고, '죽는다는' 게 삶을 이해하는 데는 큰 도움을 줄 수 없을지 몰라도, 존재자가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각인시키는 데는 죽음만한 것이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다. 따라서 누군가가 자살한다고 해서, 반..
'말'이 하늘을 나는 힘을 잃고 낙하하는 속도는 매우 빠르다, 정신을 잃어버릴 정도로. 떨어지는 말에 잘못 맞으면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보통 말에 맞는 일은 없지만. '말'을 다시 하늘로 되돌리는 방법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중력은 여전히 강하다. 남에게 사과하는 사람은 자신의 잘못이 없기를 속으로 바란다는데, 그래서 내가 '사과'하지 않은 건지도 모른다. 대신 나는 '포기'했다. 내가 언제나 발견하는 것은 '차이'와 '어쩔 수 없음'과 '낯선 얼굴'과 '아, 그래'와 제대로 살아가는 건강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내가 낄 자리가 없다. 제대로 살아가는, 때때로 자신의 상궤를 벗어나지 않은 삶에 대해 고민하는 건강한 사람들. 나는 건강한 사람들을 가만히 지켜보는 일이 좋다. 그들은 이미 '잃어버렸..
은 어쩌면, 애니메이션에서 '타자'를 다루는 일반적인 길, 왕도를 따른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벨기에에 입양된 '한국계 전정식', 벨기에 이름 '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융'은, 두 살 정도에 벨기에 가정에 입양되어 그곳에서 평생을 살아온 한국계 벨기에인이다. 그는 자라면서 도둑질을 하기도 하고, 일본의 화려한 문화를 접하기도 하고(여기서 그는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것을 부정한다), 발레를 배우기도 하고, 식권을 훔치기도 하고, '동양인 자식', '짱개' 같은 욕을 듣기도 하고, 머리가 자라서는 일탈을 겪기도 하면서, 점차 '어른'으로 성장해 간다. 융의 가족은 융에게 아주 관대하다. 비록 아버지나 어머니가 매질을 하기도 하고(채찍으로 융을 때리는 것이 아주 무섭게 묘사된다..
세상에는 심심풀이로 산 로또가 1등에 당첨되는 사람도 있고, '시험삼아' 내 본 소설이 신인상을 타는 사람도 있지만, 반대로 평범하게 운이 없어서 로또를 사면 언제나 꽝에, 꽝이 없는 당첨제비를 뽑으면 항상 낮은 등수가 나오고, 원서를 넣으면 전부 떨어지는 사람도 있다. 나는 어떤 쪽이냐고 하면, 글쎄. 아무래도 '평범하게 운이 없는' 쪽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그럼 지금부터, '평범하게 운이 없는 사람'에 대해 담담하게 서술해 보기로 한다. 우선 이렇다. 앞에서 든 예와 같이, 로또를 사면 전부 꽝이 나온다. 이건 다른 사람들도 공감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확률로 따지면, 5등에 당첨될 확률은 1/45이다. 따라서 로또를 45세트 구매한다고 하면, 실제로는 한 종이에 5세트니까 9장이지만, 그 중에 하..
일본어 위키백과 링크 다카하시 겐이치로(たかはし げんいちろう、1951년 1월 1일 - )는, 일본의 소설가, 문학자, 문예평론가. 메이지학원대학 교수. 히로시마현 오노미치시 출신. 일본테레비 방송프로그램 심의회위원. 고금동서의 명작으로부터 만화・TV에 이르는 매스컬쳐를 인용해, 패러디나 파스티슈pastiche를 구사하는 시니컬한 수법과 그에 상반하는 서정적인 작풍으로, 일본을 대표하는 아방・팝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주목되고 있다. 경마평론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네 번의 이혼력과 다섯 번의 결혼력을 가지고 있다. 첫 번째 처와의 사이에서 얻은 장녀는 자유기고가인 하시모토 마리. 두 번째 처와의 사이에도 장남이 있다. 세 번째 처인 타니가와 나오코, 네 번째 처인 무로이 유즈키는 둘 다 소설가(타니가와는 ..
2년 전에 쓴 글. 중2와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현재의 나 사이의 어딘가에서 방황하던 나 자신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하나하나 점자로 찍은 것만 같은 개념어의 사용이 인상적이다. 살다 보면 좋았던 기억은 아련한 이미지로만 남아 사진을 보며, 또는 글을 읽으며 회상하며 추억에 젖기나 하지만, 나빴던, 사무친 기억은 가슴 속 깊이 패인 상처로 남아 잊어버린 듯 하다가도 갑자기 떠올라 식은땀을 흘리게 한다. 내게 있어 상흔이란 사람과의 관계 미숙에서 비롯된, 어찌 보면 하찮게 보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 ‘겪은’ 입장에서 보면 심각한 상처trauma다. 그렇기에 혼자서 잘 지내다가도 갑자기 돌아오며, 평온을 가장하며 살아가다가도 트라우마가 목을 콱 죄는 순간이 있어 그 때만큼은 심각한 고통의 재귀를 경험한다...
드물게도, 볼 때마다 감상이 바뀌는 작품이 있다. 그리고 는 여기에 들어가는 대표적인 영화라고 말할 수 있다. 이건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세월'이 나를 지금 이 자리에 가만히 있도록 내버려 두지 못해서 그런 것일까. 단순히 나이를 먹어가는 것도 이유라면 이유겠지만, 둘 다라고 말하는 편이 적절할 것 같다. 아마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면서 이 영화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이 영화만큼 사람들의 감상이 갈라지는 영화도 없을 것이다. 는 만남과 이별에 대해 다루고 있는 작품이기는 하지만, '만남'보다는 '이별'에 무게를 두고 있다. '커플 브레이커'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신카이 감독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유감 없이 드러나는 작품이 바로 이다. 작품은 크게 세 개의 짧은 이야기로 나눠져 있다..
, 줄여서 는 애도에 대해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10년 전에, 불의의 사고로 ‘멘마’라는 여자아이가 사망하고, ‘초평화 버스터즈’의 멤버들은 각자 멘마의 죽음을 자신의 탓으로 생각한다. 그러다 갑자기 멤버의 리더였던 ‘진타’의 곁에 멘마가 나타나고, 진타는 이것을 과거의 멤버들에게 고백한다. 믿어주는 친구도 있고, 반신반의하는 친구도 있다. 극장판은 TV판 이후의 이야기를 다루기 때문에 ‘유령’으로 돌아온 멘마를 자신들의 곁에 각인하는 일은 회상으로 제시될 따름이지만, 충분히 그것만으로도 멘마가 어떻게 ‘초평화 버스터즈’의 멤버들에게 깊은 영향을 끼쳤는지를 잘 알 수 있다. 그래서 극장판의 이야기는, 멤버들이 ‘멘마’에게 편지를 쓰기 위해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나루의 경우는 편지를 쓰려고 하지만..
는 아름다운 영화다. 영화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 된 이야기라고 전해지는 "타케토리모노가타리竹取物語"(타케토리오키나모노가타리竹取翁物語라고 불리기도 한다.)를 소재로 한다. 이야기는 어느 날, 대나무를 캐서 파는 노인이 베어낸 대나무 속에서 어린 여자아이를 발견하면서 시작된다. 오키나(노인)는 여자아이를 "오히메사마お姫様"라고 부르면서 극진히 아낀다. 그의 아내도 여자아이를 소중하게 생각하며 기른다. 이 '히메사마'는 남들보다 몇 배는 더 빨리 자라는데, 그래서 1년 정도 시간이 지났을 때는 이미 한 사람의 역할을 하는 소녀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오키나는 대나무에서 다시금 금조각과 기모노를 발견하고(기모노가 하늘로 솟아오르는 모습이 매우 아름답게 묘사된다), 그는 히메를 데리고 미야코(수도 교토)에 올라갈..
는 한눈에 보기에는 단순한 플롯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직접적으로 텍스트의 ‘중층성’을 드러내는 방법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의 플롯은 크게 두 가지의 층으로 분할된다. 하나는 소설을 작성하는 주인공의 층위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이야기를 ‘작성당하는’ 주인공과 그 주변 인물들의 층위이다. 우선 처음에, 주인공인 타다시는 대학 3학년 봄에 유명 문예지(‘군청’이라고 말해진다)에 소설을 내 보지만, 보기 좋게 낙선하고 만다. 여기서 술에 취한 그는 떨어졌다고 말하는 대신, “붙었다”고 거짓말을 해 버리고 만다. 이 자리에서 그는 라는 미스테리 영화에 출연했던 키리시마 스미레=마키를 만나고, 자신이 를 얼마나 열심히 보았고 또 좋아했는지를 마키에게 자신이 아는 말을 총동원해서 설명한다. 그리고 얼마..